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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장한업, 아날로그, 2018.)

Dog君 2022. 11. 6. 14:58

 

  장한업이 쓴 '차별의 언어'를 읽었습니다.

 

  이화여대에서 불어불문학과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언어습관들을 통해 우리가 시나브로 소수자, 특히 민족적 소수자(ethnic minority)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컨대 '우리', '다문화' 같은 표현들에서 그런 현상을 포착해낼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다문화'에 대한 저자의 지적에는 밑줄을 그을만 합니다. 애초에 '다문화'라는 말은 '혼혈'이니 하는 표현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지만, 저자가 보기에는 이 말 역시도 결국에는 차별과 배제라는 점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저자가 책 말미에서 잠깐 언급하는 '상호문화'라는 것이 어쩌면 그 대안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저자가 '상호문화'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은 다소 안타깝습니다.)

 

  다만 한국 사회가 소수자, 특히 민족적 소수자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고 . '우리'나 '단일민족', '다문화' 등의 표현이 가진 문제점은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던 것들입니다. 그 때문에 소수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깊은 분들에게는 이 책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책이 이미 한참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가 본론에서 알고 보면 한국이 오랜 '다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탕수육 개인적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탕수육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지금 당장 현실의 문제이고, 제노포비아와 헤테로포비아의 원인을 단지 개인의 도덕성 부족에서만 찾아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차별적 언사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인종적 편견은 대개 만들어진 착각에 불과하고 그러한 차별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퇴행시킨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 현실의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이주와 이산의 역사, 그리고 한국 역사의 다문화적 성격만 말하는 것은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건 꼭 저자 뿐만이 아니고, 대개의 역사학자 전공자가 현실 문제를 말할 때 빠지는 함정입니다.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ㅠㅠ)

 

  주의하실 것은 이 책이 "차별"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 대상은 민족적 소수자로만 국한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민족적 소수자 외의 다른 소수자 집단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소수자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친숙하고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말이 칼이 될 때'(홍성욱, 어크로스, 2018.)를 좀 더 권합니다. (참고로 그 책은 2018년 탕수육 최고의 책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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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가정'은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외국인인 가정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떠올리지요. 이 가정의 정확한 명칭은 국제결혼가정입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 국제결혼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
  유럽에서는 국제결혼가정을 부를 때 '이민자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 이처럼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이 용어 속에 한국인 특유의 단일의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단문화가정'이라고 전제해야 하는데 이 전제 자체가 단일의식의 산물인 것입니다.
  '다문화교육'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교육은 대개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학업을 보충해 주는 교육'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 결국 한국에서 실시되는 다문화교육은 극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동화주의적 적응 교육인 셈입니다.
  이는 미국의 다문화교육과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미국 다문화교육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제임스 뱅크스는 다문화교육을 "다양한 사회 계층, 인종, 민족, 성 배경을 지닌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 과정과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교육 개혁 운동"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다문화교육이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인데 반해 한국의 다문화교육은 '극소수 학생'을 위한 교육인 것이지요. 사회 계층, 인종, 민족, 성 등의 다양한 범주가 '이민자'라는 단 하나의 범주로 축소된 것입니다. (9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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