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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우주 (데이바 소벨, 알마, 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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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우주 (데이바 소벨, 알마, 2019.)

Dog君 2021. 5. 21. 00:13

 

  내가 하는 팟캐스트가 여성 저자에게 유독 박한 것 같다는 감상을 일전에 본 적이 있다. (트위터였나...) 처음 그 감상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좀 억울했다. 저희가 책을 고를 때 저자의 성性은 특별히 염두에 두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유독 그 지적은 계속 기억에 깊이 남았고, 지금도 가끔 그 지적을 곱씹곤 한다. 정확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뭐 암튼 그렇다.

 

  저자의 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책을 골랐는데도 결과적으로는 남성 저자의 비율이 압도적이라면, 그건 아마 역사학에서 활동하는 남성의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일 거다. 저는 역사학이란 본질적으로 진보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역사학마저도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니까 대단한 권력과 자본이 오가는 것도 아닌, 그 자체의 논리와 결과물로만 평가받을 것 같은 학문세계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성차별이 만연한 곳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데이바 소벨의 『유리우주』는 19세기 말 하버드 천문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유리판에 기록된 천문관측결과를 분석하고 계산하는 업무에 투입되었는데, 책 제목인 유리우주glass universe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 표현이다. (모르긴 몰라도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염두에 둔 표현이기도 하겠지.) 수없이 많은 천문관측결과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별들의 상대적인 밝기를 확인하고, 그로부터 절대광도를 계산하며, 변광성의 밝기 변화를 측정하고, 다시 그로부터 지구와 별의 거리를 측정하는 등의, 단순하면서도 지루한 작업이 곧 그들의 무대였다. 당시에는 이들을 계산원computer(혹은 계산수)이라고 불렀는데, 글타, 우리가 아는 그 컴퓨터computer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그것이었다.

 

  그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이 없었다면 지금껏 천문학이 쌓아올린 거대한 업적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사실 그들의 업적이 그런 단순작업에만 머무른 것도 아니다. 그들 이미 각자가 위대한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를 발견하여 이를 통해 각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한 헨리에타 리비트Henrietta Swan Leavitt, 말머리 성운을 발견한 윌리아미나 플레밍Williamina Paton Stevens Fleming 등, 지금 와서 보면 당시의 하버드 천문대는 천문학자들의 드림팀이었다. 헨리에타 리비트의 발견이 있었기에 에드윈 허블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주장할 수 있었고, 윌리아미나 플레밍의 작업이 있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천구天球상의 항성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그들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여성들도 천문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애쓴 찰스 피커링 같은 동료 과학자들의 노력, 그리고 하버드 천문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애너 드레이퍼와 캐서린 브루스의 관심 등이 없었다면 그런 성과는 불가능했겠지.

 

  물론 『유리우주』가 단지 성공의 이야기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이 하버드 천문대에 고용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임금이 남성에 비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서 여성 중에서 연봉이 가장 높았던 윌리아미나 플레밍조차도 같은 일을 하는 남성의 60%에 불과한 연봉을 받았다고 한다.(154쪽)

 

  결혼도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초기에 하버드 천문대에 고용된 여성 천문학자 중 많은 수가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는 아닐거다. 여성 천문학자가 결혼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나중에서야 가능했던 일이었고.(352쪽)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오늘까지도 운동장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고 유리천장은 아직도 단단하기만 하다. 이 책 하나가 나왔다고 해서, 그리고 우리가 여성 천문학자 몇 명을 더 알게 됐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게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하나라도 더 기억할 때, 운동장은 평형은 다시 조금 더 맞춰질 것이고 천장의 유리에도 조금씩 실금이 가기 시작하겠지. 앞으로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배워야겠다.

 

ps. 아무래도 자연과학 쪽으로는 도통 문외한이라 저에게는 이 책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라도 저처럼 책 내용이 좀 까다롭게 느껴지시는 분은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팟캐스트에서 헨리에타 리비트를 다룬 에피소드를 들어보시면 좋은 참고가 될거다. 이 책의 내용도 많이 소개하고 있고.

http://www.podbbang.com/ch/6205?e=23845573

 

  하버드 천문대는 19세기 후반부터 여성들에게 독특한 고용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과학 기관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당시 남성의 보루로 여겨졌던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먼 앞날을 내다본 천문대장의 고용관행은 수십 년간에 걸쳐 밤하늘을 체계적으로 촬영하는 데 헌신한 집념과 어우러져, 유리우주glass universe라는 분야에서 여성의 고유한 활동 영역을 만들었다. (...) (8쪽.)

 

  "요즘에는 여성을 계산원으로 활용하는 게 대세인가 보죠?" 드레이퍼 여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뇨", 피커링이 말했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그건 하버드만의 독특한 관행입니다. 우리는 현재 여섯 명의 여성 계산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피커링은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말할 것도 없고, 망원경 관측이라는 중노동에 여성을 투입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그보다는 탁월한 숫자 감각을 지닌 여성들을 계산실에 배치하여,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배려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 (24~25쪽.)

 

  나아가 피커링은 여성이 천문학 연구에 참여할 경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여자 대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당대의 상황을 정당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긍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여성의 고등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종종 "여성은 남성이 하는 것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창의성이 부족하므로, 그녀들이 연구에 참여한다고 해서 인류의 지식이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열거하게 될 여성들의 숱한 관측 사례들을 보면, 그들의 비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31쪽.)

 

  (...)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이런 종류의 비판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좋은 연구 결과를 좀더 많이 발표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곡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당신이 이 일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잃거나 당신의 연구 활동이 위축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상심이 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질 것입니다. 만약 여의치 않다면 휴가를 다녀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102쪽.)

 

  휘트먼의 시(<내가 그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When I heard the learn'd astronomer>) 원문은 아래와 같다.
  "내가 그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증명과 숫자가 내 앞에 줄줄이 나열되었을 때,
  도표와 다이어그램에서 숫자들이 더해지고 나뉘고 측정되는 장면을 봤을 때,
  강의실에 앉아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천문학자의 강의를 들었을 때,
  왠지 곧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어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빠져나와 홀로 배회하며,
  신비롭고 촉촉한 밤 공기 속에서, 이따금씩,
  아무 말 없이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봤다." (133쪽.)

 

  플레밍 여사는 타임캡슐에 수록된 업무일지에서 에드워드 피커링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만을 표현했짐나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보수 문제였다. (...) "나는 책임 부담이 많고 작업 시간이 길지만, 그분은 내 업무가 별로 과도하거나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가 불만을 제기했더니, '당신은 여성 중에서 최고의 임금을 받고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만약 그분이 좀 더 신중했다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반성했을 거예요. 나는 가끔 그분에게 '다른 사람을 고용해보세요. 나만큼 묵묵히 일하는 사람도 없을걸요?'라고 말하고 천문대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해요. 그리고 내가 연봉 1500달러를 받는 데 반해, 나와 똑같은 일을 하는 남자들은 2500달러를 받는다는 사실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분은 내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생각해봤을까요? 여자들은 안락한 생활을 주장할 수 없으며, 주어진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미덕이라니! 그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에요."
  (...)
  4월 중순쯤 원기를 회복하여 천문대에 마차를 타고 출근할 필요가 없게 되자, 플레밍 여사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타임캡슐 일지를 검토했다. (...)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았다. 그녀의 급여수준을 다른 분야의 엘리트 여성과 비교해보면, 자신의 노력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54~155쪽.)

 

  캐넌 양이 천문대에 처음 들어왔던 때와 달리, 결혼은 더 잇아 여성 천문학자의 경력에 종말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운 추세를 인정하고, 모든 피커링 장학생 출신 신부의 권리를 옹호했다. "연구란 정해진 시간이나 연구실이라는 공간에서만 행해지는 게 아니라, 결혼한 여성에 의해 수행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낸터킷의 천문학 장학위원회장 자격으로 발표하는 정기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성 사진은 가정에서 자투리 시간에 분석될 수도 있으며, 아내나 어머니가 항성 사진을 분석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브리지 카드놀이나 다양한 여가 활동에 종종 투자되는 시간보다 많지 않습니다. (352~353쪽.)

 

교정. 1판 2쇄

25쪽 5줄 : Williams Augustus Rogers -> William Augustus Rogers

59쪽 16줄 : 대게 -> 대개

74쪽 14줄 : 류머티증성관절염 -> 류머티즘성관절염

210쪽 사진캡션 7줄 : 솔로 베일리 -> 솔론 베일리

212쪽 3줄 : Reasarch -> Research

214쪽 5줄 : 슈파르츠실트 -> 슈바르츠실트

266쪽 2줄 : 협회■■ -> 협회協會

280쪽 23줄 : 리커링 -> 피커링

283쪽 6줄 : 물로 -> 물론

283쪽 10줄 : 나선성운sipral nebula -> 나선성운spiral nebula

291쪽 8줄 : Arville "Billy"Walker -> Arville "Billy" Walker (띄어쓰기)

294쪽 10줄 : 제1연합교회1st Cong. Church (120쪽에는 'Congressional Church'를 '회중교회'로 번역)

299쪽 24줄 : 항성관 측 활동 -> 항성관측 활동

322쪽 사진캡션 4줄 : Ph.D.를 취득했는데 ->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다른 부분에서는 'Ph.D.'를 '박사학위'로 번역)

329쪽 18줄 : 이디스 워튼 ->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 (처음 등장한 고유명사는 원어를 병기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없다. 같은 단어의 원어를 여러 차례 병기하는 등의 문제가 있는 듯하지만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지는 못했다.)

355쪽 4줄 : 규모땅은 -> 규모의 땅은

360쪽 각주 2줄 : Georges Lamaître -> Georges Lemaître

383쪽 1줄 : 세실리아-세르게이 가포슈킨

385쪽 사진캡션 2줄 : 세르게이-세실리아 가포슈킨 (383쪽과 385쪽의 표기 다름)

390쪽 18줄 : Joseph McCarth -> Joseph McCarthy

398쪽 16줄 : 마거릿 피치 버브리지Margaret Peachey Burbidge -> 마거릿 피치 버비지Margaret Peachey Burbidge

408~409쪽 사진 삽입 부분 중 다섯번째 쪽 두번째 사진캡션 1줄 : 윌리아미나 패튼 스티븐스 (다른 부분에서는 '윌리아미나 플레밍'으로 표기)

414쪽 7줄 : Radiao astronomy -> Radio astronomy

416쪽 7줄 : 1875 조지프 윈록이 (행 전체의 편집이 잘못됨)

429쪽 11줄 : 기계의 천재mechanical genius (원어 표기의 글꼴 틀림)

430쪽 19줄 : 《천제물리학저널》 -> 《천체물리학저널》

432쪽 14줄 : Whippleshield -> Whipple shield

433쪽 11줄 : 헨리 드레이퍼 박사, M.D. -> 헨리 드레이퍼

436쪽 4줄 : 반대하지 -> 반대하자

439쪽 7줄 : 드레이페 -> 드레이퍼

439쪽 10줄 : 시작 한다 -> 시작한다

446쪽 8줄 : 천문학 경력이 형성된 ('경력이 형성되다'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므로 어색한 번역. 부록 부분은 원어를 직역한듯, 어색한 문장이 종종 있음.)

446쪽 10, 15, 16줄 : (이상한 기호가 삽입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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