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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정은정, 한티재, 20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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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정은정, 한티재, 2021.)

Dog君 2022. 1. 16. 21:20

 

  나름 역사학 언저리에서 20년 가까이 얼쩡댄 경험으로 말해보자면, 역사학은 기술skill이라기 보다는 태도attitude에 가깝다. 취직이 잘 안 된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도 그런 특성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사학과 학부 마쳐봐야 공학이나 법학처럼 뭔가 뚜렷한 기술을 배우는 게 없으니 일정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그 '태도'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태도'가 있냐 없냐에 따라 세상 모습도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학과에서 배우는 '태도'란,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디테일에 주목하는 자세다. 어떤 개념이든 문화재든 서적이든, 내 눈 앞에 있는 물리적 실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체가 만들어져서 내 눈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더듬어가는 자세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학은 세상의 모든 대상을 다루지는 못한다. 나는 역사학이 미처 다루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과 저자를 좋아한다. 그런 저자로 농촌이나 음식에 관해서는 단연 정은정이다.

 

  정은정은 『대한민국 치킨전』으로 유명하고 나 역시도 그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지만, 사실 정은정은 그가 쓴 석사논문의 인용도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아는 바가 맞다면 정은정의 석사학위논문은 『새힘』이라는 농촌 대상 잡지를 다뤘다. 세부전공 때문에 간혹 해방 이후 농촌경제 쪽 논문을 종종 읽을 일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정은정의 논문이 인용되길래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간혹 석사학위논문 중에서도 적절한 주제와 밀도 높은 서술 덕에 인용도가 상당히 높은 것이 종종 있는데 그의 논문이 딱 그러한 모양이다. 빼어난 문장과 사려깊음이 묻어나는 그의 글은 이미 학위논문 단계에서도 싹수가 보였던 거다.

 

  잡설이 길었는데, 뭐 암튼 내 앞에 놓인 한끼의 식사 역시 누군가의 노동과 수고로움 덕이라는 것을 이 책 덕에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는 거다. 밥 하나 먹는데 수고롭게 이런 것까지 다 알아야 하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지만, 근데 어쩌냐, 그런 수고로움을 포기하고 당장의 편의만을 따질 때 세상이 점점 지옥에 가까워지는 것을.

 

  마켓컬리는 발품 팔아가며 장 보는 부담을 덜어주었고, 배민은 식당 주인과 복잡하게 메뉴를 물어보고 주문하는 일을 없앴다. 소비자의 수고가 줄어든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음식 뒤에 숨은 노동은 점점 비가시화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이 누군가의 노동과 수고를 통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잊어가고, 그렇게 조금씩 세상은 더 매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변한다.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나도 뭐 잘난 척 하며 남들을 힐난할 처지는 못 된다. 나 역시도 배민과 쿠팡이츠와 택배에 기대어 사는 건 마찬가지니까. 다만 이런 책을 통해서 내가 누리는 편의가 누군가의 노동과 수고로움을 맞바꾼 결과물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뿐.

  문장은 빼어나고 문제제기는 묵직하며 그 와중에 짐짓 엄숙한 척도 하지 않는 저자의 솜씨에 탄복한다. 엄혹하고 암울한 현실을 말하면서도 갓 지은 밥 같은 온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몇 군데 밑줄을 긋다가 급기야는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것 같아서 결국 아무 곳에도 밑줄을 긋지 못한 책이기도 하다.

 

  아이가 하숙생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신세를 지게 되면 부모들은 어떻게든 인사를 전하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아이가 친구네서 밥을 자주 얻어먹으면 손에 주스라도 한 병 들려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내 아이 밥을 12년이나 챙겨 주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모르고 산다. 아이가 맛있게 돈가스 반찬을 먹고 온 날은, 누군가는 뜨거운 유증기를 마시면서 돈가스를 수백 장 튀겨 내고 뜨거운 소스를 졸인 날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비닐 앞치마와 비닐 장화, 위생모와 마스크, 팔 토시까지, 한증막과 같은 급식실에서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복장으로 밥을 하고 국을 끓여 내 아이의 밥을 챙겨 주는 이들이다. (45쪽.)

 

  자영업의 상징이 된 외식 자영업은 혹독하기 이를데 없다. 자영업이 비대해진 산업의 구도를 바꾸기보다는, 자영업의 영세성과 비전문성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내리고 프랜차이즈 산업을 육성해 온 후과이다. 골목식당 주인이게 기술 수련을 하라며 호통을 치는 유명 외식 사업가가, 기술이 없이도 식당을 차릴 수 있다며 부추기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오너인 세상이다. 골목에서 성실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척에 동일 업종의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오는 일은 얼마나 황당한 분열인가. 자신과 가족들의 몸을 갉아 생의 구멍을 메우는 자영업자의 고통을 당장 덜어낼 비책은 없다. 다만, 장사도 힘든데 넘쳐 나는 식당 솔루션 예능을 보면서 자기 탓까지 하며 기운을 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게으르지 않았다. (68쪽.)

 

  나도 카카오톡으로 선물 받은 치킨 상품권을 써 볼 일이 생겼다. 치킨점 취재를 꽤 했던 터라, 저간의 사정을 모르지 않아 치킨을 시켜 먹을 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배달 어플 수수료라도 아끼시라고 직접 전화로 주문을 하고 가급적 현금 결제를 한다. 무엇보다 내 번호가 주문 이력에 저장되어 있어 모니터에 자동으로 뜨기 때문에 "몇 동 몇 호지요?"라고 알아봐주는 것도 좋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프티콘으로 결제를 한다고 하니 "죄송하지만" 주문 불가 매장이라 했다. (...)
  생각보다 많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기프티콘 결제를 거부한다. 팔지도 않을 거면서 상품권을 왜 파느냐는 소비자의 불만은 당연하다. 그래도 욕을 먹으면서도 주문을 받지 않는 이유는 기프티콘으로 결제를 받으면 가맹점 점주들이 내야 할 수수료율이 너무 높아서다. 치킨점의 경우 6퍼센트를 넘는 곳이 많다. 심한 곳은 수수료가 10퍼센트에 육박하고 결제액 정산도 거의 일주일이 걸린다. 장사란 것은 당일 결제할 것들이 많은데 정산이 너무 느리다.
  (...) 프랜차이즈 본사는 상품권 발행으로 안 먹을 사람도 먹게 되니 매출 증대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한번 깔린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이탈할 수도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점주들은 많이 팔아 봤자 남는 것도 없고 결국 몸만 축날 뿐이라 말한다.
  완전경쟁 시장인 치킨은 소수점 이윤 싸움을 한 지 오래다. 그런데 배달 어플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해 시장을 뒤흔들더니 이제 모바일 상품권이 등장해 이래저래 또 뜯길 일이 생겼다. 사정 모르는 이들에게 들어 먹는 욕은 덤이고 말이다. (112~113쪽.)

 

  (...) 스타 셰프 현상,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 스타 셰프 현상'에 대한 다양한 진단은 넘친다. (...) 강의에 가서 "여성 셰프 이름 좀 대어 보세요" 하면, 중년 여성들도 남성 요리사의 이름은 줄줄 꿰지만 여성 요리사는 '빅마마'를 꼽는 정도이다. 그나마 본명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가끔은 한복선 씨나 액젓으로 유명한 하선정 씨를 대답하기도 하고 탤런트 김수미 씨를 꼽기도 한다. 주로 반찬 만드는 일이다.
  세상의 음식은 대체로 여성들 손에서 만들어지지만 대체로 큰 인기와 돈을 버는 이들은 남성 셰프들이다. 이에 대한 나름 논리적인 해명으로는 셰프의 세계가 매우 폭압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해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칼과 불, 그리고 욕설과 폭력적인 군대 분위기에 여성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기 때문이라 한다. 주방장을 일컫는 '셰프'chef가 실제로 군대의 직위에서 따왔으니 처음부터 군대의 성질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럼 역으로, "수십 자루의 칼과 대형 솥, 그리고 아주 커다란 가스 불을 다루는 학교급식 현장에는 힘 좋은 장정들이 가면 딱이지만 안 가는 이유는 임금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요리의 세계에서 여성 셰프가 살아님기 어려운 이유는 무겁고 위험한 현장이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여성 요리사가 배제된 시장이 고급 레스토랑 시장이기 때문이다. (117~118쪽.)

 

  농가가 돈을 벌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체험 행사를 통해 도농간 이해가 더 깊어지기는커녕 손쉽게 농촌을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 생태 체험을 내세우지만 농촌 체험 행사에서 지켜질 생태는 과연 무엇일까? 기실 이 수확 체험 자체가 반反교육적이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농업이고 자연이라면, 각종 수확 체험은 심지 않아도 거둘 수는 있는 기이한 체험이다. 무엇보다 농사는 기승전'풀'. 풀 뽑는 일에서 시작하고 풀 뽑는 일에서 끝난다. 하지만 심는 과정도, 돌보는 과정도 없이 오로지 열매만을 취하는 것, 이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풍경이다. (...) (173~174쪽.)

 

교정.
121쪽 밑에서 2줄 : '빅 피처' -> '빅 픽처' (거의 오탈자를 안 내는 저자라서 여기에도 뭔가 다른 의도가 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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