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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훈민정음』 어제문을 관통하고 있는 바, "중국"이라는 거울로 조선을 비추는 비교의 서사가 쓰인 역사적 맥락을 이상과 같이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면,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다르다"는 구절의 함의도 단지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다르다고 차이를 지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다르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중국과 함께 그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으로 파악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 타당한 해석 아닐까. 즉 "국지어음 이호중국"은, 조선말과 중국말의 차이를 본질화하는 데 그치는 문장이 아니라, 그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을 언급함으로써, 오히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국과 조선이 무엇인가를 공유하면서 서로 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다음 구절의 의미까지 연..
'한국적 삶'의 특성 및 장단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어느 날, '상식常識'의 문제를 만나게 됐다. 진보주의자로서의 나는 반복해서 한국 사회가 주류·표준·평균에 속하지 않은 소수자에게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문제를 지적해야만 했는데, 문제를 지적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그것을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더라는 현실에 맞닥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류·표준·평균에 속한 이에게 제공되는 엄청난 편의성, 그리고 그 바깥 다양한 삶의 양태에 대한 철저한 무신경함'이란 현상의 기반에는 우리가 지식과 배움을 받아들이는 방식, 어떤 지적 토양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착상에 이르게 됐다. 나는 여기에 '상식'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국은 '상식이 지배하는 나라'이며, 한국적 삶의 ..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방 이후 '실증주의 사학'이 사회경제사학의 '탈식민' 연구를 비판하며 보수 우파 입장에서 새로운 탈식민의 방법·과제를 제시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70년대 이후 고려·조선시대 관료제사회설의 본격적 대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 입각해 식민주의 역사관을 반박하며 조선도 '보편'적 역사발전단계를 거쳤음을 증명하려 했던 사회경제사 연구의 탈식민서사를 한국사를 연구하는 데 서구 중심적인 이론을 빌려온 것이라 비판했던 바로 그 학자들이, 해방 이후 고려 사회가 "관료제"였는지 아니면 "귀족제"였는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에 적극 개입하면서 한국 사회 스스로가 고려-조선시대로의 전개 과정에서 근대화된 관료제사회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연구를..
야심차게 준비하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성공적 수행은 가장 큰 과제였다. 특히 3조 2천억 환이라는 막대한 소요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그중에서도 전체 비중은 27.8%이지만 제2차 산업 부문에서만 43.4%를 차지하는 외자를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는 1961년 말까지도 막막한 상태였다. 쿠데타 발발 이전까지, 미국의 DLF 공공차관 8건의 허가 외에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직접 돈을 빌려온 전례는 전혀 없었던 터였다. "현 상태에서 외자가 도입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군사정부의 성패는 외자가 계획한 대로 도입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발언이 최고회의 내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에 더하여 외자도입을 타진하던 군사정부가 마주한 국제질서는 냉전 체제 경쟁의 본격화 속에 차관 거래에서의 민간기..
제가 잠시 서리북을 읽을 수 없었던 때에 나왔던 것을 이제야 하나씩 따라잡으며 읽는 중입니다. 박훈 선생님 글은 그때도 좋았군요. ^^ ----- 그러나 이 작가에게 조선 민족의 "민족적 생명력"과 "무서운 깊이"는 어디까지나 미실현의 포텐셜일 뿐이다. 가야-신라-백제의 옛터를 여행하는 그의 뇌리에 박혀 있는 것은 이 민족의 장구한 정체성(停滯性)이다. 이와 관련된 구절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번히 출현한다. (...) 더 고약한 것은 이 정체(停滯)에 대한 향수를 잔뜩 표현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시바는 전통주의자이며 아시아 중심주의자인가? 천만의 말씀, 정반대다. 그에게 일본의 역사는 중국이나 조선 같은 아시아적 정체를 돌파한 역사다. 그 계기는 사무라이 사회의 성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