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진이, 지니 (정유정, 은행나무, 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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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은행나무, 2019.)

Dog君 2021. 5. 21. 01:10

 

  고의건 아니건 간에 어떤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 그것이 옳은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했노라고 자기합리화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죄책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돌아왔을 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쪽이 어느 쪽인지는 명백하다.

 

  이렇게 쓰고 보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할 것 같지만, 글쎄... 대체로 우리는 후자의 사람들을 두고 별 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쓰는 도덕주의자 내지는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라고 냉소하지 않나.

 

  내가 무엇을 꿈꾸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뭘 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다루고 연구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그날 밤에야 알아차렸다. 길 건너 골목에 숨어 그 아이가 철장에 갇힌 채 삼륜차에 실리는 걸 보던 순간에, 삼륜차가 비바람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그 순간에.
  나는 NGO에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한들 이미 떠나버린 아이를 무슨 수로 찾겠나 싶었다. 스승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기운도 없고, 기분도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 고백하기 싫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려 애썼으나 스스로 입힌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은커녕 나날이 덧났다. 침팬지관에 드나들 때마다, 침팬지들과 만날 대마다, 팬을 볼 때마다 킨샤사의 아이가 불려왔다. (...) (77~78쪽.)

 

교정. 1판 14쇄

221쪽 마지막 문단 : 들여쓰기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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