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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최양현·최영우, 효형출판,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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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최양현·최영우, 효형출판, 2022.)

Dog君 2022. 8. 28. 18:22

 

  한국인이 전쟁 책임이나 식민지 피해 보상 등을 논하는 것은 언뜻 꽤 단순한 일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한국인이 피해당사자였으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일본군 군속(군무원)으로 복무한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은 뭐라고 쉽게 말을 보태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 역시 피식민인의 일부였고, 그들의 군 생활이 구조적으로 강제된 측면이 있으며, 지위 역시 잘 해봐야 일본군의 말단 실무자 정도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단순히 일본제국의 일부로 간주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일본군과 싸웠던 연합군, 특히 포로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일본군과 얼마나 차이가 났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글쎄요, 개중 어떤 이는 일본군의 위세에 호가호위하며 연합군 포로들을 괴롭혔을 수도 있죠.

 

  이 책에 대한 거개의 언론보도나 저자(최양현)의 인터뷰는 1923년생 최영우의 일기가, 짓밟힌 식민지 젊은이의 꿈과 삶을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최영우가 그저 자신의 한과 피해를 호소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읽기에, 이 글에서는 억지로 끌려갔다거나 혹은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거나 하는 뉘앙스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자 최영우는 일본군에 지원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도 어쩔 수 없이 자원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좀 더 넓은 세상에 나가보고 돈도 많이 벌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깔려 있었음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어차피 회고의 형식으로 쓴 글이니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었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죠.

 

  전쟁이 끝나고 이번에는 거꾸로 최영우가 포로가 된 이후를 다룬 후반부에서도 고통과 억울함보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것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극악한 수용소 생활을 말하면서도 분노와 울분을 표하기보다는 일본군 군속으로 자기가 지었던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기의 고생이 그간의 자기 행동에 대한 응분의 댓가일지도 모른다고도 쓰니까요.

 

  어쩌면 이 글은 어느 보통 젊은이의 실패담일지도 모릅니다. 앞날이 창창했던 최영우라는 어느 젊은이의 꿈이, 불과 몇 년간의 경험으로 온통 뒤틀려버리는 과정을 담은 글이니 말입니다. 그러면 그는 왜 굳이 시간을 들여 자기의 실패담을 길게 정리했고, 또 왜 이걸 굳이 손자 최양현에게 전해주었을까요.

 

  글쎄요, 최영우도 굳이 대단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아마 처음 글을 쓸 때는 그저 자기 삶을 반추해보는 정도의 소박한 마음이었겠죠.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까지 그렇게 소박한 상태로 남지는 않습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우리들 역시 최영우와 비슷한 신세일 것이 확실하잖습니까.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난 독자의 마음을 글로 정리하려니 그게 또 쉽지가 않네요. ㅎㅎㅎ;; 수십 년쯤 앞서서 살았던 1923년생 최영우의 회고담을 읽고 나면 다음 세대인 우리는 어쩐지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게 또 그렇게 쉬운 일이기만 하겠습니까...

 

  (읽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그 느낌을 글로 정리하려니 갑자기 현타가 오네요. 아니, 글이 왜 갑자기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요. 아아 나도 몰라아아아아앜.)

 

  목적지에 당도하자 사람들이 모여든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엄지를 추켜들고 흔들며 "닛폰!"이라고 외쳐 댄다. 일본군이 제일이라는 뜻일 게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이라고 의사를 표시한다. 달리는 기차에서도, 기차가 쉬고 있는 정거장에서도 전투모와 군인만 보이면 곳곳에서 손을 흔들어 댄다. 실로 지금 이 땅은 환호의 일색이다. 일본군은 해방자이고, 원수 화란을 몰아낸 자이며, 은인이다. 이들에게는 수백 년 만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62~63쪽.)

 

  (...) 자카르타로 돌아가는 길에는 말랑으로 올 때와는 달리 원주민의 환호성이 없다. 정거장마다 거리마다 일본군만 보면 원주민들이 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질렀는데... 그런 격렬한 환영을 받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카르타에 도착한 우리는 총분견소에 수용된다. (90쪽.)

 

  예전 생각이 난다. 우리가 포로들을 감시했을 때에 약간의 친절과 연민을 보였더라면, 저들도 지금 우리에게 두 배의 호의와 동정으로 갚으련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들이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200쪽.)

 

교정. 1판 1쇄

160쪽 각주 : 레이션(Ration)이란 -> 레이션(ration)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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