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마을로 간 한국전쟁 (박찬승, 돌베개, 2010.) 본문
한국전쟁의 연구 경향은 대체로 전체주의-수정주의-신수정주의 순으로 진행되었다고 정리된다. 세 관점 모두 각각의 맥락과 입장이 다르지만 한국전쟁의 원인이나 구조, 연원 등에 연구의 초점을 두는 거시적인 연구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 구술사oral history 연구방법이 도입되면서 한국전쟁 연구는 큰 전환을 맞는다. 물론 애초의 한국전쟁 경험에 대한 구술 연구는 연구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구술 연구는 기존 역사학에서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미시적이고 주관적인 세계, 즉 소문자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폭이 확대되면서 한국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연구방법론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바로 이런 흐름 위에 있다.
* 소문자 역사 : 역사학에서 쓰는 개념 중에 '대문자 역사(History)'와 '소문자 역사(histories)'라는 것이 있다. 영어시간에 배우기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고유명사는 첫 알파벳을 대문자로 쓰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대문자 역사'라는 건 단일한 서사로 공식화되고 고유화된 역사적 경험을 의미하고, '소문자 역사'는 그런 공식화된 서사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개의 다양한 경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국사책에 나오는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에 끝난 전쟁이다. 이 사실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국가에 의해 공인된 사실이다. 그래서 어디를 찾아봐도 한국전쟁은 딱 이렇게만, 단일한 서사로만 서술되어 있고. 이런걸 '대문자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대문자 역사'의 등장은 국민국가의 형성와 무관하지 않다. '국가' 내에 존재하는 여러 이질적인 존재를 균질한 '국민'으로 통합해 내는데 '국사(national history)'라는 단일한 경험체계만큼 좋은 것이 또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1950년 6월 25일 현재 경남 하동 어딘가에서 자그마한 땅뙤기 겨우 부쳐먹고 살았던 제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전쟁은 1950년 7월 말 어느 날 나타난 패잔병 무리로 시작되어,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에 쫓기듯 도망가는 인민군으로 끝난다. 전라도에 살았던 사람은 이거랑 또 좀 다를 것이고, 다른 동네 사람들의 경험도 또 다를 거다. 이런 식으로 공식화된 역사 서술 이외에 다양한 주체가 경험했던 다양한 '역사들'을 '소문자 역사'로 보시면 얼추 맞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제목 그대로 한국전쟁이 각 마을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그린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국전쟁이란, 냉전과 이데올로기 등으로 표현되는 이념 갈등의 산물이다. 하지만 각각의 마을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했던 것은 신분, 계급, 친족, 마을 간에 만들어진 미시적인 갈등이었지 그런 거창한 이념 간의 다툼이 아니었다. 즉, 한국전쟁을 계기로 폭발한 사회적 갈등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었다는 거다. 물론 이런 갈등들에서도 이념과 국가권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갈등 상황과 이후의 경과는 각 마을이 가진 개개의 조건에 의해 더 크게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적어도 한국전쟁까지는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친족관계였을 것이라고 본다. 친족관계의 규정력은 아마도 1960년대에 이농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유효했을 거고. 저자는 이를 '일가중심주의' 혹은 '친족중심주의'라고 규정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1950년대까지의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볼 수 있겠다.
나는 결론 외에도 이 책이 우리 사회의 갈등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전쟁기 마을에서의 학살은 전쟁 이전부터 내재되어 있던 갈등이, 전쟁이라는 외부적인 계기에 의해 폭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학살의 구체적인 양상은 평소에 갈등 관리가 얼마나 잘 되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고.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전쟁이 아니라 '평소의 갈등 관리'다.
전쟁 이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끔찍한 학살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증오와 폭력의 연쇄를 끊어낸 마을은 이후에도 공동체를 잘 유지할 수 있었던 반면, 그러지 못하고 미움과 질시를 그대로 품고 산 공동체는 지금까지도 그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 당장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장 아무 게시판, 아무 뉴스, 아무 유튜브 채널만 들어가도 박탈감과 편견을 이용해서 갈등을 조장하는 자들이 널렸다. 진보건 보수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다들 상대방을 멸시하거나 혹은 짓밟고 없애지 못해서 안달이다. 이게 어떻게 나중에 화해와 극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대책 없이 화해와 용서만을 강요하는 것도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무한한 증오와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그것을 역사를 통해 정당화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마을로 간 한국전쟁'이라는 이 책 제목의 진짜 의미는 '한국전쟁이 우리 공동체 속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라는 묵직한 문제제기도 숨어있을 거고.
내가 이 책을 쓰면서 내린 결론은 총론에 실려 있다. 하지만 총론에 쓰지 못한 또 하나의 결론이 있다. 그것은 전쟁 이전 한국 사회는 갈등요소가 대단히 많은 사회였고(신분제, 지주제, 씨족 간 갈등, 마을 간 갈등 등), 한국인들은 이러한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가 한국전쟁기에 격렬한 충돌과 반복적인 학살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어느 사회든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갈등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그러한 점에서 미숙했으며, 그 결과가 그토록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을 쓰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 (11쪽.)
(...)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가설을 세워본다면, 한국전쟁기까지도 농촌 마을 주민들의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친족관계가 아니었나 여겨진다. 물론 그 기준이 어떤 경우에는 종중 전체가 될 수도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계파 혹은 작은 지파의 문중이 될 수도 있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좁은 범위의 집안[堂內] 혹은 가족이 될 수도 있었다. (...) 필자는 이를 '일가중심주의' 혹은 '친족중심주의' 정도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친족중심주의는 물론 한국전쟁기에만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때까지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가장 중요한 가치, 행동 기준이 '친족'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이농이 본격화되고 농촌 공동체가 점차 해체되기 시작할 때까지 이와 같은 친족중심주의는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36쪽.)
여기서 우리는 국가권력이 마을에 그처럼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과연 마을 안팎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살핀 것처럼 전쟁 이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마을 안팎에는 여러 갈등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갈등이 인명 살상으로까지 연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 민간인들끼리 죽고 죽이는 학살은 사실상 국가권력의 조장에 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남북의 국가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하여 민간인 학살을 서로 이용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 (51쪽.)
이상에서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여러 학살 사례와 그 배경에 있는 갈등구조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그 갈등구조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매우 복합적인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과거의 양반-평민 간의 신분 갈등, 지주-소작인(혹은 머슴) 간의 계급 갈등,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간의 종교 혹은 이념 갈등 등이 '복합적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복합적 갈등구조' 가운데 어떤 갈등이 더 심각했는가는 마을에 따라 각기 달랐으며, 그 결과 한국전쟁기 마을 안팎의 충돌 양상도 각기 달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한국전쟁기의 민간 차원에서의 충돌을 주로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 혹은 이념 충돌에서 빚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친족, 마을, 신분 간의 갈등이 더 중요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56쪽.)
교정. 초판 3쇄
11쪽 9줄 : 있었다 -> 있다 (문맥상 현재형이 옳다.)
51쪽 5줄 : 여기서 우리는 국가권력이 마을에 그처럼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과연 마을 안팎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처럼'이 중복하여 사용되었으므로 둘 중 하나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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