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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생애 (정찬, 문학과 지성사, 20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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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생애 (정찬, 문학과 지성사, 2009.)

Dog君 2013. 6. 3. 07:11



1. 그 바쁜 와중에도 악착같이 책을 읽어놨구만. 하지만 실제로 다 읽은 건 두어달 전이라는게 나름 반전.


2. 역시 핵심은 '성찰' 아니겠나 싶다.


  비 오는 봄날이었다. 마당에서 피어오르는 흙냄새가 어머니의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섞여 들고 있었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천 년도 더 된 옛날에, 한 마술사가 있었단다. 어느 날 마술사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밧줄을 들고 나타났어. 사람들은 그가 어떤 마술을 보여줄지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았지. 그가 하늘을 향해 밧줄을 던졌단다. 하늘 높이 올라간 밧줄이 장대처럼 꼿꼿이 섰어.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밧줄을 올려다보았어. 밧줄이 너무 높아 끝이 보이지 않아단다. 마술사가 밧줄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어. 사람들의 시선이 마술사를 따라 점점 위로 올라갔지. 마술사의 몸이 구름에 휩싸이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눈을 달처럼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어. 구름보다 높이 올라간 마술사의 몸이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어. 하늘 속으로 사라진거야. <그 남자는 왜 거기에 서 있었을까> 中 (p. 71.)


  겨울바람 속에서 비스듬히 서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가 똑바로 서지 못하는 것은 몸의 절반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비스듬하게라도 설 수 있었던 것은 추억이라는 생명체 덕분이었다. 추억은 기묘한 생명체였다. 그 기묘한 생명체는 세계를 천천히, 그러나 쉼없이 안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안개에 휘감긴 세계는 불투명한 막에 싸인 것처럼 흐릿해져갔다. 그 잿빛 세계 속에서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강물을 역류하는 물고기처럼. 그랬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은 한 마리 은빛 물고기였다. 모든 것이 흐릿한 잿빛 세계 속에서 오직 은빛 물고기만이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그 날렵한 물고기가 세계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 거기에는 추억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 눈부신 세계의 주인은 강희우, 그녀였다. 그녀가 눈을 감으면 세계는 어둠이었고, 그녀가 눈을 뜨면 세계는 희디흰 빛의 세계였다. 그녀가 입을 다물면 세계는 고요했고, 그녀가 입을 열면 세계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홀로 완전했다. 홀로 완전한 그녀 곁에 유령 같은 내가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유령이었다. 내가 다가가도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녀의 손을 잡아도,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고, 그녀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도 그녀는 나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에게 나는 없는 존재였다. <희생> 中 (pp. 80~81.)


  저는 당신에게 여성을 숙명적 희생자라고 말했어요. 저도 숙명적 희생자였지만 당신도 숙명적 희생자였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여성적 존재예요. 이상하게 들려요?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요. 제가 말하는 여성이란 실체적 존재이면서 상징이에요. 여성의 개념이 깊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폭력의 모든 희생자는 여성적 존재예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오는 아이처럼, 근원적 폭력을 통과함으로써 여성적 존재라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거예요. 저는 여성의 본질을 슬픔이라고 생각해요. 희생자의 본질은 슬픔이에요. 슬픔은 고통과, 고통이 불러일으키는 원한을 정화해요.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폭력에 대한 분노를 지운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분노와 원한은 달라요. 폭력에는 분노해야 해요. 폭력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폭력을 인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예요. 그 분노를 껴안으면서, 분노를 넘어서는 감정이 슬픔이에요. 분노가 또 다른 폭력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고귀한 감정이지요.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슬픔에 감싸여 있기 때문이에요. 예수를 보세요. 예수가 가시 면류관을 쓴 순간 그는 여성적 존재로 변화했어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적 존재로 변화했어요. 그 여성적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의 눈물이 세상을 적셨어요. 그러니 세상이 아름다울 수밖에요. <희생> 中 (pp. 119~120.)


  광호는 자주 굴욕을 느꼈다. 느꼈다기보다 굴욕에 짓눌려 있었다. 굴욕에 짓눌린 자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 틈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굴욕감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오토바이를 타고있을 때였다. 속도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눈앞의 세상이 기우뚱해진다. 기우뚱한 세상이 희미해지고, 마침내 형체를 잃고 어떤 물결이 되어버릴 때, 그 물결을 가로지르는 광호의 몸은 홀로 빛났다. 홀로 빛나는 광호의 몸 안에 굴욕감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뿐인데도 굴욕이 느껴지지 않았다. 쿨욕은커녕 오히려 누군가를 버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상한 것은 누군가를 버렸음에도 버림받은 느낌이 동시에 든다는 사실이었다. <폭력의 형식> 中 (pp.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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