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서태후 (장융, 책과함께, 2015.) 본문
제목 그대로, 그리고 방송에서 들으신 것처럼, 문제적 인물 서태후를 중심으로 중국근현대사를 살펴본 책입니다.
태평천국운동부터 신해혁명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정석으로 읽고 배우려면 꽤 지루합니다. (역사는 암기과목이니까... ㅠㅠ) 하지만 이 책은 문제적 인물 서태후를 중심으로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마냥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니 '태양의변신' 같은 편법(?)도 딱히 필요가 없죠. 서점에 놓인 많은 역사책이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유튜브에서도 '우리 역사상 최악의 정치인 Top 3' 하는 식의 콘텐츠가 높은 인기를 누립니다.
그런데 정작 역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의 인물 중심의 접근을 꺼리거나, 혹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딱딱한 학술서라고 해도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 속의 주요한 행위자가 드러날 때 역사적 사건은 훨씬 더 생생하게 묘사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방송에서 게스트께서는 중국사의 주요한 사건을 서태후의 특정한 행위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아니, 인물을 중심으로 보면 역사를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는데, 이 좋은 방법을 연구자들은 왜 굳이 피하려는 걸까요? 탕수육이 모든 역사학자를 대변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감히 생각을 말씀드려보자면 이렇습니다.
특정한 인물만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어느 한 두 사람의 힘만으로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파악한 역사란 종종 가십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지요. 청말의 혼란을 서태후의 야심과 욕망으로만 설명한다면, 역사가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서태후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사람이었고 그의 욕심이 얼마나 컸는지 정도겠죠. 이런 태도는 다른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코스트의 원인을 히틀러와 극소수 나치당원의 반유대주의만으로 설명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히틀러의 광적인 집착과 홀로코스트의 끔찍함 뿐일 겁니다. 이것 뿐이겠습니까. 비슷한 사례는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이 역사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한계가 있는지는 일전에 오항녕의 '호모 히스토리쿠스'와 '유성룡인가 정철인가'에서 이미 확인했죠.
물론 이러한 서술은 즉각적인 흥미와 분노를 유발하는데는 유용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이런 서술만큼 무용無用한 것도 없습니다. 청말과 같은 혼란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가 만약 청말의 혼란의 모든 원인이 서태후라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서태후 같은 이가 집권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뿐일 겁니다. 특정한 한 두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면 우리가 할 일도 없을 거구요.
탕수육은 종종 역사쓰기를 가을이 와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설명하는 일에 비유합니다. 가을이 오고 기온이 내려가서 나뭇잎이 말라서 가지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지는 과정 말이죠. 낙엽이 떨어지는 그 순간의 바람 세기와 지면의 상태 같은 것에 따라 낙엽이 떨어지는 위치는 달라질 겁니다.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우연의 영역이겠죠. (물론 아주 복잡미묘한 물리학이 있다고 강변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에 비해 계절이 변하고 나뭇잎이 마르는 과정은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낙엽을 떨어지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과 역사학자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
(...) 그녀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분명한 질문을 던졌다. 해외 교역과 개방정책이 중국에 그토록 나쁜 것인가?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혜택을 볼 수 없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들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이처럼 사물을 새롭게 보는 방식이 곧 서태후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녀는 중국을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게 하려고 했다. 함풍제의 과도한 외국인 증오와 지난 100년 동안의 쇄국정책이 중국을 그런 난국으로 몰아넣었다. 그녀는 나라를 새로운 노선 위에 올려놓고, 또 외부 세계에 개방할 용의가 있었다. (95~96쪽.)
중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은 동문관 동문관同文館(뒷날 북경 대학이 되는 학교)이었다. 이 대학은 서태후가 집권한 직후인 1862년에 설립했는데 통역사를 육성했다. 설립 당시에는 별 반발이 없었다. (...) 그러다가 1865년에 서태후가 공친왕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학까지 가르치는 정규대학 과정으로 승격시키려 하자 주위에서 격심하게 반대했다. 지난 2천 년 동안 유교 경전만이 교육상 적절한 학과 과목으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서태후는 '중국의 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서방의 방법을 빌려오는 것(中體西用)'이며 '옛 성현들의 신성한 가르침을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다(東道西器)'라고 하면서 그 결정을 옹호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유교 경전을 외운 덕분에 현재의 지위에 오른 관리들을 납득시키지 못했고, 그들은 총리아문과 공친왕을 '서양 놈들의 앞잡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 (119쪽.)
서태후는 무분별하게 혹은 무조건적으로 산업화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 그녀는 예전의 방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어떤 방면에서는 변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다른 방면에서는 변화에 완강하게 저항하거나 아니면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서태후가 통치하는 중국의 산업화는 불도저로 마구 밀어붙여 모든 전통을 파괴하는 그런 식의 산업화가 아니었다. (200~201쪽.)
많은 근거 없는 비난들이 그런 것처럼, 이 재앙과도 같은 전쟁과 '평화 협정'은 종종 서태후의 탓으로 돌려졌다. 그녀를 비난하는 자들은 근거 없지만 단정적인 어조로 그녀가 이화원을 건설하기 위해 해군 예산을 대규모로 횡령한 것이 패전의 빌미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황태후가 육순 축하연 준비에만 집착하여 전쟁을 등한시했으며 줏대 없이 양보만 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진실은 이런 비난과는 아주 다르다. 서태후는 청의 근대적 해군의 기반을 닦은 사람이었고, 비록 이화원 건축에 해군 발전 기금에서 일부 자금을 가져다 쓰긴 했지만 이자 정도의 돈이었고 기금의 몸통을 건드린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서태후가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지 못한 이유는 육순 축하연 때문이 아니라 광서제가 그녀의 개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
서태후가 전쟁 전에 해군 자금은 유용한 것(비록 전쟁 중에 대략 비슷한 자금을 기부하기는 했지만)과 생일 선물을 요구한 것은 모두 엄청난 오판이었고 확실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서태후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고 이후로는 그것을 벌충하려고 했다. 비록 과오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녀는 전쟁의 패배나 치명적으로 유해한 '평화 조약'에 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 책임은 광서제(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는 황당무계하게도 최선을 다한 비극적인 영웅으로 묘사되기도 한다)와 정도는 덜하지만 군기대신들(비록 공식적으로 조언자에 지나지 않지만)에게 돌아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 비극의 책임은 광서제와 같은 가냘픈 통치자의 어깨에 그런 막중한 책임을 맡긴 청 황실의 체제에 있다. (311~312쪽.)
강유위가 쿠데타를 일으켜 서태후를 살해하려 했던 이야기는 1980년대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어둠에 묻혀 망각되었다. 1980년대 중국 사학자들은 일본의 기록 보관소에서 서태후 살해를 담당할 예정이었던 필영년의 증언을 발견했다. 이 문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음모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음모 관련자로 참수된 여섯명은 개혁을 위해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 '무술육군자戊戌六君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더불어 강유위는 개혁의 햇불을 올리고 심지어 청을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바꾸려고 한 선경지명을 가진 영웅으로 신화화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상소를 고치고 날조함으로써 직접 자신에 관한 신화를 대부분 만들어냈다. (...) 서태후에 관한 나쁜 여론을 조성한 모든 비난들이 강유위에게서 나온 것이며, 이런 비방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럴듯한 이야기로 돌아다니고 있다. (372~373쪽.)
교정. 1판 1쇄
7쪽 밑에서 5줄 : 일기 , -> 일기,
20쪽 10줄 : 제곱미터 -> 제곱킬로미터
20쪽 11줄 : 제곱미터 -> 제곱킬로미터
28쪽 밑에서 9줄 : 스이는 -> 쓰이는
28쪽 밑에서 8줄 : 당나귀 들이 -> 당나귀들이
44쪽 각주 : Dipiomatic -> Diplomatic
65쪽 밑에서 3줄 : 라싸Lasa -> 라싸Lhasa
78쪽 7줄 : 옥쇄가 -> 옥새가
101쪽 밑에서 6줄 : 지팡이 만들고 -> 지팡이만 들고
113쪽 6줄 : 관물 -> 광물
119쪽 5줄 : 상대할 대 통역사가 -> 상대할 통역사가
175쪽 5줄 : 있서 -> 있고 싶어서
190쪽 10줄 : 신문 들은 -> 신문들은
253쪽 밑에서 6줄 : 궁녀 들과 -> 궁녀들과
270쪽 밑에서 7줄 : 페키니즈 퍼그Pekinese pug -> 페키니즈 퍼그pekinese pug
270쪽 밑에서 6줄 : 스카이 테리어Skye terrier -> 스카이 테리어skye terrier
309쪽 8줄 : 지불 받았다 -> 지불받았다
312쪽 3줄 : 대규모로 횡령해 -> 대규모로 횡령한 것이
338쪽 밑에서 10줄 : 고통 받고 -> 고통받고
392쪽 각주 : 이탈리아는 나침반의 발명가인 플라비오 지오야 Flavio Gioja(이탈리아 역사가들은 이 사람이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결론내렸다)의 동상이 1900년 아말피Amalfi에 세워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이탈리아는 나침반의 발명가인 플라비오 지오야 Flavio Gioja(이탈리아 역사가들은 이 사람이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결론내렸다)의 동상을 1900년 아말피Amalfi에 세웠다.
443쪽 밑에서 2줄 : 포틀랜드 팰리스Portland Place에 -> 포틀랜드 플레스Portland Place에
486쪽 4줄, 12줄, 14줄, 487쪽 밑에서 4줄, 488쪽 5줄, 16줄, 19줄, 489쪽 1줄, 7줄, 11줄, 490쪽 10줄 : 칼 양 -> 칼 or 캐서린 칼
502쪽 밑에서 5줄 : '인도 받아' -> '인도받아'
사진 59번 캡션 : "온 종일 -> "온종일"
554 5줄 : 라싸Lasa -> 라싸Lh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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