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2019.) 본문
그들은 분절된 개체이다. 희진은 한 루이가 죽고 다른 루이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울 때 연속적이지 않은 두 자아 사이의 어긋남을 목격했었다. 영혼은 이어질 수 없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다른 루이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같은 루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어떤 초자연적인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 루이들은 단지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들은 기록된 루이로서의 자의식과 루이로서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경험, 감정, 가치, 희진과의 관계까지도.
그렇다면 희진도 그들을 같은 영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스펙트럼」, 90~91쪽.)
"(...)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1쪽.)
예전에 어느 과학 팟캐스트에서 광속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우리가 질량을 가진 물질로 이뤄져 있는 한 광속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안드로메다니 마젤란이니 하는 외계로 갈 방법은 영원히 없는 걸까. 그러다가 결국 육체를 포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육체라는 하드웨어가 갈 수 없다면 정신이나 기억, 영혼 같은 소프트웨어만 보내면 안 될까. 정신이나 기억, 영혼은 물질이 아니니까.
이렇게 되면 결국 이 이야기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된다. 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체세포는 끊임없이 죽고 생성되기를 반복해서 약 20년 정도면 체세포 전체가 완전히 다 바뀐다는데, 그러면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그래서 육체로 누군가를 정의할 수 없다면, 육체가 아닌 정신과 기억, 영혼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뇌세포에 들어있는 걸까, 그 사이사이를 오간다는 미세한 전류들에 있는 걸까. 그러면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고 그 느낌을 SNS에 올리는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은 뇌세포의 작용이기만 할까. 그러면 원두커피는 어디서 사먹는 줄도 몰랐던 20년 전의 나는 또 뭘까. 그건 내가 아니고 또 뭘까. 지금의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예전의 기억을 완전히 잃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스벅에서 책보는 걸 즐길까.
나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기억과 경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펙트럼」의 루이가 대를 이어 기억과 경험을 전승했던 것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과학자가 그토록 가족과의 추억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의 주인공의 행적이 이모의 그것과 끊임없이 겹쳐질 수밖에 없는 것도, 인간은 기억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지난 누천년간 역사를 서술하고 연구해왔던 모든 역사가들이 공유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끊임없이 기억과 경험을 계속 쌓아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에서 비로소 우리의 미래도 내다볼 수 있다. 기억과 경험을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도 찾을 수 있으니까.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도덕과 정의를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현세에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는 계속 기록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문제를 역사학의 방식으로 바꿔버리는 역사덕후다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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