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광야 (정찬, 문이당, 200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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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정찬, 문이당, 2002.)

Dog君 2013. 5. 4. 18:05



1.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지 않나 싶지만, 장르에 관계 없이 '5월 광주'는 여전히 우리가 잊지말아야 하는 것이다.


2. 예전에 어디에서도 그런 글을 휘갈겼던 것 같은데, 나는 '5월 광주'가 '1980년 5월'의 일만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광주'의 일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 보편의 양심과 구원에 천착하고 그것을 좀 더 넓은 틀 속에 담아낸 이 책의 관점에 공감가는 면이 크다.


  강선우는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쇠파이프를 움켜쥐고 있는 사내는 분명 시위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은커녕 꿈짝도 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자욱한 가스 비 속에서 사내는 나무처럼 서 있었다. 자신의 대검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군복도 마찬가지였다. 소맷자락에는 선지피가 엉겨 있었다. 꼭 피의 통 속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았다. 진압봉은 언제 어떻게 떨어뜨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픔이 몰려왔다. 어깨가 쑤셨고, 등살이 아팠다. 시위대의 쇠파이프에 맞은 곳이었다. 그자의 몸을 찔렀을 때 근육을 뚫고 튀어나오는 흰 뼈를 보았다. 상대방의 울음 같은 비명을 목구멍 깊숙이 삼켰다. 칼을 뺄 때 너무 힘들어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는 길을 잃었음을 알았다. 대열에서 이탈하면 위험하다. 하지만 이탈했음이 분명했다. 등 뒤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럼에도 몸을 돌리지 않았다. 몸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가 궁금할 뿐이었다. 왜 저렇게 서 있기만 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입 안이 칼에 베인 듯 쓰려 왔다. 그는 혀로 바짝 마른 입술을 축였다. (p. 54.)


  프레스 작업을 하는 이들은 손가락이 자주 잘렸다. 철판을 강타하여 절단, 압축, 조형하는 프레스에는 안전장치가 있다. 하지만 사용주는 안전장치를 뜯어 버린다.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함이다.

  이 모두가 학살이었다. 다만 그 속도가 느릴 뿐이다. 속도의 느림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마취시킨다. 학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것이 학살임을 알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 비해 학살임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얼룩무늬들의 행위는 차라리 정직했다. 위장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용주들에게 신물 나게 보아 왔던 교묘한 혀 놀림도 없었고, 번듯한 가면도 보이지 않았다. 학살의 대상으로 광주를 선택한 것 역시 정직의 발로였다. 유신 권력자들에게 공개적인 학살이 필요했다면 광주일 수밖에 없었다. 사용주가 프레스의 안전장치를 뜯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들과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광주를 선택한 것도 이와 흡사했다. 전라도는 그들과 너무 먼 곳에 있었다. (pp. 61~62.)


  너와 나의 차별이 다시 시작된 것은 시위대의 총기 무장이 이루어진 21일 오후부터였다. 광주로 유입된 총기는 5천4백여 정이었고, 총을 잡은 이들은 1천여 명이었다. 그날의 시위 군중은 30만여 명이었다. 그러니까 29만 9천여 명은 비무장이었다. 시가전이 벌어지자 그들 중 상당수는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우리였고 전사였던 광주 공동체에서 시민군이라는 새로운 집단이 탄생함으로써 비무장 시민들은 전사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전락했다. (p. 104.)


  인간이 두려운 존재인 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의 존재의 심연에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파괴와 죽음의 가학적 에너지를 보지 못한다. 영원의 세계에 발을 살짝 걸쳐 놓고 있는 그 교활한 생명은 결코 깊은 잠을 자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이 하도 헐거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명주 조각처럼 펄럭이기 때문이다. 펄럭이는 틈새로 솟구쳐 오른 검은 짐승이 지상을 피로 물들일 때 인간의 눈은 비로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절망적 운명이야말로 어머니의 가슴을 파헤치는 짐승의 발톱이다. 가슴이 파헤쳐진 어머니의 영혼은 누구에 의해서도 위무되지 않는다. 위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죽음의 땅에 누워 있기 때문이다. (pp. 205~206.)


  남한의 반공 이데올로그들의 가장 큰 착각은 반공 이데올로기 체제의 고수가 자유 민주주의의 고수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체제 유지를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가 자유 민주주의를 앞설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 불행한 시대가 만들어 낸 것이 좌파 사상에 대한 본능적 적의였다. 그들에게 좌파 사상은 자유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사회악일 뿐이었다. 한국 전쟁이 만들어 낸 이 원시적 도그마를 냉전 체제 해체 이후에도 견지하려고 한다면, 어떤 논리도 그들을 극단주의자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극단주의다. 극단주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광주 학살이었다. (pp.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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