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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서필훈, 문학동네, 20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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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서필훈, 문학동네, 2020.)

Dog君 2022. 5. 22. 20:56

 

  그저 커피에 관한 개인적 경험과 상념이나 늘어놓은 책이었다면 이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개인적인 수준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의 작물이라면 생산지와 소비지가 대체로 일치하기 마련이지만 커피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적도 부근의 농업국가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커피는 무역망을 따라 다른 부유한 국가들로 수송된다. 그러다보니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적어도 20세기 이후에는) 세계무역과 불평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일이었다.

 

  시야를 한국으로 좁혀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것도 1920년대 이후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1940년대 이후 커피 관련 업자들의 행보도 그러하다. 또한 최근 들어 커피 소비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여러 이슈들도 그러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고 시간 죽이자고 읽은 책이었는데 그런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어 의외로 기뻤다.

 

  우리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정작 그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브랜드와 주문한 메뉴 이름 정도를 알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마치 고고학자처럼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기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찾아내고 복원해서 세상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 나도 그렇게 커피를 재배한 농부들부터 커피 가공소의 노동자, 커피를 볶는 로스터와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까지, 한 잔의 커피가 누군가의 손에 들리기까지 거기 담긴 모두의 얼굴을 '복원'해보고 싶었다. (14~15쪽.)

 

  스페셜티커피의 정의는 다양하다. (...) 최근에는 '커피 생산자와 산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스페셜티커피의 정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실제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30년 후에는 현재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전 세계 산지의 절반이 더이상 커피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어 커피 산업에 큰 충격을 줬다. (...) 가까운 미래에 커피는 더이상 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커피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지구온난화뿐만이 아니다. 국제 커피 거래가격의 기준이 되는 뉴욕상품거래소의 커피 가격은 2019년 하반기 파운드당 1달러선을 오르내리며 지난 13년 이래 최저 가격을 기록했다. (...) 대부분이 '후진국'인 커피 생산지와 '선진국'인 커피 소비지가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는 점은 세계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남북문제'와 오랫동안 정체된 커피 가격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게 한다.
  커피 가격은 뉴욕(아라비카)과 런던(로부스타)의 커피거래소를 통해 매일 공시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하지만 실제 커피 가격은 생산국가의 농장 단위까지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다국적기업, 그리고 가격 변동성을 조장하는 투기자본의 입김에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커피 가격 결정 과정에 커피 생산자, 생산국의 이해는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 (...)
  오늘 아침 맛있게 마신 커피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어떻게 새안했고 정당한 대가를 받았는지, 커피 생산자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제때 밥을 먹고 지내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커피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미처 마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스페셜티커피는 좋은 음료 품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의 얼굴을 한 커피다. 나는 스페셜티커피가 커피 산지의 생산자가 지속가능한 삶을 여우이하는 데 기ㅓ여하고, 생태계 보존에 도움이 되고, 생산자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커피가 거치는 길 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60~63쪽.)

 

  커피녹병은 원래 대부분의 커피 농장에서 늘 작은 말썽을 부리다가 건기가 시작되면 사라지는, 감기처럼 그리 대단치 안은 곰팡이병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우기와 건기의 균형이 깨진면서 커피녹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들은 더 강해졌고 더 오래 기승을 부렸으며 내성이 생겨 기존의 약이 더는 듣지 않았다. 추운 곳에서 활동을 못하던 곰팡이는 따듯해진 기온 탓에 고도가 높은 커피 농장까지 올라왔고 무방비였던 농장들은 절멸했다.
  중미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커피녹병은 중미에서만 70퍼센트의 농장들을 rka염시켰고 32억 달러(약 3조 7000억 원)의 손해를 끼치며 170만 개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국제열대농업센터CIAT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지역의 50퍼센트가 2050년까지 커피 재배지로 부적합해진다. 아직 먼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벌써 기후변화는 많은 커피 생산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소농은 자금력과 대처 능력이 뛰어난 대농장에 비해 기후변화에 훨씬 더 취약하다. (...) (87~88쪽.)

 

  그의 커피밭은 처참할 정도로 커피녹병 피해가 심각했다. (...) 절망적이었다.
  그가 새로운 희망이라며 나를 데려간 곳은 일종의 묘목장이었는데 너무 초라하고 작아서 나무 그늘에 한 무더기 묘목을 모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이 묘목들이 더 자라면 커피밭의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옮겨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품종이 뭐냐고 물었더니 정부 관계자가 튼튼한 품종이라고 해서 심은 거라며 이름은 파카스Pacas란다. 아연실색했다. 파카스는 커피녹병에 매우 취약한 품종으로 업게에는 이미 이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차마 이 얘기를 그의 새로운 '희망'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농장을 둘러봐도 펄퍼가 보이지 않아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 100달러면 살 수 있는 펄퍼도 없이 수십 년 동안 커피 농장을 운영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 (106~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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