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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마녀들 (김태우, 창비, 20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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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마녀들 (김태우, 창비, 2021.)

Dog君 2021. 7. 22. 06:53


1. 영국 국립문서관에서 한참 자료를 열어보던 재작년 언젠가, 총리실 문서군(PREM)에서 모니카 펠튼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접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북한을 방문하여 피해 상황을 조사한 그에 대하여 법적 처벌이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한 내용이었다. (안타깝게도 검토의 결과까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과문한 편이기 때문에 나는 그 문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모니카 펠턴과 국제민주여성연맹(Women’s International Democratic Federation, WIDF, 국제여맹)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https://discovery.nationalarchives.gov.uk/details/r/C201799) 그리고 다시 그 이름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나온 김태우의 『냉전의 마녀들』에서 그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2-1. 『냉전의 마녀들』은 국제여맹이 한국전쟁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조사위원회의 여정을 따라간다. 기존의 지배적인 관점에서 국제여맹의 조사위원회는 그저 공산주의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단체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국제여맹은 단순한 공산주의적 혹은 좌파적 조직이 아니었다. 국제여맹의 정치적 지향은 공산주의보다는 반파시즘 정도로 느슨했고, 그 때문에 구성원 각각의 성격이나 조직의 운영방식에서도 개방성과 다양성이 두드러졌다. 따라서 국제여맹의 한국전쟁 조사위원회의 목적 역시 단순히 미국과 유엔군의 전쟁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참상을 조사하고 고발하는 것에 있었다.

국제여맹은 그 창립 주체, 규약, 회원단체, 핵심적 활동 내용 등 모든 측면에서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갖고 있었다. 그 설립 초기부터 북아메리카의 흑인 여성들과 아시아·아프리카의 식민지 여성들까지 평등한 회원자격으로 회의에 동참할 수 있었다. 이는 국제연맹 이전의 그 어느 국제여성단체에서도 볼 수 없었던 평등하면서도 다원주의적인 회의 모습이었다. (...)
이와 같은 국제여맹에 대한 해외 역사학계의 재평가는 나로 하여금 국제여맹의 한국전쟁 조사활동에 관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배가해주었다. 국제여맹이 단순한 소련의 전선조직이 아니라면 그 조사활동 또한 간단하게 국제공산당 선전활동으로 단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
특히 펠턴은 한국전쟁 조사활동 이전에 여성운동이나 평화운동과 관련된 경력이 사실상 전무했다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국제여맹의 회원도 아니었다. 펠턴은 반전평화운동은커녕 오히려 전쟁기의 '애국주의적 활동'을 통해 자기 커리어의 정점을 구가하고 있던 집권 여당의 대표적 여성 리더였다. (...)
그러나 펠턴은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참가를 이유로 영국 내의 여러 정치인들과 언론으로부터 한순간에 국가에 대한 반역자로 비난받기 시작했다. (...)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용서의 기회는 한국전쟁 조사보고서의 왜곡과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충심으로 반성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펠턴은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 결국 그녀는 1956년 인도의 항구도시 마드라스(Madras, 첸나이의 옛 이름)로 이주하여 1970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망명객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드라스에서도 제3세계 여성들의 삶과 관련된 탈식민주의적·여성주의적·평화주의적 저서들을 집필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6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한국전쟁 보고서의 내용을 단 한번도 부정하지 않았다. (13~16쪽.)

1945년 국제여맹의 핵심 주장인 반파시즘,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 등의 내용은 앞에서 살펴본 20세기 초 자유주의 여성운동은 물론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이상과 목표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 국제여맹은 진보적 좌파 여성주의 국제 우산조직으로서, 기존 여성운동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던 아시아·아프리카·남미지역의 여성들이나 서구사회 내의 비(非)백인 여성들까지 적극적으로 포용했던 것이다. 이 같은 개방성과 다양성은 그 조직의 핵심 구성원, 운영방식, 주요 활동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국제여맹의 대표적인 리더들 또한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
국제여맹의 주요 구성원들은 공산주의보다는 오히려 '반파시즘'이라는 측면에서 광범위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 이들은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며 폭력적인 파시즘의 성격에 대한 자각 속에서 반파시스트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국제여맹의 지도그룹을 형성한 여성들은 전간기(戰間期)의 파시즘 부상과 스페인 내전 등에 의해 정치화된 여성 지식인, 과학자, 예술가, 운동가 등이 주를 이루었고, 나치 점령기간 동안 망명이나 감금을 경험했던 이들이 다수를 형성했다. (60~62쪽.)


2-2. 국제여맹의 이러한 지향은 조사위원회의 구성에도 반영되어 있다. 조사위원회는 각국에서 온 총 21명의 조사위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 모두가 좌파였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사실상의 주인공인 모니카 펠턴만 해도 그렇다. 그는 공산주의자이기는커녕 영국 집권층의 일원으로 각종 고위공직을 역임하던 사람이었고 반전평화운동과도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모니카 펠턴이 사실상의 주인공이 된 것에는 저자가 접근할 수 있었던 자료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 국제여맹의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조사위원회가 지향하고자 했던 정치적 중립을 드러내기에 모니카 펠턴만큼 적절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만찬장의 한쪽 끝에 앉아 있던 노라 로드 위원장이 환영 연설에 답하기 위해 일어섰다. (...) 로드는 적절한 감사의 말을 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모두는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의 행위를 폭로하기 위해 한국에 가는 것에 매우 기쁩니다. ...... 그리고 우리들 중 서구 국가들로부터 온 조사위원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들을 매우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펠턴이 제안했다. "조사위원들이 다시 모였을 때, 당신이 연설에서 말한 내용들은 당신의 개인적 입장의 표명에 불과하며, 향후에는 그 같은 정치적 연설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펠턴의 제안은 꽤나 도발적이었다. 펠턴이 요구한 내용은 노라 로드 위원장 개인의 입장에 불과한 주장을 조사위원회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말한 데 대한 사과의 표명이자, 향후 그 같은 정치적 연설이 조사위원회 내부적으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로드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로드는 이미 펠턴과 플레론의 비판을 완전히 수긍하고 있었다. (...) (111~114쪽.)


3. 이 책의 강점으로 일단 꼽을 수 있는 것은 서술방식이다. 이 책은 보통의 연구서와 달리 대화를 적극적으로 삽입하여 현장감을 최대한 살렸다. 물론 저자 스스로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 대화 하나하나가 엄격하게 검토한 사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소설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이런 서술이 훨씬 더 '역사학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건조한 학문적 글쓰기에서는 사료에 포함된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기가 힘든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처럼 대화체를 사용하게 되면 그런 미묘함을 살리기가 더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냉전의 마녀들』은 '역사학적 글쓰기'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시도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4. 저자의 전작이 『폭격』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겠다.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전쟁 피해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한국전쟁 당시의 공중폭격에 대한 치밀한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이 책의 저자가 김태우 선생님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어쩌다가 갑자기 한국전쟁 조사위원회를 연구하시는지 약간 의아했는데, 아래와 같은 서술을 읽으면서 '아, 이 책은 이 분 아니면 쓸 수 없는 책이구나' 싶었다. ㅎㅎㅎ

조사위원과의 인터뷰에 응한 모든 신의주 시민들은 하나같이 폭격 후 전폭기 기총소사 사실에 대해 언급했고, 이것이 도시지역 완전소각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1950년 말 미공군의 폭격작전에 대한 소련군 총참모부 작전총국의 분석에 의하면, "폭격 7~10분 후 폭격장소에 적 전폭기가 나타나 공중청소를 실시"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대외선전을 위한 문서가 아니라, 미공군 전투행동 분석을 위한 소련군의 내부 비밀문서였다.
북한주민들의 진화작업을 방해하기 위한 또다른 활동은 소이탄 투하 직후 도시 전역에 걸쳐 시한폭탄을 투하하는 행위였다. 국제여맹 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공군 폭격기들은 주로 소이탄 투하 후에 다량의 시한폭탄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시한폭탄은 다양한 시간대에 걸쳐서 산발적으로 폭발했는데, 낙하 후 20일 이후에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 뒤 국제여맹 조사위원들은 평양지역 현지조사 과정에서 10~20분 간격으로 세발의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광경을 지척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자칫하면 조사위원들의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152쪽.)


5.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전쟁기의 전시 성폭력에 대한 언급이다. 아마도 국제여맹에서 파견한 조사단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싶다. 한국전쟁기 성폭력에 대한 연구는 김귀옥 선생님의 책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 단행본 수준으로 정리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국제여맹의 보고서를 통해서 제기된 아래의 사실들은 향후에 검토해볼만한 연구주제가 아닌가 싶다. (다만 안타깝게도 김귀옥 선생님의 책은 완성도가 썩 높은 편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오히려 그 때문에 연구의 여지는 여전히 많이 남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

평양 여성들은 이 낯선 언굴의 외국 여성들과의 대화에 상당한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한 공포와 치욕감이 밀려들면서 이내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곤 했다. 이들은 유엔군 점령기간 동안에 많은 여성들이 유곽(遊廓, brothel)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에 대해 증언했다. 또다른 상당수는 자신의 친구들과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지하에서 여러주 동안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평양 여성들은 자신이 직접 겪었거나 가족 혹은 이웃이 겪은 성폭력에 대해 말할 때 조바심 속에서 입술을 한껏 오므리거나, 머리를 흔들거나, 얼굴이 상기되거나,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곤 했다. (178~179쪽.)

펠턴은 옵샨니꼬바의 말처럼 원래는 런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의약품을 선물로 가져갈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이는 펠턴을 공산주의 원조자로 그럴 듯하게 윤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옵샨니꼬바도 북한여성들을 위한 생필품이나 의약품 대신 고작 두장의 스카프만을 들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일종의 소련 "군사원조"(military aid)로 날조될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옵샨니꼬바는 북한 현지에서 처참하게 생활하는 여성과 아이들의 일상을 보고서는 너무 조심스럽게 처신한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미안하기는 펠턴도 마찬가지였다. (186쪽.)

국제여맹 보고서에 등장하는 세번째 성폭력 유형으로는 여성을 납치하여 '유곽' 등으로 불리는 특정 장소에 감금한 후 장기간에 걸쳐 집단적 성폭력을 가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국제여맹 조사위원들은 평양시 여성동맹 청사 아래에 거주하고 있던 한 여성(강북산의 딸)으로부터 미국인들이 평양시 국립예술극장을 '군인유곽'(army-brothel)으로 활용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거리에서 여성들을 마구 잡아 감금했기 때문에, 강북산의 딸은 이를 무서워하여 40일 동안이나 지하토굴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평양 시민 66세 권송동 또한 미국인들이 평양시 국립예술극장을 유곽으로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신천군의 김숙선은 미군이 시내에 들어왔을 때 유곽을 설치하고 여성들을 잡아 이에 감금했다고 증언했다.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고운 처녀들은 미군과 영국군 장교들에게, 곱지 않은 여성들은 남한군에게 성노예로 제공되었다고 한다. 이 여성은 유곽에 감금되었던 여성들 중에 세 사람은 여전히 생존해 있고, 나머지는 모두 학살되었다고 주장했다. 개천시의 리춘형은 미국인들이 부녀자들을 붙잡아 지프차에 태워 유곽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247~248쪽.)


6. 한국전쟁에 관해서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국제여맹 조사위원회의 존재를 알린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굉장하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제목은 아쉽다. 어떤 뜻으로 '마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영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국제여맹과 조사위원회가 스스로를 '마녀'로 자처한 적도 없을 뿐더러 '마녀'라는 키워드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서 충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원고를 다 쓴 후에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 아닌가 싶은데, 그 때문에 책 제목과 내용이 살짝 따로 노는 느낌이 있다.

1차세계대전기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여성대회를 개최하여 국제여성단체를 조직하는 모습은 2차세계대전기 파시즘에 반대하는 프랑스 여성들이 국제여성대회를 개최하여 국제민주여성연맹을 조직해내는 모습과 유사하다. 게다가 1차세계대전기 국제여성위원회 여성사절단이 전쟁 당사국 정부와 국민들에 의해 조롱받고 배척당하는 모습은, 국제여맹의 아시아·남아메리카지역 조사위원회 활동이 관련 서유럽 국가(식민 모국)들에 의해 저지당하거나 맹렬하게 비판받았던 상황과 흡사하다. 앞서 우리는 한국전쟁기 국제여맹의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또한 관련 관련 국가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거칠게 비난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적을 초월한 다국적 여성들의 평화 연대, 남성적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맞대응, 자국민의 조롱과 비난을 감수한 용감한 실천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기 국제여맹 활동은 장구한 여성평화운동의 도전과 시련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한 챕터를 구성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310~311쪽.)


7-1. 아쉬운 점 혹은 보태고 싶은 점이 하나 더 있는데, 국제여맹 조사위원회의 활동 전반에서, 음, 뭐랄까, '여성단체'로서의 정체성은 잘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그렇고 본문에서도 그렇고 '여성주의 평화운동'이라는 키워드를 말하고는 있지만 전시 성폭력에 대한 조사 정도를 제외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여성주의'가 드러나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것은 1940~1950년대 여성운동 자체의 한계일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이 책에서 여성주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고 ㅠㅠ)

7-2. 나는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 페미니즘에 대해 밝은 분이 제대로 비평을 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대의 페미니즘과 지금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국제여맹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서평이건 저자와의 대담이건 어떤 식으로든 비평과 토론이 이뤄진다면 이 책이 훨씬 더 가치로워지리라 생각한다.

교정. 초판 1쇄
152쪽 14줄 : 폭파하는 -> 폭발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폭파하다'의 의미는 '폭발시켜 부수다'이다. 따라서 시한폭탄이 스스로 터지는 상황을 말하는 이 대목에서는 '폭발하다'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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