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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문학동네, 20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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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문학동네, 2012.)

Dog君 2012. 10. 20. 17:51

 

 

0. 학부 2학년 2학기 아니면 3학년 1학기였을 것이다. 중국근대사 수업시간에 영화를 한 편 보았는데, 위화의 소설을 원적으로 한 영화, '인생(원제는 活着)'을 보고, 살짝 방황을 겪고 있었던 나는 가히 떡실신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1-1. 흔히들 역사라고 하면 스케일이 엄청 큰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전쟁이라도 한번 나면 수십만명이 몰살당하는 것도 순식간이고, 국가 단위로 경제 얘기를 할 때는 평생 다 셀 수도 없는 몇십몇억 같은 숫자들도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며 쿨한 척 할 수 있다.

 

1-2.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역사라는 것도 무수히 잘게 쪼개다보면 결국엔 그냥 보통의 사람사람들이 만들어온 작은 이야기들이 된다. 뭐 역사책에서야 수백년의 세월이나 수백간짜리 고대광실도 한 두어줄이면 다 만들고 짓고 부수고 그럴 수 있지만, 솔까말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에게 그런 식으로 나라 하나 들었다 놨다 하는거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거다.

 

정 들었다놨다 하고 싶으면 이런거 하면 된다.

 

1-3.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현재 우리가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하는데 있어서 과거의 경험을 중요한 참고사항으로 삼기 위해서라면, 우리네 할아버지가 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얼굴 한번 볼 일 없었던 세종대왕이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뭔 일을 했는지도 물론 졸라게 중요하지만, 그냥 우리 28대조 할아버지 쯤 되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졸라캡쑝 중요하다는거지. 내가 세종대왕이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같은 위치가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1-4. 내가 '인생'을 보고 떡실신의 지경에 이른 것도 그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저 역사를 쓰는 사람이란 한국전쟁이니 문화대혁명이니 하는 역사적 사건이 개별 인간들의 삶을 결정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같은 사건을 겪고도 개별 인간들의 삶은 각기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만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도 그것은 결코 개별 인간들의 삶을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가 아니라 단지 그들의 삶을 둘러싼 거대한 조건이다. 그리고 그 조건 속에서 그 사람들이 적당히 비겁하고 치사빤쓰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아마도 그 모습들이 역사의 가장 작은 알갱이들일 것이다.

 

2-1. (내가 보기에) 위화는 그 작은 알갱이에 애정을 가지고 천착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미 피와 살을 갖춘 '인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민'의 심장이 강렬하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민'에 대한 내 견해는 톈안문 광장의 백만 인파가 보여준 대규모 시위가 아니라 5월 하순 깊은 밤의 아주 작은 경험에서 왔다. (중략)

  그들은 손에 아무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신념만은 대단히 확고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이 움직이면 군대와 탱크도 막아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이 한데 뭉쳐 있으니 거센 열기가 솟아올랐다. 모든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 같았다.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이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pp. 37~39.)

 

2-2. 인용을 하고 보니 좀 설명을 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인용 부분만 놓고 보면 마치 '인민'이란게 역사의 거대한 진보를 위해 멈춤없이 전진하는 투철한 전사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아마도 한 부분만 뚝 떼어서 인용했기에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이 책의 일관된 주제의식이 그러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위화는 역사적 선善으로서의 민중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적 격변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떠한 형태로 사람들의 삶과 관계하고 그것을 조건짓는지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위화가 그려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순박한 동시에 치사하고 옹졸하다. (그래서 가끔 우습기도 하다.)

 

  이어서 우리는 대자보를 어디에 붙일까 하는 문제로 토론을 벌였다. 나는 우리 집 대문에 붙이자고 했다. 그래야 우리 이웃들이 우리가 섣달그믐 저녁에 한 위대한 행위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형은 영화관 매표소 앞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곳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볼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마음속으로 우리 두 철부지 개자식들을 호되게 질책했을 것이다. 두 분은 그저 쇼를 하고 당신들의 혁명정신과 정치적 각오를 드러내기 위해 대자보를 쓴 것이지, 결코 남들에게 이런 대자보를 읽히고 싶었던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 섣달그믐의 대자보에는 아주 높은 실용적 가치가 있었다. 아버지의 자술 자료에 한 줄기 빛을 드리울 수 있는 대목이었던 것이다. (p. 120~121.)

 

3. 이러한 자세는 가히 정치에 대한 냉소와 조롱에 가깝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지 문화대혁명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위화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을 그렇게 간단한 말 한 두 마디로 정리해버린다면, 이야기들은 다시 구체적인 삶과 유리되어 저 멀리 어디론가로 멀어진다. 역사를 공부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나라 하나 들었다 놨다 하는 나같은 역사학도는 그 구체적인 삶들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

 

  가난에 시달리던 납치범 둘은 사람을 납치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니다가 헛수고로 끝나자 위험한 짓이라도 해서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그들에게는 치밀한 계획도 충분한 준비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벌건 대낮에 즉흥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을 납치한 것이다. (중략) 그들은 좀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거는 것이 안전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경찰은 아이 부모의 휴대전화에 남은 공중전화 번호를 추적해 납치범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아냈고 재빨리 범인들을 검거하면서 사건을 해결했다.
  두 납치범은 아이의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했을 때 수중에 도시락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었다. 그중 한 명이 어디선가 인민폐 20위안을 빌려다가 도시락 두 개를 사 와서는 한 개는 아이에게 먹이고 나머지 한 개를 둘이서 나눠 먹었다. 구출된 아이는 나중에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아저씨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그냥 풀어주시면 안 되나요?" (pp. 216~217)

 

* 대충 이 부분에서 좀 왈칵했다. 상현씨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로쟈의 서평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아, 이거 기분이 어때야 하는건가.

 

4. 그러니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거대한 역사가 과연 구체적인 행복까지 담보하는가"가 아닐까. 혁명이니 성장이니 개발이니 하는 것들이 인류사의 진보를 담보하고 인류 전체의 생산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과정 속의 작은 알갱이들도 저절로 행복해지는걸까. 반대로 인류사의 거대한 퇴보라고 말하는 그 모든 사건들 속에 있었으니까 작은 알갱이들도 당연히 슬프고 불행했을까. 아마 그 작은 알갱이들에 매정하게 눈돌리지 않는 것이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을 공부하는 사람이 응당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이런 느낌은 내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p. 35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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