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쌀 재난 국가 (이철승, 문학과지성사, 2021.) 본문
뇌피셜 하지들 마시라고 역사학에서 그렇게나 연구해놨는데 이렇게 뇌피셜로만 점철된 책이 아직도 나오고, 심지어 잘 팔리기까지 하니 마음이 영 언짢다.
세대론 관련해서는 사둔 책도 안 읽을 확률이 100%가 되었으니 어디 내다 팔든가 해야겠다.
이제부터 나는 쌀로, 더 정확히는 쌀을 재배하는 문화와 시스템으로 많은 것을 설명할 것이다. 바로 '쌀 이론rice theory'의 수립이다. (...) 나는 쌀 이론을 통해 오늘의 한국 사회의 구조와 그 부산물들을 파헤칠 것이다. 그 목록은 위계 구조와 불평등, 불평등에 대한 인식, 급속한 경제 발전, 협력과 경쟁의 공존, 행복과 질시, 교육열과 사회이동, 노동시장 구조, 성차별, 연공 문화의 존속 그리고 소통의 문화까지 포괄한다. (48쪽.)
나는 지금껏 벼농사 체제의 국가가 예측할 수 없는 재난에 시달려온 벼농사 공동체의 보험 및 재난 대비 시스템에서 기원함을 주장했다. 쌀 경작 시스템과 재해가 끊이지 않는 생태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자리매김한 것이다.
(...)
동아시아에서 국가가 재난에 어떻게 대비하는가는, 집권 세력의 명운을 갈랐다. 동아시아의 엘리트(를 꿈꾸는 자)들은 재난을 수습할 자신이 없으면 국가권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재난 구제에 실패한 엘리트들을 처참한 재난의 현장으로 끌어내려 그 죗값(구제 실패)을 돌려받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106~109쪽.)
(...) 쌀 재배 지역 주민들은 밀 재배 지역 주민들에 비해 물질적 소비(경제적 지위)와 육체적인 외양(생김새)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타인과 심하게 비교하고 있었다. 그들이 비교하는 대상은 일반적 타자가 아닌, 바로 주변 친구들과 일터의 동료들, 심지어는 가족들이었다.
결론적으로, 벼농사 지역 정주민의 행복은 관계로부터 온다. 나와 내 자식이, 내 가족의 수확량과 소득과 지위가 이웃보다 더 높고, 우월해야 한다. 내 행복의 근원은, 나라는 독립된 개인의 내면의 충만감이 아니다. 내가 남보다 더 잘났다는 것을 남의 눈으로 남의 입으로 확인받을 때, 동아시아 벼농사 지역의 정주민은 더욱 행복해(뿌듯해)한다. (...)
벼농사와 밀농사 지역에 대한 이러한 비교 분석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바로, 벼농사 체제에서는 협업에 대한 필요 때문에 가까워진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애정이 '애증'으로 전화하며, '공동체의 유대감'이 '비교와 질시의 문화'와 함께 싹튼다는 것이다. 우리는 논일을 하고 쌀밥을 함께 먹으며, 그렇게 사랑하고 질시하게 된 것이다. 당신의 행복과 불행의 뿌리는 당신의 '관계'에 있으며, '관계적 행복' 혹은 '관계적 불행'의 뿌리는 벼농사 체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135~136쪽.)
산업화 세대의 기업 리더들이 조직을 건설하며 부딪힌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는 보상 체계였다. (...) 직무평가 시스템을 마련하고 숙련 수준에 맞춰 보상을 하기에는 시간도, 인력도, 노하우도 없었다. 이 완벽한 '부재'의 공간을 채워준 것이 동아시아 마을 공동체의 '연공 시스템'이었다.
동아시아 기업의 연공제는, 두 가지 가정을 농촌 공동체로부터 이식했다.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숙련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입사 과정의 스크리닝을 통과한 모든 직원이 동일한 성장곡선을 가지리라는 가정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 간의 (최초의 혹은 입사 이후의) 숙련 차이는 세대 내부의 협업과 조율에 의해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좁혀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즉, 평준화의 가정이다. (149쪽.)
벼농사 체제의 유산인 연공제는 오늘날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뼈대다. 하지만 그 뼈대는 이제 혜택에 비해 유지비가 훨씬 많이 드는, 구조적 위기의 국면을 초래하고 있다. 나이 많은 자가 세상을 리드하고 지배하는 룰, 그리고 나이와 연차에 따라 동일한 임금을 공유하는 룰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은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326쪽.)
교정. 제1판 제2쇄
106쪽 4줄 : 매개채로서 -> 매개체로서
261쪽 2줄 : 도히힐러 -> 도이힐러
373쪽 9줄 : 도히힐러 -> 도이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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