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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 뤼트케의 일상사 연구와 '아집' (알프 뤼트케 지음, 송충기 옮김, 이유재 엮음, 역사비평사, 20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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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 뤼트케의 일상사 연구와 '아집' (알프 뤼트케 지음, 송충기 옮김, 이유재 엮음, 역사비평사, 2020.)

Dog君 2021. 5. 21. 00:15

 

  아는 척 하며 몇 마디 얹어보려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 책을 나의 문장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역사가 정의와 불의를 판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한, 그리고 그러한 정의를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한, 심지어 그런 이들이 권력까지 가지고 있는한, 이 책은 계속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비슷한 상황이 다시 우리 앞에 주어졌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 나치의 지배를 용인하거나 협력하는 그러한 형태의 기관원을 단순히 이분법적 구조에 따라 나누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를테면 피지배자가 나치가 시행한 격리와 억압 정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경우 말이다. 이들은 나치의 관계를 나름대로 전유함으로써 스스로 지배 행위를 만들어냈다. 이런 '경우'를 넘어 활동의 정황을 살펴보면 역사적 행위자의 '단 하나의' 명료한 모습을―혹은 그들의 '정체성'까지―찾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만다. 이들 행위가 다의성과 다면성 속에서, 무엇보다도 아마 서로 모순되는 방향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역사 속 행위자는 정해진 한 길로 가지 않고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 (「밀고 - 애정에서 우러난 정치?」, 135쪽.)

 

  '근대'에서 지배력은 '피지배자'의 수동적인 복종에만 근거하지 않는다. 이들의 창조적 협력이 반드시 필요했고, 또 지금도 그렇다. 이것은 또한 지금까지 지배를 파악했던 방식보다 더 포괄적인 이해방식이다. 달리 말하자면 지배는 '위대한 전체'를 위한, 곧 그것의 대표자와 상징들―대부분 자기 일상에서 점하고 다루는 것들―을 위한 애착의 열망과 감정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밀고 - 애정에서 우러난 정치?」, 13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관행이 보여주는 사실은 그 일을 한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느낌이나 열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열망 가운데 하나는 '질서'의 유지와 복원에 대한 것이었다. (...) 이들의 요구는 이웃과 다른 사람이 '몸담고' 있던 활동에서 물건을 빼돌리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독특한 '대중의 도덕경제'가 갖고 있는 한 단면이다. (「국가에 대한 사랑, 권위에 대한 애착 - 20세기 유럽적 맥락에서 본 대중참여정치」, 209쪽.)

 

ps. 뤼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는 말이 좀 많이 짧아서 그랬어요. ^^;;

 

  (...) 내가 질문하면 학생은 놀라고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 (「후기 : 한국과의 교류에서 얻은 단상」, 371쪽.)

 

  (...) 뤼트케는 일상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일상사의 일상은 무엇보다 하나의 시각이다. 사람들이 상황을 인지하고 전유하는 다양한 행위들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태도인 것이다. 매일 매일을 살면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의 다층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뤼트케는 지배체제나 전체에 대해 손쉽게 질서 구상을 제시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았고, 어떤 거대한 내러티브로 역사를 체계화하기를 거부했다. 일상을 대상화하지 않으니 일상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나 이론이 따로 있을 수도 없다. 일상은 다만 복합적인 시점들의 상징으로 기능할 뿐이다. (이유재, 「독일 일상사 연구와 알프 뤼트케의 삶」, 15쪽.)

 

  (...) 해마다 한 번씩 제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이, 1945년 이후부터는 여러 전쟁의 사망자들이 추모되고 있었다. (...) 때로는 군대가 화환을 바치기도 했는데, 화환의 리본에는 사망한, 혹은 '전사한' 병사를 '나치 테러의 희생자'로 묘사하며 애도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 전몰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 징집되었는지, 아니면 어떻게 이들이 '병사의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런 언급도 없다. 그렇다면 사망자 혹은 '전사자', 곧 안타깝고 불쌍한 이들이 '갈색의 테러 정권'에 기여한 '나름의 몫'은 없단 말인가? (...) (「헌화와 비석, 모든 전몰자를 위한 것인가 - 동독의 추모, 기억, 침묵 : 베를린 주변 지역의 사례」, 40쪽.)

 

  기억할 만한 장면은 바로 이것이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던 전문가들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맸다. 전화로 수천 개 질문이 물밀듯이 쏟아졌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많은 전화가 그냥 질문만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천 명이 전화에 대고 울었다. 수백만 시청자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깊은 절망과 곤혹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려는 수많은 익명의 목소리를.
  (...)
  전문 역사학자들은 점차 답변에 어려움을 느꼈고, 낙담까지는 아닐지라도 불안감을 드러냈다. (...) 곧 그들은 끊임없이 기존의 연구 성과를 언급했다. (...) 그럼에도 시청자 전화는 점차 새로운 의문점을 제기했다. 왜 사람들은 이 연구 결과들을 무시했는가? 왜 그들은 책에서 그것을 찾아보지 않았는가?
  (...)
  그들의 관심사는 '독일 파시즘의 공범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자기 이웃이 1933년 3월부터 공개적인 탄압을 받았고 그 결과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리' 혹은 드물게 '우리 부모'가 인정했던가? (...) '대중들'―말하자면 우리 자신들이나 우리 부모들―이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다수 사람들은 일어나고 있던 일을 수긍해버린 것은 아닌가? 다수는 '새로운' 독일의 약속된 영광을 위해, 혹은 군사적 강성함이나 사회적 '정화'를 위해, '불결하고' 따라서 '위험스러운' 분자(分子)들을 모두 제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하거나 심지어 가담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역사는 현재인 지금까지도 또한 이렇게 묻는다. 만약 우리라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할까? (「'과거와의 대면' - 서독에서 나치즘을 기억한다는 환상, 그것을 잊는 방식」, 74~77쪽.)

 

  서방 점령 지역에서 탈나치화의 노력은 곧바로 거대한 관료기구로 전락하여 서류만 잔뜩 만들어냈다. 그 결과 독일 국민 대다수가 강렬한 자기연민에 빠지고 '우리도 피해자'라는 개념이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예컨대 수치상으로 보더라도, 영국 점령 지역에서는 조사를 받은 사람들―말하자면 나치당이나 산하기관의 구성원―의 약 95%가 '단순가담자(Mitläufer)' 등급을 받았다. (...) '단순가담자'라는 판정은 더 이상의 정치적 혹은 도덕적 조사를 무색하게 만드는 법적 면죄부로 여겨졌다. 심지어 '단순가담자'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였는데, 이 말을 풀이하면, 나치와 협력한 사람이 아주 많았고 그들 모두는 그저 소수 나치 지도자를 무의식적으로 추종했을 따름이라는 것이었다. 이들 단순가담자는 나치 지배하에서 감옥에 가고 고문을 받고 살해당한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과 자기 행동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이렇듯 '탈나치화'라는 기획 전체가 대중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생각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었고, 단순가담자도 스스로를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와의 대면' - 서독에서 나치즘을 기억한다는 환상, 그것을 잊는 방식」, 80~81쪽.)

 

  (...) 벤야민이 주목하고자 했던 바는, 최소한 파시즘 정치를 특정짓는 매스게임에서 "대중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지 않고" '자기의 표현'을 찾는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자기표현에 집중하는 것은 정치의 상실이라고 벤야민은 비판했다. 그렇지만 바로 이것이 다른 사람을 밀고하고자 하는 유혹에서는 오히려 결정적 요소였다. 이는 곧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동시에 가장 분명한 형태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가능한 한 오랫동안 고통과 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권력을 시험하고 그것을 과시한다. 따라서 밀고는 정치적 참여의 한 형태로서 많은 사람이 자신을 훨씬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며, 다른 한편 대의제 민주주의가 이론상 허용할 수 있는 정치적 참여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는 형태일 것이다. (「밀고 - 애정에서 우러난 정치?」, 128쪽.)

 

  (...) 인쇄공과 양조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광산노동자, 건설노동자, 심지어 훨씬 덜 조직화된 섬유산업노동자(여성 노동자임에도!)에 비해 기계공업 노동자는 거의 파업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활발하지 않았거나 냉담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단위 작업장 내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때로는 정말이지 전투적으로 대변했다. 이들은 '쓰레기'부터 공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자원과 시간을 다시 전유했고, 자신의 희망과 기원, 불안과 초조함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즉 이들은 아집을 실천에 옮겼다. 이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원과 '생활기회(Lebenschancen)'의 분배와 재분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대처했다. (「임금, 휴식, 장난 - 1900년경 독일 공장노동자의 '아집'과 정치」, 260쪽.)

 

  (...) 국가나 노동조합의 정책에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지만, 대신 공장, 사무실, 임대가옥, 거리에서는 그들의 적극적인 자기의지인 정치적 민감성과 투쟁성이 드러났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이들 종속되고 지배당하는 사람이 표현하고 강조하는 방식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적인 것, 그리고 아집이 서로 결합된 하나의 형태가 확고하게 형성되었다는 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상의 현실에서는 소소한 개인적인 기쁨이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대안적인 상상과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촘촘하게 결합되어 나타난다. 왜냐하면 종속되고 지배당하는 사람이 국가와 정당의 정치무대를 무시한다고 해서 사회의 대안적 질서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
  당시의 사회주의적 정치조직은 이러한 문제를 깨닫지 못했다. (...) 노동자 조직은 어떤 욕구를 특별하고 변형된 것으로 판명할 때, 그 기준을 오로지 그것이 계급의식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하는지, 그리고 조직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지에 두었다. 이들은 단 한 번도 노동자 정책의 특성으로서 아집과 노동자 이해관계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임금, 휴식, 장난 - 1900년경 독일 공장노동자의 '아집'과 정치」, 269~270쪽.)

 

  공장노동의 이런 측면을 사회주의적인 노동자 조직은 거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금의 형태가 아닌 자부심과 같은 인정은 의미 없는 '헛소리'로 취급되었다. 마찬가지로, 동료 간의 '장난'과 아집 부리기가 어디서나 공장의 일상이 되다시피 했지만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특히 노동조합은 오로지 임금만이 그들의 고객인 노동자를 움직이게 한다면서, 다수가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을 엉뚱하게 이해했다. 오히려 다수의 일상에서는 수고와 위협, 근육과 '솜씨'를 인정(혹은 경멸!)하는 상징적 표현이 일상을 견뎌내게 하는 부분이었다. (...) (「'노동영웅', 노동의 수고스러움 - 동독 산업노동자의 마지못한 충성심」, 331쪽.)

 

  일상사의 목적은 인간의 인식과 행위양식의 다양한 측면을 해명하는 것이다. 이미 자주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일상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지배적인 행동이나 국가의 행위'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초점은 인간이 온갖 조건 아래서―이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살아가고 또 살아남으면서, 스스로 만들어가고 경험하는 일상의 실천에 맞추어져 있다. (「후기 : 한국과의 교류에서 얻은 단상」, 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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