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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사학의 진로 (박찬승, 한양대학교 출판부, 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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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사학의 진로 (박찬승, 한양대학교 출판부, 2019.)

Dog君 2021. 5. 20. 22:54

 

  "역사학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역사에 관련된 질문 중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이것 아닌가 싶다. 관심이 있어서 나름대로 책도 읽어보고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챙겨보기는 하는데, 직업적 연구자가 아닌 보통의 독자로서는 이게 과연 학문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책을 읽고 나서도 가슴 한켠의 불안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불안함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어차피 학계의 연구성과라는 것도 결국에는 책의 형태로 가공되어 나올테니 끝도 없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언젠가는 학계의 연구수준을 따라 잡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직업적인 연구자도 아닌 보통의 독자가, 읽기도 까다로운 전문 연구서를 주구장창 읽어서 학계의 수준을 따라 잡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많은 글을 언제 다 읽냐. 설사 읽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독서가 한 분야에만 치중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물론 그간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향후의 과제까지 제안하는 글이 있기는 하다. 대체로 'xxx 연구의 회고와 전망' 따위의 이름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전문 학술지에 그런 글이 실리거든. 하지만 그것도 보통의 독자 입장에서는 접근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전문 학술지를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그래서 그런가, 이런 책이 나오면 늘 반갑다. 지금의 역사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무엇인지, 그 논쟁에서는 어떤 주장이 나오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재적 발전론, 식민지를 바라보는 관점(근대화론과 수탈론, 그리고 탈근대론), 한국사에서의 '민족' 논쟁, 동아시아 역사 갈등 등은 하나 같이 범위가 방대한데다가 논쟁의 역사도 깊은 것이라 대체 어디부터 공부해야 할지 독자로서는 막막한 것들이다. 이 주제들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혹은 이에 대한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한 분이라면, 이 책이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그간의 공부를 갈무리하는 독서로도 안성맞춤이고.

 

  그래서 이런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통독하기는 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은 다음 그로부터 다른 책으로 확장해 나가는 용도로 쓰기에 좋다. 서가에 꽂아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는, 초보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 개항 이전의 조선사회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어떻게 내재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는가를 살피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 중세사회의 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면 비록 그 움직임이 미미한 것일지라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아직은 추운 엄동설한이지만 2월 초에 '입춘'이라는 절기가 들어 있는 것은 그 즈음이면 봄을 맞이하는 새로운 기운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 (115쪽.)

 

  (...) '내재적 발전론'이 환골탈태의 계기를 맞이한 것은 사실이다. 일부에서 내재적 발전론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역사 발전의 궁극적인 힘은 주체의 밖이 아닌 주체의 안에 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내재적 발전론을 폐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외재적 계기를 무시하는 일국사적인 내재적 발전론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
  이제 내재적 발전론은 서구의 역사발전과정을 모델로 삼는 데에서 벗어나 '복수의 발전경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학계의 시각은 앞서 본 시대구분론 논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미 사적 유물론의 이른바 '세계사적 발전법칙'에만 매달려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국사 연구자들은 다양한 관점과 기준을 근거로 한국사의 시대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 식민주의의 조선사회 정체론은 이미 파산하였다. 따라서 정체론이라는 특수성론을 무너뜨리기 위한 보편성론은 더 이상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또 하나 '세계사의 기본법칙' 즉 보편주의적인 역사발전의 법칙을 세계의 모든 지역, 모든 국가에 일원적으로 적용하면서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이제 현실적인 타당성을 거의 잃어버렸다. 그보다는 세계사의 발전과정을 '복수의 경로'로써 설정하고 각기 그 특성에 따른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훨씬 현실성을 갖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사의 경우에도 개별특수적인 발전과정을 밝히고 그에 기초하여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한국사의 연구에서도 여전히 세계사적인 보편성은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먼저 전제하고 이를 한국사에 적용하는 것보다는 한국사의 개별성을 먼저 확인하고, 이를 다른 지역의 역사들과 비교하면서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그려보는 것이 더 적절한 순서라고 여겨진다. (119~120쪽.)

 

  토지의 수탈은 주로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조선총독부가 넓은 면적의 민유지를 약탈하여 이를 국유화, 즉 총독부의 소유로 하였다는 주장이다. (...) 이러한 주장은 국사 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최근까지도 그렇게 가르쳐 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여러 실증적인 연구들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내고 있다. (...)
  그러면 토지 수탈은 정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목해야 할 것은 토지조사사업이 아니라 일본인 농업회사와 민간 지주들의 토지 수탈이다. 즉 일본인 농장과 고리대금업자, 상인들은 1905년 이후 조선에 대거 진출하여 토지를 점유하였는데, 그 주된 방법은 총독부로부터의 개간 허가, 고리대 담보를 통한 토지의 탈취, 헐값 매입 등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광의의 수탈이라고 볼 수 있다면 토지의 수탈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64~165쪽.)

 

교정. 초판 1쇄

32쪽 12줄 : 설명하는 과제로 -> 설명하는 것을 과제로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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