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민중 만들기 (이남희, 후마니타스, 2015.) 본문
이 책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다룹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무슨무슨 투쟁이니 무슨무슨 협의회니 하는 돌출적인 사건이나 단체, 사람의 이름들보다는 사회 전반을 장악한 폭압적인 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이 대항적인 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좀 더 주력하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민중'이란 국가가 호명한 '국민'에 대항하여 역사 진보의 주체이자 독재에 맞선 민주화담론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한 때 86세대 때리기가 거의 온라인 민속놀이였던 적이 있습니다. 80년대 학번으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가 지금은 정치권에 들어가 '꼰대'가 된 '86세대'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게 '들불처럼' 번졌죠. 저 역시도 누구보다 86세대의 한계에 대해 비판적이기에 그런 비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들은 기득권화된 기성세대를 건강하게 비판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고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이분법적으로 나뉜 현실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취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결국에는 민정당 계열의 보수기득권세력에게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진○○ 등의 이름이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정반합이 아닌 정반정이라고나 할까요.
기회가 될 때마다 말씀드리듯이, 저는 70~80년대의 민주화운동 경험에 대해 지금의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존중은 그것들을 온전히 역사로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운동의 성취와 한계를 건강하게 성찰할 때만 우리가 나아갈 민주주의의 모습도 건강하게 그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한국사회가 대문자 해방Emancipation을 넘어서 소문자 해방들emancipations을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70~80년대를 거쳐왔기에 가능하다는 이 책이 지적에, 저는 크게 공감합니다.
이런 제 생각은 지난 얼마간 거리에서의 때문에 더 강해졌습니다. 지난 14일 탄핵소추 가결 직후 울려퍼진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였습니다. 집회 중간중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나왔구요. 지난 세대가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고 한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세대가 "수 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 쫓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1987년 이후에 태어나 민주주의를 이미 생득한 이들이 만들어 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기성세대인 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어떤 세상이겠죠.
반정부 지식인의 결핍 담론은 곧 실패의 서사였다. 이 서사에 따르면 한국사는 '단절과 왜곡', 어둠과 부정의 역사였다. 현재의 정권은 독재적이고 반反민족적이었으며, 한국 사회는 서구의 가치 체계, 특히 미국식 가치 체계에 너무 빠져 있었다. 반정부 세력의 이런 결핍 담론은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 및 근대화 담론과 대립적인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 둘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었다. 국가 주도의 근대화 프로젝트나 운동권의 저항운동이나 모두 국가nation와 민족people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었고, 국가는 '국민' 혹은 '시민'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운동권은 '민중'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나, 이 두 개의 프로젝트는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에서 하나로 모아졌다. 여기서 필자는 민중 담론 속에 내재된 비판 의식이나 반정부 세력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반정부 세력이 가지고 있던 국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국가가 추진하던 근대화와 경제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이를 추진하는 방법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80~81쪽.)
여느 해방 프로젝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민주적 공간을 구축하려는 운동권의 노력은 기존의 것과 평행선을 이루는 '새로운 규범과 위계'를 확립했다. 새로운 질서는 이전에 확립된 자본주의적 세계관의 잔재로 간주되는 것을 경멸하고 억눌렀던 반면에, 민중 지향적이라고 간주되는 것을 적극 권장했다. '순수하고 건전하며' 전반적으로 우월한 민중 문화에 동화되기 위해, 운동권 학생들은 언어, 옷차림, 음식, 일상 습관 전반에 걸쳐 '자본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경향을 걷어 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무조건 민중같이"는 운동권이 실천하고자 하던 구호였다. 운동권 학생들은 자신들이 민중적 소양이라 여겼던 정직, 소박함, 부지런한 생산적 활동 등을 장려했다. (...)
운동권은 개개인이 주류 사회로부터 벗어나 대오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었짐나, 운동권 안에서는 오로지 하나의 잣대가 작동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전체주의적이기까지 한 민중이라는 개념으로서, 운동권이 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이 개념에 부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운동권의 담론적 실천에서 민중에 대한 강조는 특히 여학생들에게 권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권력을 박탈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민중에 대한 강조가 커지면서 별도의 여성운동은 더 중대한 쟁점으로부터 관심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는 인식이 운동권 내에 있었다. 여학생들 스스로도 전체 운동의 결속성을 깨뜨릴 수 있다는 우려, 전체 운동의 주목을 끌만큼 긴박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의 부재, 자신들의 관심사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론장의 부재로 인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운동권에 속한 많은 여성들은 본질적으로 남성 중심적이고 청교도적인 운동권 문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여성 스스로 자신들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고 믿었으며, 따라서 자신들은 독자적인 여성운동이 필요하지 않고,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별도로 운동을 조직할 때는 주로 여성 노동자 관련 이수에 초점을 맞출 뿐 자기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너무 '부르주아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며 그러므로 긴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94~296쪽.)
필자는 학생운동을 '대항 공론장'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이는 운동권을 진실과 해방을 추구하는 하나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대안적인 민주적 공간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과거를 소집해 전통 민속 문화를 재발명·재가공했다. 이는 완전히 독창적인 기획은 아니었으나, 운동권은 이런 노력을 통해 보여 준 것이 있으니, 이는 바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도덕적 자원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원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 학생들의 노력은 이전에 비공공 영역에 머물던 의제를 공적 영역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대안적 공론장에 대한 비전은 동시에 숱한 긴장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국가가 허락하는 세계관에 맞서 혁명적 세계에 대한 발상을 폭넓게 공유하고자 했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세계관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 언어, 행동 규칙 등에 또 다른 위계 서열을 강요했다. (297~298쪽.)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 문헌이나 논평을 보면 노동자 대투쟁은 순전히 자연발생적이었기에 운동권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미 많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난 상태였고, 남아 있는 이들은 주로 경기·인천 지역에 집중해 있었기에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울산·마산·창원·거제 지역과는 떨어져 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들불처럼 번져 갔고, 어느 특정 단체가 뚜렷하게 정해진 목표나 방향을 가지고 조직하거나 조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운동권은 다른 일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다소 혼란스런 감정과 함께, 경우에 따라선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일부 운동권 활동가들이 개별 사업장 투쟁을 어떤 식으로든 지역 차원으로 묶어 보려는 시도를 한 경우도 있으나 노동자들은 이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운동권 지식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 1980년대의 지속적이고 거센 노동 담론의 맥락을 떠나서는 충분히 조망할 수 없다. 필자가 이제까지 보여 주었듯이,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수천 명의 운동권 활동가들이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하 스터디 모임이나 소모임을 조직했다. 운동권 활동가들이 1987년 대투쟁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일부 노동자들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 만들어진 지하 모임이나 다른 연계망을 통해 느슨하게든 아니든 운동권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장을 떠난 이전의 현장 활동가들은 노동자 대투쟁 기간에 지하철 입구, 거리, 공장 지역 등에서 전단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대규모 현장 파업 노동자들에게 실무 지원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결성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기구의 간사가 되었다. (419~420쪽.)
"거대서사에 대한 불신"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이라면, 한국 사회는 실로 포스트모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거대서사는 이제 과거의 얘기가 되었다. 국가는 더는 권력의 단일 소재지가 아니며 어떤 단일 쟁점도 1980년대처럼 전 사회를 뒤흔들수 없다. 사람들은 "대문자 해방Emancipation보다는 소문자 해방emancipations을 말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티는 단순히 모더니티 이후에 온 것이 아니라, "근대의 특정한 발현 이후에" 나타났다. 한국에서 포스트모던은 탈권위주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탈민중을 의미한다. (473~474쪽.)
교정. 1판 1쇄
147쪽 밑에서9줄 : 한 어린 소년이 공산당이, 따라서 북한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내용은 공적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 (비문)
194쪽 6줄 : 존 워컴 -> 존 위컴
414쪽 3줄 : 탈퇴 한 후 -> 탈퇴한 후
450쪽 밑에서5줄 : 연예 감정을 -> 연애 감정을
467쪽 9줄 : 짤라 -> 잘라
473쪽 밑에서6줄 : 특정이라면 -> 특징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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