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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90년대 말부터 0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는 지적인 백화제방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확보된 제도적 공간에서 80~90년대를 거쳐 숙성된 진보적 담론이 꽃을 피웠다고나 할까요. 김규항, 진중권, 강준만, 임지현, 김정란 등, 당시에 글 좀 썼다 하는 분으로 당장 기억나는 이름만 꽤 여럿입니다. 지금 시점에서야 이들에 대해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저(를 전후한 세대)가 그들에게서 지적인 수혜를 크게 입었던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저자인 권혁범 선생님의 글도 그 시기에 참 많이 읽었습니다. 제 손에 집히는 책과 잡지에는 그의 글 한 두개는 꼭 실려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워메, 생산력 무엇...) 당시에 그가 주력했던 것은 민족주의 비판이었습니다. 한국현..

『태극기와 한국 교회』를 읽고, 그러면 100여 년 전 한국에서 활동한 이름없는 선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태도로 한국을 대했는지, 좀체 알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러고 당장 책장을 살펴보니 이 책이 있더군요. 『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는 1897년 조선에 와서 1920년 조선에서 숨을 거둔 선교사 조세핀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을 다룹니다. 그는 작은 교회의 목사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 하나씩을 낳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습니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슬픔이었지만 그는 온전히 신앙의 힘으로 이를 견뎌냅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저밀리 동아시아에서의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

1996년 개봉작인 인디펜던스 데이가 20년만에 후속작을 내고, 2000년 개봉작인 글래디에이터는 24년만에 후속작을 낸 것처럼, 2012년에 나온 『조선을 떠나며』의 후속작인 『다시 조선으로』가 12년만에 나왔습니다. 전작이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를 떠난 재조일본인을 다루었다면 후속작은 같은 시기 한반도로 돌아온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로 유입된 인구 규모가 대략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는데(37쪽) 당시의 인구규모를 생각하면 이들을 빼놓고 이 시기를 이해할 수는 없겠습니다. 해방 직후의 정치 상황은 (2000년대를 전후하여 대학가에서 주로 읽던 ㅋ)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의 책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는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하지만 그들 책에서 다루..

애초부터 포체투지와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 나아가 장애운동 전반의 목적이 대중들의 공감과 동정을 유발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안일한 착각일 수 있다. 분명 기어가는 행위는 활동 당사자들에게도 수치스러운 행위이지만 이들은 "생존을 위해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는 자기 몸을 내던지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전사들의 노래』, 108쪽) 이 권리 주장은 나아가 단지 기존의 권리 목록을 단순히 답습하면서 정부에 이를 반영할 것을 행정적으로 요구하는 차원의 주장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는 한 사회 내에서 권리를 생각하는 기존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며, 이를 국가와 동료 시민들 앞에서 정당화하려는 주장이다. 이들은 이동권과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등의 요구들이 단지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채택되는..

난지도 매립지의 역사는 서울시가 산업화와 도시화, 발전 과정에 수반하는 물질적, 사회적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여준다. 난지도는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기피 시설을 시야에서 가린 채 서울의 쓰레기 위기를 막아냈지만, 단순 매립은 다른 환경 문제를 초래했다. 난지도는 도시 하층민에게 삶과 노동의 공간을 제공했지만, 서울시가 빈민층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재활용품 거래로 도시 경제에 기여하며 도시 환경의 물질 순환을 매개했고, 이를 통해 도시 성장의 필수적 조건을 제공했다. 주민들의 노동은 난지도 관리 비용 감축과 매립지 사용 기간 연장의 핵심적 요인이 되었다. 서울 시민들 역시 고도성장의 부산물인 쓰레기와 그 위험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난지도는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