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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파노라마 (현재환·홍성욱 엮음, 문학과지성사,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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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파노라마 (현재환·홍성욱 엮음, 문학과지성사, 2022.)

Dog君 2022. 12. 19. 10:31

 

  현재환·홍성욱이 엮은 '마스크 파노라마'를 읽었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마스크 쓰기는 이제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갑갑한 것이 싫어서 마스크는커녕 장갑도 잘 안 끼는 저도 이제는 마스크 쓰는 것이 특별히 어색하지 않은걸 보면 말이죠.

 

  그런데 종종 언론에서 실내 마스크 의무조치의 해제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슬슬 마스크와의 작별을 준비할 때가 왔나 싶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지난 1년을 결산하고, 졸업식을 앞두고는 지난 학창시절을 돌아보듯이, 마스크와의 작별을 준비하는 지금 이 시점에 마스크를 둘러싼 일련의 사회적 변화와 실천(이 책에서는 이것을 '사회물질성socio-materiality'이라고 명명합니다)을 살펴보는 '마스크 파노라마'의 기획은 꽤 유의미해 보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딱딱해 보이는 각 장의 제목들을 봐서는 '마스크'에 대한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적 접근을 다룬 논문의 모음집처럼 보여서 겁도 살짝 납니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논문보다는 좀 더 가벼운 에세이에 가까워서 진입장벽이 특별히 높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과학기술 문외한인 저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죠. (개념 설명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서론은, 읽기가 까다롭다면 그냥 건너뛰어도 됩니다. 그렇게 해도 다음 글을 읽는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각 글들의 성격과 소재가 워낙에 다양하기 때문에 독자마다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다르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던 당시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새부리형 마스크를 다룬 마리온 마리아 루이징어의 「근대 초기 유럽의 흑사병과 역병 의사 마스크」가 재미있었습니다. 새부리형 마스크는 중세 유럽을 모티브로 한 창작물에서도 자주 등장해서 지금의 우리에게도 꽤 친숙합니다. 하지만 마리온 마리아 루이징어는 이 마스크가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합니다. 새부리형 마스크는 주변국의 선전용 팜플렛에 등장할 뿐 정작 당사자의 당대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새부리형 마스크의 이미지는 자국 방역체계의 굳건함을 보여주고 타국의 페스트 상황을 강조하는 정치적 선전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마스크의 사회적 의미를 다룬 글들을 함께 묶어서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여러 글을 엮은 책의 강점이 바로 이거죠!) 특히 세라 베스 키오의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와 물질성」과 미즈시마 노조미·야마사키 아사코의 「일본의 수제 마스크와 젠더 질서의 강화」, 현재환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마스크: 방역용 마스크에서 가정 위생의 도구로」는 함께 견줘보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라 베스 키오에게 마스크란 격절된 이웃 사이의 선의와 유대를 확인하는 연대의 상징이지만, 2차 대전기(식민지기)의 마스크를 다룬 미즈시마 노조미·야마사키 아사코와 현재환은 마스크를 통해 젠더 질서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현재환은 더 나아가 이것이 지금의 코로나 상황에서도 반복되고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마스크 제작 과정에서 봉제술이 강조된다거나, 마스크 착용과 관리에 대한 (도덕적) 책무가 가정 내의 여성(주부)에게 편중되는 식으로 말이죠. '마스크'라는 물질은 동일하지만 그것의 사회적 의미가 이토록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여러 재미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코로나가 바꾼 일상이 어디 마스크 뿐이겠나 싶습니다. 세미나와 회의가 잦은 제 입장에서는 당장 비대면 화상회의 같은 것이 떠오르네요. 마스크 착용이야 코로나가 끝나면 곧장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겠지만 비대면 화상회의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회의와 세미나를 3년 동안 그렇게나 많이 했는데, 이 편했던 경험을 어떻게 되돌리겠습니까. (일단 한번 해보시라니깐요. by 발표&세미나를 하루에 세개까지 뛰어본 놈) 자, 그러니 저자분들은 다음 기획으로 '줌 파노라마'를...

 

  (...) 각 장이 마스크를 둘러싼 물질적, 사회적 측면들을 심도 있게 살핀다는 점에서 이 책을 마스크의 "사회물질적 역사socio-material history"에 관한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싶다. 이 책의 필자들 대부분이 연루되어 있는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라는 학문 분야는 물질적 존재들이 현대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삶을 직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가르쳐왔다. (...) 최근 과학기술학자들은 사회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의 분리 불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비인간 행위자 네트워크에 관해 논의할 때 오롯이 "물질성"만 강조하기보다는 "사회물질성socio-material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 역시 "사회물질성"이라는 용어를 통해 시대별, 지역별로 다른 물질적·담론적 실천들의 하이브리드hybrid로서의 마스크의 물질적 힘을 강조한다. 즉 마스크의 사회물질적 역사는 마스크라는 "인공물의 과학, 문화, 정치, 사회의 얽힘entanglement"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현재환, 「서론: 마스크, 친숙한 사물의 낯선 이면」, 10~11쪽.)

 

  나의 첫번째 마스크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구매한 마스크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 나의 첫번째 마스크가 명백한 선물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값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마스크는 나의 이웃이 특별히 나와 내 아들만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우리가 요구한 게 아니다. 그녀는 우리의 취향에 맞추어 천을 골랐다. 마스크가 오염되지 않도록 지퍼백에 고이 담아서 가져다주되, 직접 건네주진 않으려고 애썼다. 선물받은 마스크들은 아주 개인적이고 맥락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주는 행위는 내 이웃이 우리의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한다는 표현이었기에 우리의 교우관계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다. 그것은 사재기로 얼룩진 소비 시기에 나온 따뜻하고 이타적인 행위였다. (세라 베스 키오,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와 물질성」, 24~25쪽.)

 

  마스크는 코로나19 시대에 대해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킬까? 의료와 물질문화 박물관의 전시품이 될까? 어떤 새로운 스타일, 디자인, 기술이 몇 주, 몇 달, 몇 년 후에 등장하게 될까? 마스크 품귀 현상을 빚던 2020년 봄과는 달리 이제는 다양한 종류의 개인보호장비가 넘쳐나고 있다. 이 풍요로움이 전염병의 확산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마스크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아마 물질문화의 짧은 지속성이 갖는 이점 가운데 하나는, 물질적 대상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는 양상을 보면서 이를 통해 문화와 사회를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세라 베스 키오,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와 물질성」, 40~41쪽.)

 

  (...) 전후 시기에 봉제 교육은 서서히 쇠퇴하여 재봉틀과 손바느질 모두 학교에서 "경험"해보는 일이 되었으며, 남녀 모두에게 더 이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옷 만드는 기술은커녕 옷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간단한" 마스크 봉제법을 배워 생활의 부족을 메우게 된 것이다. 이 가운데 미디어를 통해 압도적으로 부각된 것이 바로 여성이라는 성별이었다. 바느질하여 기부하거나 선물하는 활동이 "어머니" "아내" 혹은 "소녀"의 활동으로 재편성 혹은 재강화된 것이다. (미즈시마 노조미·야마사키 아사코, 「일본의 수제 마스크와 젠더 질서의 강화」, 92~93쪽.)

 

  코 앞부분에 주머니가 달린 새부리형 마스크가 사용되었음을 입증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들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이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국한되어 있었다. 독일어권에서는 이에 해당되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이전 시기, 즉 중세 후기부터 16세기 초엽까지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검은 죽음"인 흑사병의 대유행 시기에 이 새부리 마스크가 사용되었으리라는 추정은 일단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 눈에 띄는 방호장비에 대한 논의나 사용에 대한 언급들이 현재까지는 이 시기에 출판된 어떤 문헌이나 인쇄물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이 유인물들은 뉘른베르크와 아우구스부르크 같은 독일 남부 도시들에서 인쇄되었다. 아네마리 킨젤바흐Annemarie Kinzelbach가 최근 분명하게 지적한 것처럼, 18세기에 이런 도시들에서 페스트가 창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가 체계가 굳건하고, 국가의 의료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증표로 통했다. 타국의 페스트 상황을 전하는 유인물들은 말하자면 정치적 선전을 위한 매우 유용한 도구였던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같은 선전들이 꾀하는 차별성과 우월성의 언어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한다. 목적이 확연하게 다르다 해도 말이다. 새부리 마스크를 뒤집어쓴 의사의 모습을 담은 유인물들이 의도하는 바는 자명하다. (아마도 훨씬 덜 효율적인) 동시대 남부 유럽 국가들의 의료 체계와 자국의 의료 행정을 구별 짓기 위해 널리 통용되었던 것이다. (...) (마리온 마리아 루이징어, 「근대 초기 유럽의 흑사병과 역병 의사 마스크」, 115~124쪽.)

 

  1930년대 들어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되면서 마스크 착용을 여성적인 행동으로 간주하거나 마스크를 관리하는 일을 가정 위생의 이름으로 여성에게 전담시키는 것처럼 마스크와 마스크 착용의 젠더화가 일어났다. 한편에서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 쓰기에는 부적절한 "온실" 같은 물건으로 비난하는 가운데 "가정"란을 통해서는 아동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씌우라는 지침이나 어떤 마스크가 좋은지, 마스크를 얼마나 자주 소독하고 청결하게 두어야 할지 등 조선인 부인이 맡아야 할 마스크 관리에 대한 조언과 지식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런 의학적 조언의 이면에는 위생상 올바른 마스크를 청결히 관리하지 못해 가족들의 건강을 해치게 되면 그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가정이 있었다.
  마스크와 관련하여 코로나19 팬데믹의 일상을 일제강점기의 일상과 비교하여 되짚어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아동들의 마스크 착용과 관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아이들이 쓸 마스크의 효능을 따지고 구매하고, 아이들에게 이를 올바로 쓰는 법을 가르치는 역할은 누가 맡고 있는가?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아동을 볼 때 그에 대한 비난의 대상은 누가 되는가? (...) "엄마들"이 마스크에 "도덕성"을 유난히 부여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건강과 관련해 "엄마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맥락을 배경으로 한다. 식민지 조선의 마스크의 역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가족 건강에 대한 도덕적 책무가 일제강점기와 유사하게 주로 여성에게 부여되고, 또 이 같은 젠더 편향적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게 만들어 가사노동과 가정 내 도덕적 책임의 분배 불균형을 낳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 (현재환, 「식민지 조선에서의 마스크: 방역용 마스크에서 가정 위생의 도구로」, 217~218쪽.)

 

  (...)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마스크로 통칭되는 사물의 의미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재질과 형태의 물체를 구해 코와 입 주위에 부착하는 물질적 실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마스크의 물질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서 어떤 사물은 본질적 특성을 지닌 객체라기보다는 사회적이고도 물질적인 실천들 가운데 특정한 가운데 특정한 물체로서 성취되는 것으로,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각각의 사건들과 관계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마스크의 물질성은 마스크의 속성이나 가치를 미리 상정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에서 어떤 마스크들이 어떤 실천들과 관계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어떤 실천들과 관계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지 따라가보는 과정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 (장하원, 「코로나19 시대 한국의 마스크 생태계」,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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