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역사비평사, 2009.) 본문
이 책은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2002)과 '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2000)을 2009년에 전 2권의 개정판으로 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제목이 되기는 했지만 애초에는 별개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두 권은 구성은 약간 다릅니다. 방송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차이를 우열의 차이로 이해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보다는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겠다... 정도로 이해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특정한 학술적 쟁점에 대한 논쟁을 확인할 수 있는 1권은 역사학 학부 정도 혹은 역사학 연구 동향을 보다 깊이 살펴보시고 싶은 독자에게 어울릴 것 같고, 2권은 대학 교양이나 중고등학교 근현대사 수업 혹은 한국 근현대사를 간단하게 훑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1권처럼 학술적 논쟁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을 학계에서는 흔히 '선행연구 검토'나 '연구사硏究史 정리'라고들 부릅니다. 내가 다루려고 하는 주제에 관해서 나보다 앞서 공부했던 이들이 어떤 주장을 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죠. 저희 방송에서 다뤄온 학술서들을 떠올려보면, 대개 서론이나 1장에서 기존의 관점들을 검토하고 비판했잖습니까. 그게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이 작업을 절대로 생략할 수 없는 것은, 후대의 연구자는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논점을 명확히 하고 앞선 이들이 미처 살피지 못했던 공백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이상합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이렇게도 말했다가 저렇게도 말했다니, 그리고 그렇게 왈가왈부했던 역사를 따로 정리하기까지 한다니, 이게 대체 헛짓거리인가 싶기도 합니다. 역사학이라는 것이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더 많이 밝혀내는 공부라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는 과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완전한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점차 지식이 쌓여서 완전한 지식의 상태에 이르는 과정이어야 하겠죠.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유닛을 움직여 맵을 점점 밝혀나가는 것처럼요.
하지만 역사학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탑을 쌓는 것처럼 아래층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정된 사료를 여러 방향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다른 사료와 묶어서 교차검증하기도 하며, 자명해보이는 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보기도 하는, 지극히도 비효율적인 방식이죠. 그러다보니 시행착오가 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얻은 결론 도 니맛도 내맛도 아닌 밍숭맹숭한 숭늉 같기만 합니다. 그나마도 나중에에 언제건 허물어질 수 있는,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구요. (그래서 학술서가 재미없는 것인지도...)
그런데 그런 무수한 논쟁과 시행착오의 과정이야말로 지금껏 역사학이 전진해온 방식입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즉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본다는 것은 결국 부단히 질문한다는 의미이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부단히 질문하고 돌아본 결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은 지금의 우리에게 좀 더 명료하게 다가올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우리는 과거를 살펴보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까지 얻습니다.
역사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진하고 있다고, 제가 틈날때마다 말씀드리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역사책이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읽기를 권하는 이유도 그것이구요. 서점에 깔리고 있는 역사학의 성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질문과 성찰을 던지는 것 자체가 역사학의 본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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