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불평등의 세대 (이철승, 문학과지성사, 2019.) 본문
세대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 치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저자는 아마도 90년대 후반 언제쯤 한국을 떠나서 얼마 전에 한국에 돌아오신 것 같은데, 생각이 딱 그 때에 멈춰계신 듯.
글쎄, 더 이상은 논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 한국 사회에서 '세대'란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 그 이상의 것, 즉 '자원 동원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와 자원을 주고받는 '품앗이 네트워크'로서, 다시 말해 '경제 공동체'란 이야기다. (...) (33쪽.)
산업화 세대가 경제성장의 수혜를 40대에 진입하면서 최초의 자산 축적을 통해 경험했다면, 386세대는 70~80년대를 한층 넉넉해진 가정경제, 넘치는 일자리, 더 늘어난 계층 상승의 기회를 통해 경험했다. 이 세대가 민주화 투쟁을 접고 대거 기업과 시민사회로 진출하는 90년대에 이르면, 한국 사회는 '가난'의 고통과 기억을 어느 정도 벗어던지고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세계화를 향해 줄달음치기 시작한다. (...)
(...) 386세대는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산업화세대를 아래에서 치받으며 20대 때부터 스스로를 조직화했다. 이들은 20대에 이미 권위주의 정권의 물리적 폭압에 맞설 수 있는 전위 조직과 대중 조직을 건설했다. 이 '조직화'의 경험과 그 결과로 남은 네트워크가 이 세대의 최대 자산이다. 20대에 목숨 걸고 지하활동을 해본, 아니면 야학, 공부방, 학회라도 같이해본 경험, 아스팔트 위에서 전경 및 사복조와 육탄전을 벌이며 쌓은 동지애는 386세대에게 평생의 자산이 된 것이다. (38~39쪽.)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폭압과 실정에 맞서 싸우며 재결집했던 시민사회 진영은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7년 조기 대선 국면을 승리로 이끌면서 정치권으로 대거 진입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노동-시민사회 운동의 두 핵이었던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중 후자의 리더들(박원순, 김기식, 김민영 등)은 급속히 야권의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차출되었다. 이 와중에 시민사회의 상층 지도부들은 사실상 야권의 일부가 되며, 시민사회를 이끌었던 386세대 리더들의 상당수는 직업정치인이나 전문 관료로 변신했다. 시민사회가 국가화된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시민사회의 상층 지도부가 대거 세대의 대표로서 정치권력과 국가기구를 장악한 것이다. (...) (61쪽.)
(...) 386세대의 선두 주자들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기업과 정당에서 수뇌부로 부상했다. 이들이 30대 후반부터 기업의 임원진으로 등극한 경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기 정치권과 국가 부문에서 386세대가 약진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의 기업들은 정치권 및 국가 부문의 세대교체에 맞춰 국가권력에 '연줄이 닿는 동기'들을 이사진으로 배치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정치권과 국가 부문에서 386세대가 장기 집권할 경우, 기업의 386세대가 조기 등판하여 장기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 또한 '세대 네트워크'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81쪽.)
(각주) (...) 같은 세대 내에서 대기업 정규직은 나이가 듦에 따라 무난하게 근속연수가 쌓이며 연공에 의해 급여가 높아지고 조직 내 권력을 향유하며 얻게 되는 유무형의 간접 소득benefits을 누릴 수 있게 되는 반면에,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근속연수가 쌓여 생기는 '동아시아 연공 시스템'의 수혜를 즐길 수 없는, 직무급에 가까운 고정급여 시스템 아래 계약 기간에 따라 연명할 수밖에 없다(정이환 2013).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다가, 은퇴를 앞둔 50대 후반에 최고점에 이른다. 조직에서 살아남은 자와 조직에서 탈락한 자 혹은 조직에 진입하지 못한 자 사이의 간극이다. 바로 '네트워크 위계'의 정점에 오른 자와 거기에 속하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인 것이다. 386세대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도 평균 근속연수가 높지만, 그 내부의 (노동시장 지위의 차이로 인한) 근속연수 격차도 최대인 세대다. (113쪽.)
(각주) (...) 울산·마산·창원·부산 지역의 노조 지도자들의 상당수는 고등학교 학연에 기반한 선후배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22쪽.)
시장에서 지위 상승을 위해 분투해온 386세대는 (정치권의 386세대에 비해) 균일한 이념 집단이 아니다. 화이트칼라의 세계에서 경쟁을 통해 기업 조직의 정점에 오른 386세대와, 블루칼라 생산직의 세계에서 연대를 통해 '전투적 조합주의' 노조를 건설한 386세대는 '나이만 같을 뿐' 이념적으로는 다른, 세대 내의 상호이질적인 집단들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두 집단 모두 '동아시아 위계 구조'를 철저히 이용하여 현재의 권력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두 집단 모두 학맥과 인맥에 기반하여 자원·기회·정보를 동원했으며, 동아시아 위계 구조를 통해 아랫세대를 조직화했다. 이념적으로 전자는 '시장자유주의'를, 후자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랫세대가 조우한 세계는 '헬조선'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 (134쪽.)
(각주) (...) '세대' 개념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특정 사회에서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이 특정한 주요 사건(자연적 격변, 경제적 위기, 정치적 혁명이나 민주화) 및 그와 연관된 사회화 과정을 동시에 겪음으로써 형성되는 '각인된 기억'과 그에 기빈하여 형성된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167쪽.)
저출생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과 함께,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은 한층 활발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형 남성 위계 구조로 짜여 있는 노동시장과 기업 조직에서 여성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양성평등의 문화를 만들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들 청년 여성들의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투쟁의 가장 큰 장벽은, 아마도, 오늘날 각 분야에서 최상부를 장악하고 있는 386세대 남성들일 가능성이 크다. 산업화 세대의 가부장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출산휴가를 써본 적도 줘본 적도 없다. 민주화 투쟁과 조직화의 경험에는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분담의 의무 또한 없었다. 기업을 세계화하기 위한 이 세대의 장기 출장 시, 육아의 의무는 오롯이 여성들의 독박이었다. (...) (247쪽.)
내가 '세대론'을 앵글로 잡았다는 것은, '세대'가 궁극적 분석의 목표가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대론의 앵글로 조명하고자 했던 피사체는 바로 '위계 구조'였다.
그렇다면, 왜 '세대'의 문제를 그 자체로 들여다보지 않고 '위계'의 문제로 치환해야 하는가? 그것은 '세대 간의 분노와 저항'을 야기하는 발화점이―계급 구조라기보다는―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위계 구조'이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김 씨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그 상사 및 입사 동기들과의 관계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주(자본가)가 아니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사주의 딸이 물컵을 집어 던지며 바로 앞에서 괴성을 질러대면 모를까, 김씨에게 사주와 말단 사원 사이의,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은 너무나 먼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조직화된 총노동과 조직화된 총자본이 충돌하는 순간은 김 씨의 일상에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김 씨가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고 평가받는 단위는 그 회사의 조직 구조 그리고 여타 협력업체들과의 관계지, 사주와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 (274쪽.)
한국 사회에서 이 두 능력은 종종 동시에 행사된다. 내 분야인 학계를 예로 들어보자. 오늘날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가의 연구비가 집행되지만, 과거에는(분야에 따라서는 지금도) 인맥을 통해 각종 기업들과 정부 기관들로부터 연구비를 가져오는 일이 흔했다. 교수 A씨가 대학 동창인 공기업 간부를 통해 억대의 연구비를 수주하고, 대학원생들과 박사 후 과정 연구자들을 끌어들여 여러 편의 논문을 생산한 다음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하자. 교수 A씨는 위의 두 능력을 모두 갖춰 자신의 수행성을 극대화한 경우다. 이 경우, 교수 A씨가 아이디어를 내거나 데이터를 모으지 않아도,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방법론을 몰라도, 논문은 생산되고 업적 점수는 올라간다. 네트워크 능력과 위계의 힘을 결합시켜 수행 능력 없이 '수행성'을 발휘한 경우다. A씨가 속한 대학과 시장(학문 및 언론 시장)은 A씨의 내적 수행성의 진위를 가릴 능력도, 그럴 의사도 없다. A씨는 대학에 간접비를 떼어주고, 과의 젊은 연구원들을 먹여 살리고, 논문 발표와 연구비 수주를 통해 대학과 학과의 순위가 올라가는 데 '점수'를 보태준 효자 같은 존재다. 이럴 경우 A씨가 하는 유일한 일은 논문 제출 직전에 제목을 바꾸는 것이다. A씨는 '교신저자'로 등록되고, 프로젝트에 생계가 매여 있는 박사들과 대학원생들은 '퍼스트' 혹은 '세컨드' 저자 지위에 만족하며 분업과 거래는 지속된다. 여기서 A씨가 지닌 모든 생산성은 공기업 간부인 대학 동창과의 '끈끈한 관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 유의하자. '네트워크 위계'는 '네트워크'와 '위계'가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며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산업화 세대와 386세대를 거치며 한국 사회의 조직마다 뿌리를 내렸다. 산업화 세대는 물론 386세대마저도 이러한 네트워크와 위계에 기반한 수행 능력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그러한 능력을 '정치력'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수행 능력으로 격상시키기까지 했다. 오히려, 386세대는 산업화 세대보다 더 조밀하고 거대한 이익 네트워크와 동아시아 위계 구조를 결합하여 '네트워크의 확장성'과 '착취적 효율성' 측면에서 한국형 위계 구조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303~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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