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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만색 역사공작단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미디어팀, 서해문집, 2021.)

Dog君 2021. 5. 21. 01:08

 

  이 책에 대한 내 느낌은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에 실렸다. (링크)

 

  서점에서 가야를 다룬 역사책을 보면 '미완의'란 수식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완의 제국 가야', '미완의 왕국 가야' 등등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가야에 대한 상식 중 가장 보편적이면서 그 실상과는 가장 동떨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미완'이란 말은 곧 가야가 완성되지 못한 어떤 실체였음을 말한다. 이때 가야라는 나라가 이루었어야 할 완성이란 고대국가를 말한다. 가야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는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완성됐지만, 가야는 중앙집권적 지배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에 고대국가의 이전 단계에 머물렀으며, 이 때문에 백제와 신라 사이에 끼여 시달리다가 멸망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를 고대의 정치체가 당연히 지향해야 할 종착점으로 상정한 도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발상을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즉 고대의 정치체가 고대국가로 전환하는 데는 다양한 형태의 과정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가 가야 여러 나라가 걸어온 길이라는 것이다. 가야는 중앙집권적인 지배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일 수도 있다. (...) (위가야, 「교과서와 상식 너머의 가야 이야기」, 42쪽.)

 

  우리나라에는 간도와 만주 지역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마땅히 되찾아야 할 우리 옛 영토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영토적 욕망은 오히려 국익을 크게 해치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기경량, 「백두산정계비 대소동 그리고 간도의 정체는?」, 105쪽.)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주택 정책 방향성은 정권의 근대화 노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층 문제와 갈등을 중산층 진입이라는 욕망으로 희석하고 영세민 주택 문제처럼 정권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주택 정책의 방향성이 박정희 정권에서만 있었겠느냐만, 어찌 됐건 한국의 뿌리 깊은 전통과 같은 이 시스템의 오리지널리티는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과 서울시장 김현옥에 의해 완성됐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도 이 시스템은 변하지 않은 채로 서울의 개발 방향을 결정했다. (김재원, 「'불도저' 시장이 만든 신기루, 중산층」, 176쪽.)

 

  물론 앞서 이야기한 《삼국사기》 기록을 대체로 믿는 입장의 역사학과 그 기록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역사학 중 어느 하나가 우월하다거나, 또는 어느 것 하나만이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록을 믿는 입장에서는 그 기록을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정안지를 밝히는 데에 중점을 두고 사료를 비판한다. 반면에 기록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입장에서는 기록의 오류가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록에서 역사적 사실을 얼마만큼 또는 어떻게 추출해낼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사료를 비판한다. 결국 두 입장 모두 엄정한 사료 비판을 통해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힌다는 역사학자의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학자들은 오늘도 계속해서 사료에 말을 걸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대답을 들었다 믿으며 그 대답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위가야, 「신라 장군 석우로, 그의 미스터리한 삶과 죽음」, 418~420쪽.)

 

  발해사는 간단하게 '우리 민족의 역사' 개념으로 편재하기에 곤란한 역사다. 그렇다고 해서 발해사가 결함이 있는 역사라는 뜻은 아니다. 이 세상이 또렷한 원색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역사에서도 여러 색이 겹치거나 혼합된 영역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것을 발해사가 가진 소중하고 고유한 특성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발해는 고구려의 유산을 상당 부분 물려받았고, 그 영토의 일부는 한반도에 걸쳐 있었다. 또한 멸망 이후 많은 유민이 고려로 넘어와 한국사의 흐름에 합류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발해사를 한국사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이 나라가 품고 있는 '비한국사적' 요소들 역시 외면하거나 가치절하하지 말고, 공정하게 평가하며 조명해야 할 것이다. (기경량, 「'삼국통일'은 통일일까?」, 448~449쪽.)

 

  한 가지 덧붙여 말하고 싶은 점은 사건의 결과가 긍정적이라 해도, 남의 요청으로 낯선 땅에 가서 본 적도 없는 이들과 싸우다 죽고 다친 이들의 흔적은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은 인간을 이해해 가는 학문이다. 그들의 발자취마저 끌어안고 '어제의 그 일'을 되짚어본다면,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오늘의 내 일'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강진원, 「출격! 조선 총잡이, 러시아와 맞서다」, 474쪽.)

 

  (...) 역사학은 지금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어제의 그들에게서 찾아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어제 그들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본 뒤 오늘의 우리가 처한 현실과 나아갈 길을 생각해보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강진원, 「만들어진 실학」, 4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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