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우리 안의 친일 (조형근, 역사비평사, 2022.) 본문

잡冊나부랭이

우리 안의 친일 (조형근, 역사비평사, 2022.)

Dog君 2022. 12. 19. 10:05

  이 책은 식민지기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식민주의를 극복[脫]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억압과 착취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식민주의가 우리 안에 남겨둔 '생각의 방식'과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친일'이라고 도발적으로 제목을 지은 것도, 친일을 비판하는 우리 자신 역시 식민주의가 남긴 '생각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임을 지적하기 위함이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관점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꼭 식민지에 국한된 것도 아니구요.

 

  지금 이 시점에서 박정희시대를 조망한다는 것은, 승하한 군주의 공과를 따지는 이조시대 사관의 임무가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를 만든 그 생체권력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이 각인해놓은 '바이오코드'를 찾아내어 청산하는 치유적(therapeutic)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중권, 「죽은 독재자의 사회」,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 창비, 2003, 342쪽.)

 

  탕수육 역시 틈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역사'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나는 또 어떤 사람인지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이라구요. 특정한 한두 사람의 공과를 따지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고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래야 자기자신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구요. (이렇게 자꾸 들여다보고 성찰하려고만 해서 제 자존감이 이렇게 낮은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ㅠㅠ) 탕수육은 그래서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적극 추천하기도 했던 겁니다. 역사학 연구자가 많은 제 타임라인에도 이 책에 대한 상찬이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보면 다른 연구자들 역시 생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넘어서야 할 것은 전통적인 이분법만이 아닙니다. 이미 이분법적으로 양분된 한국 사회의 논의 구조를 해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 책 같은 근본적 성찰이 결과적으로 기존의 권력을 강화하기만 할 뿐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 책은 답해야 합니다. (방송에서 말씀드린 "그래서 결국 조선일보만 좋아하지 않았냐"는 말이 대략 그 맥락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최종욱)에 따르면, '포스트' 담론은 서양의 철학에서 '주체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형식을 통해 표출되었고, 그 결과 윤리와 책임의 문제가 실종되었으며, '진리의 포기'와 '저항의 부정'이라는 결말로 이어졌다. 이것이 한국에서 수용되었을 때 폐해는 더욱 더 큰 것이어서, 포스트주의 자체가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바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체주의는 "수구/진보, 독재/민주, 외세/반외세로 양극화된 우리의 왜곡된 현실 자체를 실천에 의해 해체시키지 못하면서, 말로만 해체를 외치는 행위란 결국 허공을 향해 고함지르는 것처럼 공허하다"는 관점에서, 포스트주의는 결국 쾌락주의와 소비문화만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조한욱,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 2000, 118쪽. 큰따옴표 안은 최종욱, 「포스트주의는 무엇을 포스트했는가?」, 『열린지성』 창간호, 1997.)

 

  물론 '이분법적인 논의와 이분법적인 현실이 서로를 계속 강화시키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런 논의를 통해 그런 순환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습니만, 그러면 또 이야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논리적 미궁으로 빨려들어가지요. (이런 얘기를 술자리에서 하기 시작하면 밤샘각...) 라조기가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독자로서는 결국 이 책에게 '현실적 효용성'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 관해 시원한 답을 얻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탕수육에게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시작되는 책입니다. (어느 영화평론가가 '좋은 영화는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 책에 크게 공감했기에, 이 책에 만족하는 것으로 머무르지 말고 현실적으로 더 유효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올 방법이 무엇인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뭐 그게 탕수육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 싶은 역사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이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해야겠죠.

 

  만주 벌판의 회복을 꿈꾸고 웅혼한 대륙적 기상의 회복을 촉구하는 한국 사회의 반일 민족주의는 어떨까? 거기에 일본제국의 수직성·폭력성을 극복하려는 담대한 성찰이 담겨 있을까? 단지 일본을 반대하고 증오하는 것이 뿐, 일본이 남겨놓은 수직의 폭력과 강한 것에 대한 열망은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3쪽.)

 

  사실은 한국 학계 쪽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쪽이 솔직하지 않을까? 해방 이후 오랫동안 한국의 역사학계는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것은 물론 꼭 필요한 과업이었다. 하지만 민족적 치욕의 치유 과정에서 역사 서술의 객관성이 적잖이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토지조사사업 당시에 일제가 조선인 토지의 40%를 수탈했다는 수십 년간의 교과서 서술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실증적 근거가 박약한 이 주장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 '수탈과 개발론' 또는 '식민지공업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경제사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에는 완고한 민족주의 사관이 낳은 편향을 극복해야 한다는 진지함이 있었다. 공업화라는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그 나름의 치열함이 있었다. 개발과 수탈이라는 양면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문적 진전의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연구자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비판자들의 경멸스런 명명을 한사코 거부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한국 하계의 논의 수준은 한 단계 도약했다. (70~71쪽.)

 

  다시 한번 독립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당대 사람들에게 독립은 그저 지배자를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지주를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탈이나 착취가 아니라 민족의 구성원들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 독립의 참뜻이 있었다. 바로 그랬기에 좌익이 제거된 의회에서조차 저토록 공공의 이익, 공동의 삶을 지향하는 헌법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현대의 평균적 한국인 중 몇 명쯤이나 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까. 적폐 청산, 토착왜구 척결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 중에 저 비슷하게나마 총체적인 공공의 비전을 제시한 이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목소리 높여 친일 청산 외치며 비판하기 좋은 악질 친일파의 죄상을 드러내는 일도 누군가에겐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친일 청산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는지 오늘에 되새기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건 이런 의미일 것이다. (89~90쪽.)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과거사 청산이 쉽지 않았다면서 과거사 청산 자체에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은 반대다. 두 나라의 사례는 과거사 청산이 결코 한 번에 끝날 수 없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할 현재진행형의 과제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과거사 청산은 한쪽이 완승하는 흑백논리의 게임일 수도 없지만, 모든 것이 회색이라는 허무주의로 귀결되어서도 안 된다. 흑과 백이 모두 잘못이라고 회색으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복잡한 명암과 콘트라스트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과거사 청산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청산의 과제가 나타난다. 청산의 대상은 공인된 극소수 매국노부터 우리 자신이 당연시해온 구조들, 혹은 우리 속에 잠재해 있는 욕망과 습성까지로 확장될 수 있다. 과거사 청산이 심화될수록 그 화살은 우리 자신의 어두운 내면으로 향한다. 그래서 분노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 자신의 어둠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 (136~137쪽.)

 

  (...) 미안하다고 사죄했지만,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속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규군으로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전후 오랫동안 독일의 과거사 청산이 지닌 특징이었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은 1990년대 이후에야 시작됐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직후에 이루어진 단호한 과거사 청산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앙리 루소가 지적하듯 그들은 조국을 배신한 죄로 처벌받았을 뿐 파시스트나 반유태주의자였기 때문에 처벌받은 것은 아니다. 과거사 청산이 심화되면서 밝혀진 것은 로버트 팩스턴의 말처럼 파시즘과 반유태주의가 나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프랑스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독일 모두에서 소수의 나쁜 파시스트와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는 무너졌다. 물론 흑백의 이분법 대신 모두 회색이라며 얼버무려서도 안 된다. 둘 다 잘못된 태도다. 단순한 결론 대신 계속 사유하고 논쟁해야 할 이유다. (178~179쪽.)

 

  (...) 한국 사회에서 친일 과거사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집중되는 관심은 대개 일제시기에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한 사람들, 기득권자들의 친일 행적이다. 보통사람들의 친일 문제는 단지 보수 세력의 물타기 소재로서만 등장한다. "일제시기에 세금 낸 보통사람들도 체제에 협력했다는 점에서는 다 친일"이라는 소설가 복거일 식의 논리가 전형이다. 이런 억지 논리는 반감만 불러일으킨다.
  이런 물타기와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 나는 보통사람의 친일이라는 주제를 우리가 진지하게 대면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일제시기에 보통사람들이 친일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통사람 또한 윤리적 판단이라는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친일파 옹호 세력이 보통사람도 다 친일했다며 물타기 주장을 할 때, 그에 대해서 힘없는 보통사람은 그냥 순응해야지 어쩔 수 있었겠냐고 말한다면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보통사람이라고 해서 윤리적 판단의 의무를 면제해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권력의 압력 앞에서 보통사람도 판단을 내려야 하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책임도 생긴다. (189~190쪽.)

 

  독립투사에 대한 존경이나 역사적 조망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점을 옮기자는 이야기다. 이들을 숭고한 메시아적 영웅으로 만들지 말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인데 어떻게 자기 껍질을 깨고 나왔을까"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도 영웅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
  이런 식의 사고 경로는 친일파에 대한 태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친일파는 왜 친일파가 되었는가? 그들이 출세욕이 강했다거나 용기가 부족했다는 등의 이유로 친일파가 되었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친일파도, 우리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친일파가 된 이유는 처음부터 그럴 만했기 때문이라는, 원래 나쁜 놈이기 때문에 나쁜 짓을 했다는 동어반복이 될 뿐이다. 사고의 흐름이 이렇다면 배울 것도, 성찰할 것도 없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친일파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우리를 성찰하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 (201~202쪽.)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