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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외, 부키, 20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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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외, 부키, 2012.)

Dog君 2012. 7. 30. 23:38



0. YES24에서 이 책으로 검색하면 리뷰만 200개 넘게 나오는데 나까지 거기에 더 보태서 이 책의 내용이 어떠니저떠니 이야기하는 것은 트래픽 낭비인 것 같다.


1. 한국사회에서 '재벌'이나 '노동', '복지', '민주' 같은 단어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언터처블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신주단지 모시듯 숭배하는 쪽에서든 참이슬 먹고 게워낸 토사물 보듯 하는 쪽에서든 말이다. 당장 나도 재벌 일가의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행각을 보면 곧바로 분노게이지가 상승하는 입장이니까. 그리고 이 책이 욕을 먹는 것 중 아마도 거의 90% 이상이 거기에서 기인할걸.


2. 하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참으면서 경청할 가치는 충분히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본다. 많은 경우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와 비교해서 읽곤 하지만 경제사를 전공한 나는 조금 다르게 유종일 등이 쓴 '박정희의 맨얼굴'로 거슬러 올라가겠다. 당장 내 전공과도 관련된 문제니까.


3. 읽다가 인상깊었던 구절 몇 개 옮기고 끝내자.


장하준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지만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의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더욱이 안티 이명박 진영이 죽은 박정희에 매달려 있는 것도 문제에요. 최근 그분들이 쓴 책을 보니까 '모든 문제는 박정희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다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박정희는 30년 전에 죽었고 그동안 세상이 몇 차례나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책임을 죽은 박정희에게 계속 전가한다면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p.28.)


장하준 IMF 사태 이후 자본 시장이 개방되고 자유화되면서 대기업의 경우 외국인 주주들이 50~60퍼센트 이상 지분을 갖는 일까지 벌어졌고요. 말하자면 외국인 주주들이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 경영권을 재벌 총수의 손에서 빼앗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죠.

  이런 경우 기업 경영은 10년 후에 큰 수익을 올리는 사업보다는 일주일 뒤, 한 달 뒤에 주가를 올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경구 고용 측면에서 본다면 정리해고 추진하고 비정규직 채용이나 외주화 등으로 고용 조건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 게 주가 올리는 데 유리해요. 하청 기업 단가를 깎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이런 변화가 양극화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거죠? (p.174.)


정승일 역사를 선악이라는 윤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해 영미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은연중 근대화,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발전은 '선한 영미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에서 전개되어야만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자본주의는 결코 선하거나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어느 나라나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정착시키지 못했고요.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아주 나쁜 제국주의자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 그는 19세기 말 은행과 초등학교, 우체국 등의 제도 설립을 주도해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영웅입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황당파니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는 19세기 후반기에 독일의 후발 공업화를 이끈 인물입니다. 독일에서는 좌파가 비스마르크를 독재자라고 비판하기는 해도 '자본주의 근대화에 기여한 게 뭐가 있느냐'고 하지는 않습니다. 박정희나 이토 히로부미, 비스마르크는 모두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영웅이었어요. 동시에 전체주의자였고 반(反)민주주의자들이었지요. 이건 선악을 가르치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이니에요.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pp.176~177.)


장하준 당시 우리 견해를 요약하자면, 재벌이 국민 경제에 유효한 면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재벌 가문에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는 대신 복지국가 문제에서 명확한 대가를 받아 내야만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당시는 진보 성향의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고 있던 데다가 소버린이나 아이칸 같은 해외 투기 자본이 일부 대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나 재벌들의 위기감이 대단했어요. 이런 정치적 경제적 환경을 감안해 위기에 몰린 재벌을 도와주며 압박한다면 복지국가를 향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판단했던 거죠. (p.217.)


정승일 우리가 재벌 개혁 그 자체를 반대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재벌을 개혁하자는 건 마찬가지예요. 단지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라 경제 민주주의의 대의에 걸맞은 재벌 개혁을 하자는 겁니다. 기업집단법 같은 걸 만들어 재벌의 경영권은 안정시켜 주자, 대신에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도 엄정하게 짊어지게 하자, 신산업 투자와 노동권 보장, 부자 증세 등도 반드시 받아내도록 하자는 거죠. (p.265~266.)


장하준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현대 경제는 복지국가를 더욱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산업과 경제 구조가 비교적 단순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그다지 높은 기술이 요구되지 않았어요.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옮길 때 그저 몇 주 정도의 전직 훈련만 받으면 적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날은 산업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고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직종을 바꾸는 경우 상당 기간 재교육이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그에 따른 부담을 실직자가 감당할 여력이 있을까요? 이 부분에 국가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 전체의 산업 고도화가 아주 힘들어지는 거죠.

  간단히 말해 우리가 말하는 복지는 '경제 발전으로 이제는 먹고살만큼 파이가 충분히 만들어졌으니, 이제부터는 그 파이를 모두 나눠먹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복지국가는 그렇게 한갓 분배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되는 거예요.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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