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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 (이꽃맘, 삶창,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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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 (이꽃맘, 삶창, 2022.)

Dog君 2022. 10. 1. 10:09

 

  예전에 '난 그녀와 키스했다(Toute premiere fois)'(2015)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럭저럭 유쾌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보통의 로맨틱코미디 영화였다. 평범했던 그 영화에서 유독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주인공 제레미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의 "번지르르한 속물 결혼은 반대지만 용감한 게이 결혼은 찬성"이라는 대사다. 프랑수아즈는 아들 제레미의 커밍아웃과 동성결혼을, 자신이 "번지르르한 속물"이 아니며 넓은 이해심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즉 그에게 소수자의 삶과 그에 대한 태도란 남의 눈에 '힙'해 보이기 위한 치장 정도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것이 있을리 없다.

 

  물론 남의 신념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또 프랑수아즈 같은 태도가 반드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념과 정치의 번드르르한 겉면만 취해서 제 삶을 치장하는 장신구처럼 활용할 뿐 그 이념과 정치를 떠받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은 외면하는 태도에 대해서 절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저자 이꽃맘 선배는 강원도 원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농업노동자다. (약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무척 따르는 선배랑 결혼한 사이... 음, 여기까지.) '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는 직접 흙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메주를 띄우는 그의 일상과 생각을 모은 책이다. (제목만 보고 사회학이나 인류학을 떠올리면 곤란...) 이 책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노동의 현장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현실감이다. 저자는 학생운동가와 노동운동가로 전투적인 시간을 보냈지만, 그의 글에서 현실에 대한 분노나 고발은 의외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농업과 가사) 노동의 고단함과 권태가 더 많이 보인다.

 

  도시소비자인 우리는 종종 그 고단함과 권태를 잊는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건 노동의 최종 결과물 뿐이니 그 과정까지 깊이 보아내기란 참 어려운 법이니까. 게다가 노동과 생산물을 소외시키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노동의 고단함과 권태를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잊는 순간 우리도 결국에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멀어져 바람과자 먹고 구름똥 싸는 신선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지게 되니까.

 

  세하가 스스로 불안함을 떨치고 유치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학교가 가지는 힘 때문이었습니다. 10명의 아이들과 2명의 선생님이 함께하는 세하네 작은 유치원에서는 도시 큰 유치원에서는 힘든 세밀한 돌봄, 기다림이 가능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한 반에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도시 유치원 선생님들에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골 작은 학교가 가진 최고의 장점입니다.
  이런 시골 학교의 장점을 아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시골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유하가 다니는 우리 마을 학교 고산초등학교에는 원주 시내에서 오고자 하는 아이들이 줄을 섭니다. 지역 아동이 부족해 통합 지역 학교로 운영하는 고산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 딱 10명의 아이들만 받습니다. 전교생이 17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에 빠졌던 학교에 시골 학교의 장점을 살려보겠다는 교장선생님이 오시고 소문이 나자 낡은 학교 건물을 새로 지어야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예산을 받아 2020년 새 학교 건물을 지었습니다.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불가능해 도시 학교들이 문을 닫았을 때도 유하네 마을 작은 학교는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한 반에 10명, 절로 거리두기가 되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잘 살필 수 있었습니다. 도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해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코로나 우울증까지 겪는다고 하는데 유하네 학교는 코로나가 오자 더 세밀하게 아이들을 보살피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예비 1학년 수요 조사를 하는 작년 9월이 되자 지역 아이까지 12명의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오겠다고 신청을 했습니다. 자리가 꽉 차자 지역 아동은 정원이 넘어도 받아준다는 얘기에 동네로 이사 오겠다며 집을 알아보는 부모들까지 생겼습니다. 새 건물에 병설유치원까지 생겼으니 3월이 되면 3학년 유하와 진짜 여섯 살 세하는 함께 학교를 다닐 예정입니다. 유하 엄마는 원주살이 4년 만에 운전에서 해방입니다. (32~33쪽.)

 

  잘 삶은 콩을 작은 소쿠리에 담아 지푸라기를 꽂고 방 한구석에서 이틀 동안 이불을 엎어두면 콩들 사이에 거미줄 같은 실이 생깁니다. 방 한구석 이불 속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딱 이틀의 시간이 지나면 쿰쿰하고 구수한 냄새가 유하네 작은 집을 가득 채웁니다. 청국장입니다. 잘 뜬 청국장에 유하네의 여름을 담은 고춧가루와 천일염을 넣어 빻습니다. 한 알 한 알 손으로 뭉쳐놓으면 먹기 좋은 청국장 완성입니다. (52쪽.)

 

  탄소 배출의 주범이 공장식 축산이라며 채식이 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대부분의 채소들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탄소를 팍팍 배출하며 자란 것이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사계절 내내 신선한 채소를 키워내기 위해 탄소 덩어리 비닐을 수없이 써야 하고,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써야 한다는 것. 공장식 축산 못지않게 채소도 공장식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내놓는 농업정책이라는 것이 채소공장을 늘리는 것밖에 없는 현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농업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인간의 먹거리 때문에 지구를 죽이는 겁니다. (143~144쪽.)

 

  그러니 위와 같은 부분을 읽을 때 나는 특히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채식을 하는 것이 기후위기와 동물복지를 위한 굉장한 실천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비건의 문제의식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처럼 구체적인 노동의 눈에서 보면 비건 역시 다른 보통의 식습관처럼 농업노동을 착취하고 탄소를 배출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비건이라는 것이, 비건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이들의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악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한다. (나는 그래서 『육식의 종말』이 도덕적으로 꽤 거만한 책이라고 느꼈다. ㅎㅎㅎ)

 

  글을 쓰고 보니 너무 냉소적인 것 같은데 ㅎㅎㅎ;; 하지만 꼭 비건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실천'이, 구체적인 현실에서까지 애초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는지 꼼꼼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그 "어떠한 (...)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 할테니까.

 

ps. 참고로 이 책에 나도 아주 짧게 나온다 ㅋㅋㅋ 그런데 너무 짧게 나와서 저자와 나만 알아볼 수 있다 ㅋㅋㅋ;;

 

ps2. 이 책의 구입과 독후감 작성에 대해서 나는 이꽃맘 선배로부터 그 어떤 외압도 받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 쓰면 더 이상해 보일라나...)

 

교정. 초판 1쇄
74쪽 7줄 : 경단층 -> 경반층 (137쪽에는 "경반층耕盤層"으로 나오니 한자 표기를 여기로 옮기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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