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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자기 생각과 비슷한 책을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딱히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원래 했던 생각을 그대로 반복, 아니 더 강화시키기만 하는 독서는 아집과 편견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마련이거든요.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ㅋ) 그런 점에서 보면 서리북 14호는, 목차만 봐서는 그렇게 막 끌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기획인 '믿음 주술, 애니미즘'이 딱히 제 취향도 아니었구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제 생각은 그저 선입견이었습니다. '믿음, 주술, 애니미즘'이라는 주제는 단지 무속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신념 체계 전반까지 아우르는 것이었고, 학술 차원에서는 각종 유사 학문까지 다뤘습니다. 특히 유사 과학에 대한 권석준의 비평(「패턴의 자동 완성이 주는 편안함과 쏠림 - 『왜 사람들은 이상..
각 잡고 쓴 연구서나 논문이 절대로 빠뜨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연구사 정리'죠. 이게 있는지 없는지만 봐도 이 책이 주된 독자로 상정한 것이 전공 연구자인지 비전공 독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연구사 정리'란 어떤 책과 논문이 다루는 주제가 과거에는 어떻게 연구되었는지를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기존의 연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공백이 어디인지, 혹은 기존의 연구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순서죠. 저희 식으로 표현하자면 '골리앗'을 세우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역사와 지식과 사회』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국전쟁 연구사 정리'입니다. 그런데 연구사 정리라는게 박사논문 정도에서도 길어봐야 10여 쪽 남짓 나오는 것이 상례인데, 어쩌다가 이 책은 ..
사람 일이라는게 말이죠,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라서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역사'란 아마도 그런 일들의 총집합일지도 모릅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했던 오나라와 월나라 이야기나 열두 척으로 수백 척의 일본군을 이긴 명량해전 이야기, 국민당군에게 처절하게 개박살나고 공중폭격까지 맞아가면서 1만km 가까이 거지꼴로 쫓겨다니던 공산당군이 불과 10여년만에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했노라는 이야기 등 역사 속에는 세기의 명승부가 꽤 여럿입니다. 그러니까요, 인생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명승부는 사실 우리 곁에서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월요일 빼고 매일 같이 치러지는 프로야구 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야구만큼 경기 간격이 좁은 프로 스포츠도 없을 겁니다. 그런 야구경기에서는 ..
어떤 독자에게는 이 책이 딱히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에 대한 비판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좀 그랬습니다만, 막상 책을 들춰보니 이 책이 거명한 10개의 키워드가 사뭇 범상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과학, 교육, 문자, 법, 민주주의, 시간, 국민, 예술, 죽음, 공동선. 이들 키워드 중에는 제목만 보고도 내용이 짐작가는 것이 있었던 반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진 것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문자와 예술 같은 키워드가 꽤 낯설었습니다. 저 스스로 서구중심주의에 비판적이라고 자부하고 나름대로 공부도 좀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주는 지적인 만족감은, 당연하게 느끼는 것을 낯설게 만들어준다는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 삶..
부제는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라고 되어 있지만, 육식肉食으로 보는 일본근대사라고 하는게 좀 더 정확하겠습니다. 근대 이전의 일본에서는 육식이 터부시되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인처럼 큰 체형을 갖기 위해 육식이 장려되었고 이 과정에서 돈가스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상식에 가깝습니다. (이 책에는 안 나오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덜 알려진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젊은 시절에 서구에 대한 열망으로 억지로 쇠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돈가스에는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의 역사와 망딸리떼가 오롯이 녹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책에서 든 스키야키나 단팥빵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음식이 어디 하나둘이겠습니까.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