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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역사를 실천 중입니다 (이하나 외, 푸른역사, 2023.)

Dog君 2023. 10. 2. 15:41

 

  역사학은 여러 전문분야 중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TV와 스크린에는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가 넘쳐나고, 서점에는 소설과 만화가 가득하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박물관 혹은 문화재 안내판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솔까말, 과거를 다루기만 하면 거의 다 '역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역사가 소수의 역사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닌지는 한참 됐습니다.

 

  '공공역사public history'라는 개념은 이처럼 학계 바깥에서 이뤄지는, 역사를 소재로 한 일련의 실천들을 지칭합니다. 그러다보니 공공역사의 범위는 무척 다양하고 넓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단번에 아우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 저자에 의해 쓰여진 첫 공공역사 책인 『공공역사를 실천 중입니다』가 무려 24명의 공저로 나온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의외로 '공공역사'라는 개념 그 자체는 한국에 소개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것도 길어야 5~6년 정도 밖에 안 된 것 같거든요. 그러다보니 공공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많고 실제 현장에서의 실천도 충분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책의 저자들조차도 공공역사에 대해 정확히 합의된 정의를 가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중(화)'를 예로 들어보면, 공공역사의 개념화를 시도하는 1부의 저자들은 공공역사가 '역사의 대중화'에 대한 비판을 품은 개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장에서 실천 중인 공공역사를 담은 2부와 3부에서는 여전히 '대중(화)'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공공역사에 대해 의문이 남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대중매체에서의 공공역사가 종종 저지르는 역사 왜곡 문제는 어떻게 이해할/대처할 것인가, 사이비역사학은 공공역사인가 아닌가, 같은 의문들 말이죠.

 

  공공역사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책의 구성에서도 느껴집니다. 3부에서 다룬 공공역사의 실천들의 경우, 어떤 꼭지는 중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응당 다룰 법도 한데 다루지 않은 분야도 있습니다.(이문영 선생님이 지적한 바 역사 소설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내용상으로도 꼭지마다 편차가 있어서, 개념적인 분석에 주목한 저자가 있는 반면 구체적인 실무에 치중한 저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독자에 따라서는 책이 전반적으로 불균질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균질함을 이 책의 기획자와 저자들이 모를리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불균질함은 애초에 의도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기획과 저술의 목표는 아마도 이미 "실천 중"인 공공역사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한국적 맥락에서 공공역사를 정의하고 개념화하기 위한 첫 단추를 꿰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뭐랄까, 실천이 개념보다 훨씬 앞서가는 상황에서, 우선 실천들부터 하나씩 다 그러모아 비교부터 해보는 작업이랄까요. 명절에 전국에서 모인 친척들끼리 고스톱에 앞서 룰부터 통일하는 것처럼 말이죠. (9를 쌍피로 볼거냐, 6도리를 인정하냐, 뭐 그런거 있잖아요.)

 

  저는 이미 실천 중인 공공역사를 한데 모았다는 점에 이 책의 확고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반도의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인 (ㅋㅋㅋ) '역사학 전공생'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 더 보태자면, 저는 이 책을 통해 '업계'에 대한 생각을 크게 고쳐먹었습니다. 오랜 청취자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는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일군의 '역사 강사'(라고 일단 칭합시다)들과 그들의 결과물에 대해 꽤나 강퍅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괜한 심술이나 부리고 나몰라라 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실천들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럴려면 일단 녹음부터 좀 더 열심히 녹음하고 독서감상문도 좀 더 성실히 써야한다는... (뭐야 결론이 왜 이래.)

 

  한국에서 공공역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을까? 최근 몇 년간의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공공역사의 개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공공역사는 전문 역사가들이 학계 바깥에서 행하는 역사 실천뿐만 아니라 대중적 현상으로 도처에 존재하는 역사의 공적 활용과 재현 및 이에 대한 비평 활동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 (이하나, 「서설 - 풍부한 현실, 이론의 빈곤」, 10~11쪽.)

 

  (...) 변혁운동의 일환으로서의 학술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역사학계의 화두는 단연 '역사 대중화'였다. 가히 '역사학계의 문체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 대중화' 프로젝트는 딱딱하고 어려운 학술 연구를 대중이 읽기 쉽게 쓴 역사, 대중의 흥미를 자아내는 역사로 전환하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하는 계몽의 기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정치·경제사 중심에서 사회·문화사 중심으로 역사서술의 분야와 시야가 확대되는 효과도 있었다. 연구 성과를 대중서 형태로 출판하는 것을 골자로 했던 역사학자들의 노력과 그 결과물들은 그 자체로 공공역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 대중화' 기획은 '대중의 무지'를 전제로 역사인식이나 역사서술에 대한 역사학자의 독점적 권위를 당연시한 것이었고, 이것이 오늘날 이 용어에 대해 많은 비판과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하나, 「공공역사 논의의 한국적 맥락」, 30~31쪽.)

 

  (...) 역사 재현과 서술의 소유권 확대를 곧장 '아래로부터의 역사' 확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최근에는 대중이 역사 재현 주체로 등장하는 현상과 매우 유사하게 역사 관련 공공기관을 비롯한 권력과 행정기관 및 각종 문화재단도 공공 영역에서 새롭게 역사 재현과 서술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
  상황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공공역사가 대학과 학회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서술과 재현이라고 하니 역사 비전문가 행위자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오류에 빠지고, 그것도 다시 사회의 특정 일부로만 제한하는 착오를 저지르는 이들이 많다. 대학과 학회 바깥에는 노동자나 민중, 또는 '대중'이나 '시민'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의 역사 활용에서 그들의 역사 관심만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공공역사는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역사 재현 활동을 지시하는 것이기에 민중 내지 '시민'들의 주체적 일상사와 생애사 서술 같은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요컨대, 공공 영역의 여러 방향에서 역사 재현과 활용 요구가 거세다. (...)
  (...) 공공역사는 그저 '시민들의 역사 쓰기' 같은 것이 아니다. 공공역사를 그렇게 한정한다면 딱히 그 개념과 관점을 가져올 일이 아니었다. 역사가를 한 축에 세워놓고 그 반대편에 집합 단수 '민중'을 세우는 것 또는 '민중' 자리에 '대중'을 세우다가 다시 '대중' 자리에 '시민'을 세우는 사유 관성을 극복해야 한다. 이질적인 많은 사람을 집합 단수로 묶어 부르는 인습도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공공역사는 구술사나 '아래로부터의 역사', 또는 '시민들의 역사 쓰기' 주창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때로 불편하고 어색하다. 공공역사의 새로운 수행 주체들로 이른바 대중 내지 시민이 등장하면, 그들은 이제 역사학의 훈련을 거치고 역사서술의 경험을 가진 전문 역사가들의 보조자나 협력자를 넘어 공공 영역에서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
  때로 로컬 역사가들은 지역의 오랜 연고와 실천 관심으로 의미 있는 역사서술을 발표한다. 하지만 자칭 '역사 애호가'들이 느닷없이 '역사 전문가'로 등장해 그곳의 정치 욕망이나 행정 이익, 또는 조악한 지역 자긍심 창출의 요청에 따른 역사 재현을 수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구술사나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옹호했던 전문 역사가들이 '대중적 역사 쓰기'를 이제 더 비판적으로 다루어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공공역사는 그런 '아래로부터의 역사' 전통을 이은 시민들의 주체적인 역사서술과 재현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공공역사가 구술사나 일상사의 관심과 조응하는 맥락을 강조하거나 공공역사와 구술사의 협업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 있다. 다만 공공역사는 그것 외에도 다양한 사회 속 과거의 현재화 욕구에 조응하고 개입해 역사의 공적 활용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대학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공공역사에서 배제될 이유도 없다. 오히려 공공역사는 대학의 전문 역사가들과 공공 영역의 비전문 역사가들 내지 다양한 사회적 행위 주체들이 함께 협력하고 보조하며 경합하고 논쟁하는 일이다. 이때 공공역사에 직업적으로 참여하는 역사가들, 또는 그것에 대해 식견을 갖거나 지적 훈련을 경험한 역사가들, 즉 '공공역사가public historian'들은 그 협력과 긴장관계에서 중개자나 조언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니 공공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것을 '시민들의 역사 쓰기'쯤으로 보는 관점과 빨리 이별해야 한다. (이동기, 「공공역사의 쟁점과 과제」, 43~47쪽.)

 

  대학이나 학계의 역사가들은 전문 지식과 심화 연구를 통해 공공역사에 대해 논평과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과 반영을 요구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공공역사는 단순히 공공 영역에서의 역사 재편과 활용 실천과 결과를 넘어 역사 연구와 교육의 한 부분, 즉 역사학의 분과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다. 마치 오랫동안 역사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전체 과정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역사학의 한 분과로서 독립적인 연구 영역으로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교육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역사가들은 공공역사의 과정과 결과, 방법과 절차, 특성과 변화 등에 대해서 계속 관찰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개입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구실의 역사 전문가와 공공역사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이미 연구가 다 이루어져 완성된 역사상이나 학문적으로 충분히 밝혀진 역사 진실이 대중에게 잘 전달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만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역사 대중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방식의 '역사적 진실' 여부를 따지는 것을 넘는 차원을 가리킨다. 연구실의 역사가들은 공공역사의 고유성과 특성을 존중하고 그것의 작동 방식과 역할을 숙고하면서 비판적 개입과 상호 작용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동기, 「공공역사의 쟁점과 과제」, 58~59쪽.)

 

교정. 초판 1쇄

71쪽 6줄 : 포르치니아 -> 포르치아니

73쪽 표 : 귄미혁 -> 권미혁

73쪽 표 : 신헌영 -> 신현영

95쪽 밑에서 7줄 : 대상이었다. 여전히 -> 대상이었고 여전히

113쪽 3줄 : 권두언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itorial〉 -> 권두언 〈어둠의 심연Editorial : Heart of Darkness〉 or 〈권두언 : 어둠의 심연Editorial : Heart of Darkness〉

113쪽 밑에서 8줄 : 전쟁 지역·묘지 방문, 식민지 역사, 홀로코스트, 재난 지역, 유령 또는 공포, 감옥 여행 등 7개 유형으로 (쉼표를 기준으로 하면 6개다.)

166~193쪽 : (전체적으로 "인공지능"과 "AI"가 혼용되고 있다. 내용상 다른 의미가 아니므로 표기를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169쪽 밑에서 1줄 : 호라이즌Horizen -> 호라이즌Horizon

170쪽 13줄 : AR(Augmented reality, 증강 현실) -> AR(Augmented Reality, 증강 현실)

181쪽 표 : ● 돌아가신 조상을 -> ●돌아가신 조상을 (띄어쓰기)

188쪽 그림 캡션 : 1948년에 사망한 -> 1949년에 사망한

192쪽 그림 캡션 : 미드저러니Midjourney -> 미드저니Midjourney

198쪽 밑에서 4줄 : AI 인공지능 -> AI or 인공지능

222쪽 표 : 서대문형무소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 '서대문형무소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글쓰기

222쪽 표 : 오늘날 의미 작성하기 -> 오늘날의 의미 작성하기

224쪽 8줄 : 도널드 오스터브룩 ('Donald Osterbrock'은 '도널드 오스터브록'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363쪽 2줄 : 아키비스트Archivist -> 아키비스트archivist

365쪽 6줄 : 생애주기Life cycle -> 생애주기life cycle

371쪽 밑에서 6줄 : 도큐멘테이션 전략documantation strategy -> 도큐멘테이션 전략documentation strategy

374쪽 밑에서 6줄 : Democacy Start Here -> Democracy Starts Here

430쪽 제목 : 역사크리에이터, -> 역사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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