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어떤 호소의 말들 (최은숙, 창비, 2022.) 본문
'인권'이 소중한 것은 누구나 압니다. 어떤 경우에도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권리가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인권' 개념입니다. 신분제의 질곡을 부수고 근대에 이른 인간의 소중한 성취죠. 인간의 문명이 근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어쩌면 '인권'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분과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인류의 문명이 이토록 거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종종 탕수육은 '인권' 앞에서 스텝이 꼬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짓밟은 악랄한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할까, 같은 질문 앞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그런 자들의 인권조차 보장되어야 마땅하다고, 인권이란 그렇게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머리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당장 치미는 분노 앞에서는 마냥 그렇게 점잔을 빼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때는 인권을 꼬박꼬박 잘 챙기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빈곤이나 국가폭력, 권위 등의 부당한 힘들 앞에서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제 주위에도 많을텐데,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무언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는 있는지, 그런 것만 생각하면 늘 민망합니다.
탕수육은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당황했습니다. 인권위에서 꼬박 20년을 보낸 조사관의 글이라기에,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고 우리의 인권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이리라 생각했거든요. 억울하게 인권이 짓밟힌 사례들을 보여주며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리라고도 짐작했습니다. (책 읽기 전 탕수육의 몹쓸 편견, 여전하지요? ㅎㅎㅎ)
하지만 이 책은 첫 몇 페이지에서 당장 그런 기대를 부숩니다. 저자는 자기 스스로가 '인권' 앞에서 동요하고, 고민하고, 비겁해지는 존재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백의 근거들로 이 책을 빼곡하게 채웠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권'에 대해 그 어떤 명쾌한 답도 주지 않습니다. 인권의 최전선에서 20년을 뛰어다닌 저자조차도 인권 앞에서 고민하고 고뇌했다는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헛헛한 마음에 그저 한숨만 나오죠.
그럼에도 탕수육은 계속 이런 책에 손이 갑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인권'처럼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보편타당한 가치조차도 그 가치를 둘러싼 현실에 이르면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그래서 실제 현실에서는 쉽고 편하게 정사正邪를 재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맥락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계속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글의 처음 제목은 '억울할 때 읽는 책'이었다. 그런데 글을 써내려갈수록 점점 '권리구제 매뉴얼'이나 '인권 교과서'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지식과 정보를 담은 책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많은데 말이다. (...) 억울함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인권에 관한 지식과 정보도 필요하지만,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인권위 조사관으로 일하며 만났던 다양한 무늬의 사연을, 그 안에서 때론 기가 막혔고, 때론 안타까웠고, 때론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기로 했다. (...)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웅크린 말들'에 작은 스피커 하나 연결해 세상에 조용히 울려 퍼지게 하고 싶었다. (10~11쪽.)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민원 접수 메일 주소의 아이디는 호소(hoso@humanrights.go.kr)다. 인권위 민원 메일 주소를 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구나 무엇이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호소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메일 아이디를 호소로 정했다. 비록 인권 팔이라는 욕을 먹을지라도 더 낮고 어려운 사람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호소를 듣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104쪽.)
진정인은 그날 바로 장사를 접고 경찰서 앞 모텔 방으로 들어갔다. 모텔 옥상에 올라가 경찰서 안마당을 내려다보며 죽음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경찰서에 찾아가 민원을 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사과는 받고 싶은 마음에 "굴비 장수 주제에"라는 말을 사과하라는 민원을 냈지만, 경찰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가 적극적으로 이의신청을 할수록 그는 '말 한마디에 집착하는' '나잇값 못하는' '자식뻘 되는 사람을 괴롭히는' '법을 위반하고 꼬투리를 잡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다. 사실 맨 처음 그의 진정서를 읽었을 때 내게도 비슷한 생각이 스쳤었다. 단순한 말 한마디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사정을 상세히 듣고 나서야 사과를 받고 싶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어떻게든 버티며 존엄을 지켜가는 이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칼이 아니라 한마디 말이나 태도일 수 있다. 문제가 되면 별 뜻이 없었다고 해명되기 일쑤인 그 언동들은 사실 평소에 우리 안에 내재된 차별과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차별과 편견은 어떤 존재를 한순간에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
꼭 어떤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를 진공청소기나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생각 없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살구색을 살색이라고 말하면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은 지워지거나 '틀린'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된다. (...)
우리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납작하게 눌러버리는지를 알아채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예민하게 감각을 열어놓아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이런 마음 상태에 '인권감수성'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 (109~112쪽.)
(...) 인권위 조사관은 피의자 인권을 위해서도 일하는 사람들이며, 아무리 나쁜 범죄자라도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체포되고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가 강간범이라 하더라도 과잉진압으로 상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그에게 있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
'아무리 악랄한 범죄자라도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언제부턴가 이 문장 앞에서 자신이 없어진다. 그날 강간 피의자를 향한 분노와 혐오로 부들부들 떨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인권의 피해자들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무해한 존재이며, 선량한 시민이거나 무고한 희생자, 억울한 피해자였지만, 현실에서 만난 이들이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때때로 악랄하고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에 가까웠다. 그때마다 나는 놀라고 당황하며,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인권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사람의 한계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인권의 이념과 현실 사이에 까마득한 골짜기가 생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그 골짜기는 더 깊게만 느껴진다. 골짜기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처럼 관조하듯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155~156쪽.)
밀양 할머니들이 주장하던 생명권이나 환경권, 공동체의 권리 같은 것은 불법 건축물에 대한 철거명령과 경차의 공무집행 수행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무용지물과도 같았다. 인권 지킴이가 지켜야 할 것은 행정대집행법과 형사소송법이 아니라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어야 하지만 그런 가치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 움막 안에서 목에 쇠사슬을 연결해 누워 있던 할머니들이 끌려나올 때도, 할머니 목에 걸린 쇠사슬이 거대한 절단기로 잘려나갈 때도, 움막 앞에서 기도회를 진행하던 신부와 수녀들이 강제 해산될 때도 경찰들을 향해 호루라기만 불고 또 불었다.
(...)
그 아비규환의 세계를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주민들, 인권활동가들, 동원되었던 경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파른 산길을 걸었다. 두시간이 넘는 하산 길에서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단팥빵을 건네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들의 먹고사는 일과 누군가의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의 간극. 더 잘 먹고 더 잘 살자는 말 속에서 우리는 더 작고, 더 슬픈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설명할 수 없는 허탈함과 분노가 마음에 차올랐다.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더니 연탄을 비벼댄 것처럼 손바닥이 까매졌다. 밀양역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국밥 한그릇을 사먹은 후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몸은 극도로 피곤한데도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183~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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