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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冊나부랭이

역사비평 147호 (역사비평사, 2024.)

Dog君 2024. 12. 24. 08:24

 

  학술지를 읽는 것은 늘 즐겁습니다. 동료 연구자들의 최근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을 뿐더러 연구자로서 자극도 많이 받거든요.

 

  『역사비평』 147호의 특집 '사이비역사학 비판과 비판 너머의 역사쓰기'와 148호에 게재된 김태현·김재원의 「학교에서 태어나 미디어가 키운 '공공역사', 중국을 혐오하다」를 함께 읽으면서는 이들 문제를 말할 때 이제는 논점이 좀 더 확장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둘이 대상으로 삼은 사이비역사학 비판과 미디어 비평이, 여전히 민족주의적 편견에 대한 비판에서 머무는 것 같거든요. 이러한 비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뭐랄까요,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데다가 논평이 계속 제자리를 맴돌다가 고인물이 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147호에 게재된 기경량의 「한국 사이비 역사학의 계보와 학문 권력에의 욕망」이 '해석의 다양성' 문제를 언급한 부분에서 논점 확장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물론 지나가듯 언급되는 것을 보면 저자께서도 아주 진지하게 검토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학계 안팎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역사학적 실천(공공역사)이 강조되는 최근의 경향에서는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어느 선까지 존중할 것인가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이비역사학 비판과 미디어 비평에서도 이에 입각한 논점으로 논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예의 민족주의 비판으로만 논의가 맴돌 수 있습니다. 이에 온전히 답하기 위해서는 사실(객관)과 해석(주관)에 대한, 역사학의 전통적인 주제에 대해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필자는 동료 역사학자들이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당위적 명제를 강조하는 것을 볼 때 때로 너무 관성적이고 도식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필자 역시 역사학자로서 '해석의 다양성'이 지니는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그 가치적 명제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허위와 날조, 지성에 대한 폭력을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사회가 전문가 집단에 기대하는 역할과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현실 세계의 사이비역사학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폭력적이며 위협적이다. 한국의 경우 그 폐해는 이미 역사학자들의 정당한 학문활동을 질식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학계가 구름 위에서 고고하게 내려다보며 온정적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다양한 역사 해석과 관점을 존중한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모든 해석과 관점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가 아니다. 충실한 사료 비판과 실증, 견실한 논리적 추론에 기반한 보다 탁월하고 설득력 있는 역사 해석이 분명 존재한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한 역사 해석과 관점, 더 나아가 보편적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고 지적으로 전혀 무가치한 해석과 관점도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오랜 기간 학자들이 쌓아온 지적 성취를 무너뜨리고 퇴보시킨다는 점에서 세상에 해를 끼치는 해석과 관점도 있다. 사이비역사학이 바로 그러하다. (기경량, 한국 사이비 역사학의 계보와 학문 권력에의 욕망, 17~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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