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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생각의힘, 20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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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생각의힘, 2020.)

Dog君 2021. 5. 21. 01:12

 

  며칠 전에 타임라인이 ㅇㅅㅇ의 헛소리로 살짝 시끄러웠다. 이 주장을 굳이 논박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애정해 마지 않는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에서도 계속 지적했듯이) 이 주장이 '존재하지 않는 허수아비 때리기'이기 때문이다. "3.1운동은 알고 보면 엄청 폭력적이었어!"라고 말하지만, 진지하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 그 누구도 3.1운동이 순수하게 비폭력적인 운동이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만세운동 와중에 순사나 면장을 두들겨 팬 사례가 부지기수고 주재소가 관공서가 습격당한 경우도 많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만세운동의 일부였다는 점은 근래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다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ㅇㅅㅇ 같은 치들에게 반박한답시고 "3.1운동은 비폭력이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완전히 평화롭고 비폭력적이었던 3.1운동'이야말로 ㅇㅅㅇ 같은 자들이 만들고 싶었던 '존재하지 않는 허수아비'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그러니까 '폭력' 역시 만세운동의 일부였다는 점을 인정한 다음에 그 폭력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으며 어떤 성질이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타당한 자세란 거다. 그렇지 않고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라는 이분법적인 성격 규정에만 매달린다면, ㅇㅅㅇ 같은 치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는 영원히 깨지지 않다.

 

  나는 그래서 (SNS나 유튜브에서 인기 좋은) ㅈㅇㅇ이나 ㅎㅎㅍ 류의 역사 이야기를 어마어마하게 싫어한다. 겉보기에는 ㅇㅅㅇ 류의 이야기에 대한 통렬한 반박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이분법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상은 ㅇㅅㅇ과 비슷한 프레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서로를 욕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존재 이유를 강화시켜주는 사이이기도 하다. ㅈㅇㅇ이나 ㅎㅎㅍ이 있는 한 ㅇㅅㅇ도 사라지지 않을 거다.

 

  ㅇㅅㅇ 류의 이야기를 정말로 끝장내고 싶다면,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근거하고 있는 인식의 기반 자체를 허물어야 한다. 서로에게 모멸감을 주고 최대한의 모욕을 주기 위한 자극적이고 짧은 언사들이 아니라, 왜 그런 생각들이 횡행하는지를 따져묻는 한편 서로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는 자들이 발 디딜 공간을 없애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ㅈㅇㅇ이나 ㅎㅎㅍ에게 역사학이란 상대방과의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인문학이란 마땅히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고의 기초체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제학의 ㄱ도 모르는 내가 이 책이 흡족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는 지금의 정치지형을 우려하면서도 상대방을 인종주의자나 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기보다 그러한 혐오와 불신의 기저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를 먼저 검토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이민, 자유무역, 기후위기 등을 살핀다. 이 책에 따르면 몰려오는 이민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나 자유무역과 성장이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상식은 근거가 없거나 검증이 불가능한 명제들이다. 반대로 재분배가 모두를 가난하게 할 것이라거나 사람들의 도덕성을 해이하게 할 것이라는 걱정 역시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거나 검증이 불가능하다. 도리어 그런 상식들 때문에 각각 인간 개체의 존엄을 경시한 결과가 지금과 같이 팽배한 혐오와 불신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각자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후반부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검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2021년 현재, 우리 세상은 정말로 "힘든 시대"다. 세상 사는 것은 점점 팍팍해져만 가고, 박탈감도 덩달아 커져만 간다. 여차하면 혐오와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은 시대다. 그래서 이렇게 "힘든 시대"일수록 인문학의 할 일이 많아진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신뢰를 회복하여 혐오와 불신이 발디딜 틈을 없게 하는 일 말이다. 그게 바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인문학]'이겠지.

 

ps. 아까 위에서, 요새 학계에서는 그 누구도 3.1운동을 '비폭력'으로 수식하지 않는다고는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전히 3.1운동에 주저없이 '비폭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 포털에서 '비폭력 3.1운동'으로 검색해보시라. 대통령의 올해 3.1절 경축사가 제일 먼저 나올 거다. 내가 이래서 이 정권의 역사인식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미세한 차이에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한 정교한 설명, 또는 복잡한 단계를 길게 이야기해야 하는 종류의 설명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당연히 주어지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 그래서 우리는 학계의 경제학자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일에 나서기를 꺼리는 심정을 아주 잘 안다. 이야기를 온전하게 전달하는 데는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불명료하고 설익은 이야기로 들리거나 신중하게 한 말이 상당히 다른 의미로 왜곡될 위험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하지만 몇몇 중요한 예외를 제외하면 그들은 대개 가장 강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고 경제학의 최근 연구가 보여 주는 결과들을 깊이있게 논의할 인내심은 가장 없는 사람들이다. (...)
  우리는 '단언'하는 경제학은 좋은 경제학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한 곳이어서, 많은 경우 경제학자가 대중과 소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그의 결론 자체가 아니라 그 결론까지 도달하기 위해 밟은 경로다. (...)
  이 책은 그러한 연구가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의 전황 보고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좋은 경제학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무엇을 알려 주는가? 우리는 사실과 공상을, 과감한 가정과 견고한 결과를, 우리가 바라는 바와 알고 있는 바를 구분해 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면서, 현대의 가장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결론만이 아니라 결론에 도달한 과정까지 아울러 보여 주고자 한다.
  (...)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존엄과 유대를 향한 인간의 깊은 열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물이나 곁가지가 아니라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은 간극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더 나은 길로 여겨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다시 중심에 놓는다면 우리는 경제의 우선순위와 사회가 구성원들을 (특히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돌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를 전제로 하되, 이 책이 다루는 구체적인 사안 중 어느 것에라도, 혹은 어쩌면 이 사안들 모두에 대해 우리와 다른 결론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에 그저 끄덕여 달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연구 과정에서 우리가 택했던 방법론, 그리고 우리가 느끼고 있는 희망과 두려움을 여러분과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에는 아마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와 대화르 나누고 있을 것이다. (25~29쪽.)

 

  (...) 사람들은 분열되기 쉽다. 그리고 다시 통합될 수 있다. 사람들이 분열되기 쉽다는 것은 이민족 혐오자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민족 혐오를 정치적으로 부추기는 오늘날의 많은 정치인들에 대해 우리가 매우 우려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들이 저지르는 일의 해악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혐오와 해악을 신중하고 주도면밀하게 없애지 못한다면 국가에 끔찍한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 (...) 많은 사람이 인종주의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인종주의적 편견이 표현될 때는 [인종주의 그 자체의 표현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겪는 고통이나 좌절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2008년과 2012년에는 오바마에게 투표를 하고서 2016년에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두 후보가 각각 어떤 정치적 의제를 대표하는지에 대해 잘 몰랐을 수는 있겠지만, 이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했다고 해서 인종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닐 뿐더러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다. (220쪽.)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을 잃어 버렸다. 민주주의는 퇴색되었고 마치 여러 부족 간의 합의와 비슷한 것으로 변질되었다. 부족들은 우선순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신중하게 고려하기보다 부족적 충성심에 기반해 투표를 하고 가장 규모가 큰 부족들의 연합이 승리한다. 그들의 후보가 아동학대자인지, 그보다 더 심한 짓을 저지른 사람인지 등은 상관없다. 상대편이 집권할 가능성을 지지자들이 몹시 우려하는 한, 승리자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조차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가져다줄 필요가 없다. 정치인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서 공포심에 불을 지피는 데 매진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선거에서 승리해 권력을 잡고 나면 그 권력을 이용해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며, 대안적인 목소리를 닫아 버리려 한다. 더 이상 '경쟁'을 걱정해야 할 필요가 없도록 말이다. (...) (238쪽.)

 

  여기서 핵심은 수세대에 걸쳐 경제학자들이 매우 진지하게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경제 성장의 근본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부유한 나라에서 성장이 다시 시작될지, 그 가능성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좋은 소식은 그것을 알게 되는 게 언제이든 간에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모두 자국 경제 내에서 명백한 낭비 요인들을 없앨 수 있다. 이것으로 영속적인 고도성장에 불을 당길 수는 없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후생을 크게 향상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성장의 기관차가 다시 달리게 될지, 언제 그렇게 될지는 알지 못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고, 읽고 쓸 수 있게 되고, 당장의 절박한 처지를 넘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면 성장의 기차에 올라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은 알고 있다. 세계화의 승자인 나라 중 많은 수가 공산주의 시기 동안 인적자본에 많은 투자를 한 나라(중국, 베트남 등)이거나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해 인적자본에 많은 투자를 한 나라(타이완, 한국 등)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정책의 세계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후생에 분명하게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펴는 것이 부유한 나라의 성장률을 2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끌어올릴 수 있는 조리법을 찾는 것보다 수백만 명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훨씬 크리라는 점이다. (...) (352~353쪽.)

 

  (...) 프로그레사와 비슷한 '조건부 현금 이전 프로그램conditional cash transfer program, CCT'이 남미 전역에서, 그리고 더 멀리는 뉴욕에서도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대부분 프로그레사와 마찬가지로 '조건부' 조항을 두고 있었고 무작위 통제 실험을 통해 주기적으로 효과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일련의 실험 연구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어도 으레 이야기되던 안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 근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보겠지만, 그들은 술 마시는 데 그 돈을 다 써버리지도 않았고 일을 그만두지도 않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개도국 전역에서 재분배 정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 역할을 했다. 인도에서는 2019년 선거에서 처음으로 주요 정당 두 곳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이전하는 프로그램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둘째, 이후 여러 나라들이 프로그레사 모델을 조금씩 변형해 시도해 보면서, 원래 '조건부'로 프로그램을 고안했을 때 전제했던 바와 달리 명시적인 조건을 붙여 관리 감독하지 않아도 수혜를 받는 가난한 사람들이 충분히 올바르고 타당하게 행동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분명히 드러났다. 요컨대, 재분배에 대한 공공 담론의 방향이 완전히 전환되었고 여기에는 프로그레사 및 그 뒤를 이은 프로그램들에서 나온 실증 근거들이 크게 기여했다.
  (...) 결국, 여기에 걸려 있는 것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제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개념이다. 우리에게 자원은 부족하지 않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불화와 불신과 분열의 벽을 뛰어남게 해 줄 아이디어다. 이를 명시적으로 추구하면서 세상의 문제들에 더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관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정부, 비정부기구, 또 그 밖의 다양한 영역에서 전 세계의 유능한 사람들이 사회적 프로그램들을 효과도 있고 정치적 실현 가능성도 있도록 재구성할 수 있다면, 역사가 우리 시대를 다행스러운 시대였다고 여기게 만들 기회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467~469쪽.)

 

  (...) 기업들은 아이다호주의 보이시에서 사업을 접고 활황을 구가하는 시애틀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시애틀로 이사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이사 가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친구, 가족, 추억, 소속감 등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다 두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지역 경제가 쇠락하면서, 떠나지 않기로 한 선택이 점점 더 끔찍한 실수로 여겨지게 되고 분노가 점점 더 쌓이게 된다. 이것이 지금 독일의 구 동독 지역에서, 프랑스의 중소 도시와 농촌에서, 영국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한 지역들에서, 미국의 공화당 성향 주들에서, 또 브라질과 멕시코의 많은 지역에서 벌이지고 있는 일이다. 부유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활황을 구가하는 도시들로 민첩하게 이동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뒤에 남겨져 버렸다. 이것이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브라질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를, 영국에서 브렉시트를 불러온 세상이며,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재앙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551쪽.)

 

교정. 1판 00쇄

342쪽 22줄 : 총계aggregate (aggregate에만 볼드가 되어 있다)

510쪽 4줄 :  퓨  리서치 센터는 (띄어쓰기 두 칸)

518쪽 17줄 : 푸르르게 하는 데 -> 푸르게 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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