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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위고, 20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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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위고, 2020.)

Dog君 2021. 5. 21. 00:20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그런 내가 몇 년 전부터 달리기를 취미로 하고 있는 것은 퍽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와 달리, 나는 내 첫 달리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달리기 앱에 기록된 첫 기록은 2018년 5월 14일이지만, 나는 이미 그 전부터 달리고 있었다. (앱을 다운받고 회원가입한 것은 그보다 4개월 전이었다.) 2017년 가을께 진천에서 신규자 교육을 받던 몇 주 동안은 새벽에 숙소를 나가서 어둑어둑한 밭둑길을 한참 달린 후에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그 전에, 2015년부터는 직장에 있는 체력단련실의 트레드밀 위에서 줄창 뛰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또 그 전에, 2012년 즈음에 성수동 살 적에는 청계천변을 달렸다. 그리고 또 그 전에는, 점심 먹고 나서 학교 근처 구립체육센터에서 웨이트를 잠깐 깔짝거린 후에 트레드밀을 달렸다. 그리고 다시 또 그 전에는... ㅎㅎㅎ 이런 식으로 계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 어둑어둑한 저녁에 소독차 뒤를 뛰어다니던 시절까지 올라가지 싶다.

 

  아무튼, 지금 나는 달리기를 꽤 좋아하고 있다. 출장을 가서 잠시라도 짬이 날 것 같으면 어떻게든 달리기 코스를 찾아보는게 습관이 됐다. 외국 출장을 가서 한인민박집 사장님이랑도 같이 뛰었으니 뭐... 지난 겨울에 이사할 집을 찾을 때도 근처에 달리기 좋은 코스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살짝 놀란 적도 있다. (이 정도면 병이지, 병.)

 

  달리기에 대해서 꼭 하나 지키고 싶은 원칙이 하나 있다. 어떻게든 결과에는 무덤덤해야 한다는 것. 물론 남들보다 빠르고, 어제의 나보다 잘 달리고, 달려온 거리가 누적되고, 그렇게 자꾸 변화하는 수치들을 볼 때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결과가 아니라 달리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마스크 쓰고 달리다가 잠깐 사람 없는 구간에서 잠깐 마스크를 내렸을 때의 청량감, 몸에서 땀이 빼짓이 스며나오기 시작할 때의 간지러움, 어느 순간부터 양 발이 그저 관성만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낄 때의 묘한 기분, 지난 번과는 다른 천변 풍경 등, 숫자로 표현될 수 없고 인스타 갬성으로 담아낼 수도 없으며 앱에 기록할 수도 없는 그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언젠가 달리기 기록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하는 때에도 내 몸의 변화(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전히 달리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머, 물론 이렇게 잔뜩 잘난척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늘, 막상 달리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달리지 않을 핑계를 찾는 또 다른 자아와의 싸움이 어김없이 시작될 거다. 특히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결국 달리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고. ㅎㅎㅎ...

 

  인적 드문 야심한 밤, 산책로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목 늘어난 티셔츠, 잘 때와 운동할 때 구분 없이 입는 것으로 추정되는 추리닝 바지, 거기에 어설프게 허우적거리는 스트레칭 자세까지. 여러모로 그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그리 익숙해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를 굽힐 때마다 관절에선 우두둑거리는 굉음이 이어지고, 체계 없는 준비운동은 대체 무엇을 위한 준비인지 의아함만 자아낸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긴장감 도는 발자국이 하나 둘 찍혀나간다. 경직된 팔 동작과 불안정한 호흡에서 이 뜀박질의 슬픈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예정된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레이스는 위태롭게 이어진다. (...) (9쪽.)

 

  한동안 달리기는 나의 허술함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허술함이 좋았다. 모든 노력을 쏟아내고도 '나 진짜 못 뛴다'며 한탄했지만 그런 내가 밉지 않았다. (...) (24쪽.)

 

  그런데 요즘은 꾸준함도 또 다른 형태의 재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재능이 비옥한 토양이라면 성실함은 하루하루 땅을 살피는 태도다. 비옥하지 않다 하여 농사를 못 짓는 게 아니고 비옥하다 하여 매 해 풍작을 거두는 게 아닌 것처럼, 모든 결과가 재능에만 기대진 않는다. 재능이 모든 걸 결정하지도 않고 재능 없는 사람이 영원한 루저로 남으라는 법도 없다. 지난 삶 속에서 확실하게 목격한 사실이 있다면 재능만으로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반복의 힘을 믿고 꾸준히 해나간 사람은 필연적으로 재능 그 이상의 지점에 가 있다는 것. (87~88쪽.)

 

  런태기에 놓인 러너들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우선 작은 변수에도 놀랍도록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론 그 변수는 뛰지 않을 구실에만 요란히 작동한다. 평소라면 무시하고 뛰었을 보슬비와 옅은 미세먼지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이유로 자리한다. 감기 증상의 기역 자만 보여도, 잘 못 자서 생긴 뻐근함에도 이불 속 요양의 길을 택한다. (...)
  확실한 탈출구가 존재하기는 한다.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런태기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파스, 빨간약과 함께 3대 만병통치약으로 꼽히는 시간은 런태기마저 치료한다. 시간은 무뎌질 대로 무뎌져 뭉툭해진 감정을 다시 뾰족한 모양으로 깎아낸다. 그렇게 다시 뾰족해진 마음에 작은 계기 하나가 얻어걸릴 때, 러너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물론 사람마다 재활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기에, 달리며 누린 즐거움과 추억이 가득하기에, 결국 대부분은 익숙한 품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138~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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