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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열린책들, 20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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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열린책들, 2016.)

Dog君 2021. 5. 19. 15:56

 

  어떤 백신이라도 특정 개인에게서는 면역을 형성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같은 일부 백신은 다른 백신들보다 효과가 좀 떨어진다. 하지만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전파가 멎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감염을 모면한다.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은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 건 그 때문이다.
  미접종자는 자기 주변의 몸들, 질병이 돌지 못하는 몸들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에 질병을 간직한 몸들에게 둘러싸인 접종자는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나 면역력이 희미해졌을 가능성에 취약하다. 우리는 제 살갗으로부터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35~36쪽.)

 

(...) 어쨌든 우리는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라도 동시에 위험한 존재들이다. 우리 시대가 철저히 취약한 존재로 여기도록 부추기는 아이들의 작은 몸도, 사실은 질병을 퍼뜨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
  「백신은 다수 집단을 동원해서 소수 집단을 보호함으로써 효과를 발휘하지.」 아버지의 설명이다. 이때 아버지가 말한 소수 집단이란 해당 질병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다. 인플루엔자의 경우, 노인들이다. 백일해의 경우, 신생아들이다. 풍진의 경우, 임신부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여성들이 제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는 건, 독신인 어머니가 최근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미처 아이를 완전 접종시키지 못한 일부 가난한 흑인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동참하는 일일 수 있다. (...) 적어도 오늘날은, 공중 보건이 전적으로 나 같은 사람만을 위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오히려 어떤 공중 보건 조치들이 우리를 통해서, 말 그대로 우리 몸을 통해서 구현된다는 생각이 조금쯤 진실이다. (46~48쪽.)

 

  선스타인처럼, 이 결과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을 잘못 판단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 인식은 계량 가능한 위험에 관한 문제이기보다 측정 불가능한 두려움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두려움은 역사와 경제, 사회적 힘과 낙인, 신화와 악몽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가 강하게 품는 여느 믿음처럼, 우리의 두려움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슬로빅이 실험에서 확인했던 경우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반박하는 정보를 접할 때, 우리는 자신이 아니라 정보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60쪽.)

 

  저널리스트 티나 로젠버그도 〈이 책보다 더 크게 세상을 바꾼 책은 별로 없다〉고 인정했으나,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DDT는 환경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흰머리 독수리들을 죽였지만, 『침묵의 봄』은 대중의 뇌리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 비난은 『침묵의 봄』 자체보다는 그 책의 상속인인 우리에게 가해져야 옳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DDT를 모기 퇴치제로 쓰지 않는 나라들 중 일부에서 말라리아가 되살아났다는 건 사실이다. (...)
  안타깝게도 DDT는 현재 그런 장소에서 말라리아를 좀 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몇 가지 수단 중 하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부 지역에서는 일 년에 한 차례 집 안쪽 벽에 DDT를 바르는 것만으로 말라리아가 거의 근절되었다. (...) 로젠버그는 〈말라리아를 겪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벌어진 가장 나쁜 일은 부자 나라들에서는 그 질병이 근절되었다는 점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
  카슨은 DDT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래도 DDT가 질병 예방에 유용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녀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우리가 곤충 매개 질병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진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그녀는 화학 물질을 정보에 근거하여 분별 있게 사용할 것을 주장했을 뿐, 아프리카 아이들을 경시하자고 주장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책의 영속력은 내용의 세심함 덕분이라기보다는 공포를 야기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71~74쪽.)

 

(...) 알고 보니 모유는 전반적인 주변 환경만큼 오염되어 있는 물질이었다. 모유를 분석한 실험실들은 그 속에서 페인트 희석제, 드라이클리닝 용액, 내연제, 농약, 심지어 로켓 연료를 검출해 냈다. 저널리스트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화학 물질들은 대개 극미량만 들어 있지만, 그래도 만일 사람의 젖이 동네 피글리위글리 슈퍼에서 팔린다면 일부 제품은 DDT나 PCB(폴리염화바이페닐) 잔류량에 대한 연방 식품 안전 기준에 걸릴 것이다.〉 (115쪽.)

 

  이런 맥락에서, 독성에 대한 두려움은 오래된 불안이 새 이름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오물이라는 단어가 도덕주의적 분위기를 풍기면서 육신의 악을 성토했다면, 요즘은 독소라는 단어가 산업 사회의 화학적 악을 규탄한다. 이것은 환경 오염에 대한 염려가 타당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오물 이론과 마찬가지로 독성 이론은 타당성이 인정되는 위험에 닻을 내리고 있다-다만 독성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 오물에 대한 과거의 사고방식과 약간 비슷하다는 말이다. 두 이론 모두 지지자들에게 저마다 개인적 순수함을 추구함으로써 자기 건강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끔 만들어 준다. (...)
  순수함, 특히 신체적 순수함은 언뜻 무해한 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은 지난 세기의 가장 사악한 사회 활동들 중 다수의 이면에 깔린 생각이었다. 신체적 순수함에 대한 열정은 맹인이거나 흑인이거나 가난한 여자들에게 불임 시술을 실시했던 우생학 운동의 동기였다. 신체적 순수함에 대한 걱정은 노예제가 폐지된 뒤에도 한 세기 넘게 살아남았던 인종 혼합 결혼 금지법의 이면에 깔린 생각이었으며, 최근에서야 위헌으로 판정된 남색 금지법의 이면에 깔린 생각이기도 했다. 모종의 상상된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동안 인류의 유대는 적잖이 희생되어 왔다.
  제대혈과 모유에 든 엄청나게 다양한 화학 물질이 앞으로 아이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지만, 최소한 우리는 우리가 출생 시점부터도 전반적인 주변 환경보다 더 깨끗한 존재는 못 된다는 걸 안다. 우리는 모두 오염된 존재이다. 자기 몸의 세포보다 더 많은 수의 미생물을 장 속에 품고 있다. 우리는 세균으로 우글거리는 존재이고, 화학 물질로 포화된 존재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이어져 있다. 물론,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들과도. (116~118쪽.)

 

  아버지의 왼팔에는 50년도 더 전에 맞았던 천연두 백신이 남긴 흉터가 있다. 그 백신 덕분에 전 세계에서 천연두가 근절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연 감염 사례가 발생했던 건 내가 태어난 해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0년, 20세기 들어 같은 세기의 모든 전쟁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던 질병은 공식적으로 지구에서 사라진 것으로 선언되었다.
  이제 천연두 바이러스는 세계에서 단 두 군데 실험실에만 있는데, 한 곳은 미국이고 다른 한 곳은 러시아다. (...) (128쪽.)

 

  면역은 공공의 공간이다. 그리고 면역을 지니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그 공간을 점거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어머니들에게는 백신 거부가 자본주의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저항의 일환이다. 그러나 시민 불복종의 한 형태로서 면역을 거부하는 건, 〈점거하라〉 운동이 교란시키려고 애쓰는 그 구조, 1퍼센트의 특권층이 나머지 99퍼센트로부터 자원을 얻어 내면서 위험으로부터는 보호받는 구조와 심란하리만치 닮았다. (145~146쪽.)

 

(...) 오늘날 주로 전쟁과 결부되어 쓰이는 〈양심적 거부자〉란 용어는 원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
  양심적 거부자라는 표현이 법규에 쓰이기 전, 백신 거부자들은 그냥 귀찮아서 아이에게 백신을 안 맞히는 태만한 부모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양심이란 단어는 이것이 아이를 염려하는 부모의 의도적인 결정이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뜻이었다. (...) (179~180쪽.)

 

  국가에 대한 태도는 백신 접종에 대한 태도로 쉽게 번역된다. 몸이 국가에 대한 손쉬운 은유인 탓도 있다. 국가에는 당연히 (우두)머리가 있으며, 정부는 손발을 부려서 힘을 행사한다. 『나는 타자다』에서 제임스 기어리는 몸을 국가의 은유로 쓰는 것의 효과를 알아보았던 실험을 소개했다. 연구자들은 두 피험자 집단에게 몸 은유를 사용하여 미국 역사를 서술한 글을 읽게 했다. 국가가 〈성장 급등〉을 경험했다느니 혁신을 〈소화하려고〉 애썼다느니 하는 식이었다. 이 글을 읽기 전, 둘 중 한 집단은 공기 중 세균을 해로운 것으로 묘사하는 글을 먼저 읽었다. 확인 결과, 해로운 세균에 대한 글을 읽었던 사람들은 안 읽은 사람들보다 나중에 신체적 오염에 대한 걱정과 이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둘 다 더 많이 표출했다. 그들이 읽었던 미국 역사 글에 이민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연구자들이 명시적으로 은유를 제공한 게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은 이민자를 국가라는 몸에 침입하여 오염시키는 세균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 (192~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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