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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와다 하루키, 돌베개, 200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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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와다 하루키, 돌베개, 2002.)

Dog君 2012. 7. 30. 23:00



0-1. 김일성이 죽었을 때도 그랬고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그랬다. 대충 이런 그림 자주 나왔다. 자연스럽게 "아 정말 저노무 에미나이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그렇게 배곯고 사는 사람들이 무슨 ㅅㅂ 옴 진리교 교주 모시듯 수령님 장군님 모시는거."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그림들.


나이엔 장사 없더라구요.


0-2.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그러니까 북조선이라는 나라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미친 나라야."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냥 거기서 끝이라는거지. 두동강난 우리 민족 어쩌고저쩌고 통일의 일주체 어쩌고저쩌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평화적 회담이 어쩌고저쩌고도 다 필요없다. 아니 미친 놈이랑 무슨 얘길 더 하겠냐고.


이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말이지.


0-3. 그런데 김일성과 김정일의 죽음에 오열하는 이들을 '비합리'나 '정신병', '독재', '세뇌'라는 단어로 설명하려면 우리는 응당 똑같은 기준을 이 아래에도 적용해야 한다.


씨바스리갈을 마시다 비명에 돌아가신 모 대통령의 죽음에 슬퍼하는 한 버스안내원.


0-4. 버스안내원은 6,70년대 산업화의 병폐를 가장 잘 드러내는 직업군에 속한다. 그들의 노동환경 자체가 이미 양적으로만 급격하게 성장한 도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낼 뿐만 아니라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사람 많으면 달리는 버스 문간에 매달려야 했다)이라든지 그들의 출신배경(시골에서 상경하여 전문적인 직업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20대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등은 그들이 박정희 개발독재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임을 증명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들이 박정희가 죽었다고 울었다. 아,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蛇足1. 버스안내원에 대해서는 이승원의 책 '사라진 직업의 역사'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가 정보면에서든 흥미면에서든 괜찮다고 한다.


0-5. 그렇다고 내 얘기가 김일성이나 박정희나 둘 다 개새끼...하고 마는 식의 그런 1차원적인 얘기는 아니고... 북한/남한, 김일성-김정일/박정희-박근혜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감/친근감은 일단 좀 뒤로 미뤄놓고 이런 현상들을 타자화시켜서 객관적 분석의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거. 박정희 시기에 대한 여러 학문적 논의들(임지현이나 조희연이나 이병천이나 뭐 그런 분들이 줄곧 하고 계신 그런거)이 바로 그런 노력의 일환일텐데 어찌 된 일인지 북한에 대해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 아마 남한 사회가 지난 60년 내내 '북한'이란 소리에 경기발작을 일으켜왔던 사회라서 그런 것 같다.


이거슨 어버이연합의 네이버 디스.


蛇足2. 상현씨는 '와다 하루키'란 이름을 들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사실 난 이게 생각났다.


"와다아아~~~~"


1-1. 그닥 쓸모없는 헛소리하다가 서론만 졸라 길어졌다;;; 이 책,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하고 인용도 많이 되는 책이다. 사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북한에 조금이라도 진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만한, 어느 정도는 정전(正典)의 반열에 오른 느낌도 없지 않다.


1-2. 아까 앞에서 한참 떠들었던 북한의 (가히 극단적인 수준의) 개인숭배와 오랜 경제공황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회적 균열을 허용치 않는 사회적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와다 하루키는 '유격대국가'라는 틀을 꺼내든다. '유격대국가'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김일성이 만주에서 벌였던 유격대 활동의 경험을 전 인민이 본받아야할 역할모델로 설정하고 개별 인민들에게는 유격대원으로서의 품성을 요구한다는 것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각 개별 인민이 모두 유격대원이 된다는 것은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격대 조직이 된다는 것이고 김일성은 그 조직 최상부의 유격대장이 된다는 것이다. 사병 수천명이 죽든말든 대장 한 명 잡히면 싸움 시마이하는 것처럼, 이 국가의 흥망성쇠는 김일성 개인에게 집중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김일성이 가끔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는 신화적 존재로 격상되는 시추에-숀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이 국가의 흥망을 걸고 싸웠던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에게 일정한 신화를 덧씌우는 것처럼 말이다.


1-3. 와다 하루키는 이처럼 '개인숭배' 혹은 '유일사상체제'를 북한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 보기 때문에 북한사회가 그 체제를 완전히 구축한 것도 1967년으로 잡는다. 이 점은 1960년 초반에 이미 북한체제가 그 기틀을 잡았다고 보는 이종석이나 서동만과는 약간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1960년대 후반의 북조선에는 국가사회주의체제 위에 새로운 구조가 2차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체제는 '수령제'(스즈키 마사유키), '유일지도체제'(이종석) 등으로 불리는데 필자는 1985년부터 '유격대국가'로 부르는 사고를 제창하였다.

  이 구조가 성립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구체적인 성립 계기는 1967년 5월의 당중아우이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유일사상체계'가 제안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때까지도 김일성이 유일한 수령이었으며 1961년에는 만주파와 갑산계가 당과 정부를 독점적으로 장악하였다. 왜 이제 와서 '유일사상체계'를 말해야 했던 것일까. 이것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필자는 1993년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961년에 일어난 일은 만주파의 승리였다. 이제까지는 정점에 김일성밖에 없었다가 만주파 전체가 등장했다. 일견하면 김일성이 만주파 속에 끌어들여져 김일성 개인의 리더십 대신에 만주파의 집단적 리더십이 앞에 나선 것과 같다. 예컨대 갑산계라 불리는 사람들도 투쟁 실적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만주파라 하면 김일성과 함께 싸운 남만의 제1로군계도 있고 최용건이나 그와 함께 싸운 제2로군계도 있으며 김책과 함께 싸운 북만의 제3로군계도 있다. 만주파가 제각각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김일성과 연결되지 않는 경험도 반드시 말하게 된다. 1964년에 나온 조선혁명박물관의 전시를 묶은 책도 그러한 예이다. 만주파의 승리가 얄궂게도 유일지도자였던 김일성의 위치와의 사이에 모순을 발생시켰다는 것이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전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대하여 이종석은 표면적이라고 비판하였다. 1960년대 초부터 김일성은 유일지도자였으며 만주파가 그것을 대신하는 '정점으로서의 만주파'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이종석의 주장은 1967년 대립의 계기를 올바르게 지적했다고 생각되지만 필자의 지적은 1961년에 생겨나 결국에는 1967년을 낳은 기본 전제를 말한 것이다. 그 점에서는 필자의 지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1961년에는 김일성을 선두로 하는 만주파, 갑산계가 승리하였다. 그 결과 김일성의 위치가 당중앙위원회에서 좀 내려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pp. 123~124.)


2-1. 이상과 같은 기본전제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나도 '아 그렇구나...'하고 고개 끄덕이며 책을 따라갔지만 곧장 뭔가 찜찜한 생각이 안 드는 것은 또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유격대국가'라는 것이, 정말로 그 사회 전체를 함축하여 표현할 수 있는 핵심키워드인지 아니면 단지 정권에 의해 인민들에게 요구된 '정치적 수사修辭'인지 약간 불명확한 것 같다.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유격대국가를 정식화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정치국원에 선출되면서 곧바로 '김일성주의를 제창하여 유격대국가의 기본 슬로건을 내걸고 유일사상체계의 재(再)정식화를 제안하였다. (중략)

  이에 비해 훨씬 중요했던 것은 1967년의 "항일유격대원처럼 혁명적으로 살며 일하자"는 구호를 발전시켜 1974년 3월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라는 구호를 제안한 것이다. 4월 14일에 김정일은 '전 당과 온 사회에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튼튼히 세우자'는 연설을 하였는데, 이 연설 가운데서 '항일유격대 식'으로 당의 사상, 교양 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라는 구호는 '유격대국가'를 표현하는 기본 슬로건이다. 김일성은 1975년 3월의 연설에서 "최근에 당중앙(김정일)이 내놓은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는 매우 좋은 구호"라며 이를 인정했는데 최종적으로는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보고를 통해 명확히 공인되었다. (pp. 141~142.)


2-2.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항일유격대'라는 것이 사회적 역할모델이 되고 추구해야할 가치가 된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이걸 곧바로 사회 전체를 결정짓는 어떤 틀로까지 격상시키는 과정은... 뭐랄까 중간과정이 너무 많이 생략된 비약의 과정은 아닌가 싶은거다.


2-3. 박정희가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내걸었고 그 체제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20년이나 갔잖아...)고 해서 남한사회를 '반공국가'로 규정짓고 그 틀에 맞춰서 박정희에 대한 개인숭배 경향이라거나 그 안정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나. 사실 박정희의 반공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독립되어 존재할 때에는 단순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았고 국민 일반에게 굉장한 설득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듯 박정희 체제가 유지되는 과정은 반공주의 하나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대단히 복잡한 힘과 관계들이 서로 얽히고 섥힌 것이었다.


2-4. 그런 점에서 슬로건으로서의 '유격대국가'와 실제 사회를 분석하는 틀로서의 '유격대국가'는 분리될 필요가 있는거 같다. 다시 말해 '유격대국가'라는 슬로건이 실제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관철되었는지가 좀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는거 아닌가... 싶었단거지.


2-5. 그런데 이 책의 문제의식이 다듬어지는 것이, 내가 장황하게 서론에서 늘어놓은 것과 같다면, 다시 말해 '현재의 북한'이라는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북한체제의 형성과정'이라는 원인을 향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순서로 이뤄진 것이라면 왜 와다 하루키가 그 과정을 생략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아 ㅅㅂ 내가 쓴 문장이지만 문장 참 더럽다.) 가히 극단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저런 개인숭배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유격대국가'라는 슬로건이 상당 부분 관철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6. 그런데 이건 또 좀 다른 문제인 것 같긴 한데... 과연 그런 '유격대 국가'가 과연 3대 세습을 가능케하는 것인지는 또 따로 고민을 더 해봐야할 것 같다. 이건 뭐 사회주의 강성대국 나발이고 완전 조선시대로 빽투더퓨처한건데 이게 어떻게 그리 쉬이 받아들여지는지 잘 모르겠다. 북한 사회가 누리고 있는 놀라운 안정성, 일찌기 스탈린과 박정희 등도 꿈꿨던 그런 놀라운 안정성은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걸까.


3-1.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하나의 질문을 돌파하고 나서도 또 좀 찝찝한게 남는다. 음... 암만 생각해도 '유격대국가'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 ㅋㅋㅋ 하나의 국가를 파악하는 모델로 '유격대국가'를 제시했으면 대체 그게 어떤건지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슬로건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차치하고 과연 그 슬로건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건지 책을 암만 읽어도 모르겠다는거.


3-2.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 한다는건 대체 어떻게 한다는걸까. 엄동설한에 하루 수십km씩 산비탈을 뛰어다니면 그게 항일유격대 식으로 사는걸까. 아니면 그냥 ㅅㅂ 좆나좆나 빡세게 살면 되는걸까. 물론 와다 하루키는 이에 대해 몇 가지 힌트를 남겨주기는 했다.


  이와 같이 국가를 인체에 비유하는 것은 부분부분을 고정하여 상하관계를 명확히 하려는 중세적인 정치문화를 표현한다. 이것이 북조선의 유격대국가에 도입된 것인데 이는 유격대의 존재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문화였다. 왜냐하면 유격대란 대원 하나하나가 스스로 알아서 생존을 확보하고 전투를 계속해 간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므로, 사령관만이 생각하는 힘을 독점하고 있는 곳에서는 존재하고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조는 인용자, p. 149.)


  마지막으로 북조선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초기에 이득을 올린 다음 문제에 봉착하면 이를 포기하고 다른 프로젝트로 무게중심을 옮겨버리는 유격대적 경제 운영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강조는 인용자, p. 233.)


3-3. 너무 단편적인 조각만 남겨주신 덕분에 몇 가지 추리가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안 그래도 글 길어졌는데 그런 무리한 추리는 일단 배제하는게 좋겠다. 어쨌거나 그런 문제를 느꼈다는 점만 정리해 놓고.


4-1. 책의 말미는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분석으로 넘어간다. 와다에 따르면, 김일성의 북한은 '유격대국가'였고 김정일의 북한은 '정규군국가'이다. 냉전이 해체되고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김정일은 더 이상 전 인민의 유격대化를 요구하기는 어려워진 것 같다. 그에 따라 국가형태가 달라져야 하는 것도 물론이겠지.


  김정일이 국가의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는 우선 경제 위기에 손을 썼어야 했다. 1995년 여름 북조선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폭우가 수해를 불러왔고 주요 농업 지역이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모든 인민에게 김일성의 유격대원임을 자각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했다. 다른 한편에서 김정일은 이미 존재하는 정서와 손에 쥐고 있는 수단을 가지고 이 위기에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즉 지지동원에 성공한 군대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자신이 그동안 우대해 온 군대를 경제에서도 다른 인민의 모범이 되도록 전위에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p. 305.)


4-2. 이는 단지 '군대'를 사회의 모범으로 삼고 그것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군대라는 조직을 자신의 주요한 지지기반으로 삼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지지기반은 상당부분 축소된 셈이다. 아무리 군대 조직이 크다 해도 전체 국민들보다 클 수는 없으니까. 그런 점에서 북한 체제는 조금씩 위기를 향해 근접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적어도 5, 60년대에 보여주었던 엄청난 규모의 대중동원은 이제 다시 찾기 어려울 것 같다.


5. 얼마 전 김정일의 뒤를 이은 김정은이 '원수' 칭호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김정은이 원수 칭호를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 주위의 사람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세간의 관심사항이다. 이번에 실각한 이영호가 기존 군 수뇌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면 새로이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등장한 최룡해는 (군인 출신 아니고) 민간인 출신의 경제통으로 알려져 있다. 유격대 국가와 정규군 국가를 이어 다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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