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문학동네, 2002.) 본문
처음 절반까지는 '그래 나도 이렇지 ㅋㅋㅋ'하며 공감하며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니 난 이정도는 아닌데;;'하며 읽었다. 『향수』의 독서광 버전이라고나 할까.
라인홀트는 11월의 이슬방울처럼, 얼어붙은 듯 그렇게 몇 시간을 아버지의 서가에 서 있었다. 스무 권의 책을 고르는 동안 트렁크에 책을 넣어다가 다시 꺼내기를 수차례 되풀이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바다에서 죽은 자들』을 집어들었다가는 이내 내려놓았고, 엔첸스베르거의 『늑대들의 옹호』는 별 소용도 없는 스물한번째 자리만을 거듭 차지했다. (물론 어머니가 몰래 넣은 성경의 경우야...... 그 다음은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분량이 너무 많았다. 전권을 모두 챙기려면 괴테 전집의 절반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라인홀트는 늘 전집은 완벽하게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4~25쪽.)
세상이 뒤집어져 지구가 멸망한 후 죽었다 깨어나도 1미터는 1미터다. (옳다.) 논리학의 아킬레스 건인 거북에게도, 차 안에서 차의 진행과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승차권 검사원에게도, 행간의 숨은 뜻을 읽어내야 하는 독자에게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팔크 라이놀트는 숙련되고 양심적인 독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행 건너뛰기를 싫어했다. 이 지적인 육상경기를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가로질러 읽기? 말만 들어도 입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대강 훑어 읽기?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글자들은 자석처럼 그를 끌어당겼다. 그에게 텍스트는 북극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언제나 희미한 소리와 미묘한 불일치와 놓치기 쉬운 의미를 찾기 위해 텍스트에 귀를 기울이고 뿌연 안개 속을 헤집으며 언어의 배열을 더듬고 미묘한 위앙스를 파악하고 탁한 증기와 신선한 공기를 구별했으며, 텍스트를 의미의 관절들로 나누고 마지막으로 메타퍼적 완충장치를 점검했다. (107~108쪽.)
Quis leget haec? ('누가 그런 것을 읽겠는가?') (169쪽.)
팔크 라인홀트는 그때까지 타이핑이라는 역겨운 기술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손가락을 오므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오싹 끼쳤다. 자신의 비범한 성격이 글자에 생생하게 나타나도록 그는 언제나 육필로 글을 썼다. 단조롭게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는 성격의 몰락(슈펭글러? 맞다)을 알리는 조곡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의 도약이 이루어졌다. 그가 기계의 검은 거울(아르노 슈미트) 앞에 앉은 것은 하나의 도약이었다. 하나의 매체를 뛰어넘어 다른 매체로 건너간 것이다. 잠깐, 이것은 기계적인 모든 것에대한 그의 혐오와 모순되지 않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이제 라인홀트는 예전의 라인홀트가 아니었고, 때문에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와는 정반대였다. 모니터에 텍스트가 나타났을 때에야 그는 그 텍스트 안에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었다. 그는 마우스를 움직여 텍스트 안 이곳저곳을 옮겨다녔다. 언젠가 그는 그 텍스트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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