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남화숙, 후마니타스, 2013.) 본문
1-1. 밤이든 낮이든 별은 그 자리에서 그 밝기 그대로 떠있건만, 우리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그 별들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왜냐고. 낮에는 해가 너무 밝으니까. 졸라짱 밝은 거 옆에 있는데, 어떻게 빛이 나겠냐고.
1-2. 개발독재 시기 노동운동의 역사에는 '전태일'이라는 큰 태양이 빛나고 있다. 그 태양의 뒤에는 청계피복노조를 중심으로 한 YH무역 등 비숙련노동자들의 투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 설마, 그걸로 끝인가? 당연히, 그럴리가 없다.
(전략) 이 책이 소개하는 조선산업 노동자들은, 1960년대에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을 꽃피운 특별한 역사를 지녔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하는 민주적인 국가에 대한 일관된 전망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들은 일반 사회에서 널리 수용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이상을 전유해 효과적인 저항 담론을 생산해 냈다. 민주주의와 국가 건설에서 노동자가 담당하는 사명에 대해 그들이 만들어 낸 담론은 산업화의 과실을 공유할 권리는 물론 사회적 위상에서의 평등을 주장할 근거도 함께 제공하는 장점을 지녔다. 동시에 그들의 담론은 성차에 대한 관념에 깊이 뿌리박은 것으로, 그들의 주장은 가장으로서 노동자가 가지는 남성적 주체성에 대한 인식에 견고히 연결되어 있었다. 1960년대 남성 노동자의 남성성과 존엄성에 대한 감각은 일정 수준의 가족 생활급을 벌어들이는 능력에 크게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조선공사의 사례는 이후에 발전된 1970년대 경공업 여성 노동자들과 1980년대 중공업 남성 노동자들의 운동에 일정한 원근감을 제공해 준다. 대한조선공사 노동운동을 1970~80년대의 운동과 해방 직후의 투쟁 사이에 놓고 바라보면 각 시기 노동운동 사이의 연속성과 유사성이 부각된다. 이 문제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룰 것이다. 20세기 후반기의 급변하는 정치·경제적 조건이라는 거시적 맥락 속에서 각 시기에 나타난 노동자들의 열망, 태도, 요구의 공통점을 검토해 본다면 노동자 주체성의 여러 측면과 투쟁성의 원천에 대해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pp. 29~30.)
2. 노동조합의 오래된 문서고에서 길어올린 대한조선공사(現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이야기는, 이미 1960년대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활발한 노동운동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전투성과 민주성의 수준이 지금에 비겨 결코 저평가되어서는 안 됨을 말해준다. 특히 1960년대의 활동을 다룬 2부에서, 고용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평등주의적 경향, 그리고 서구의 그것에 비겨도 결코 손색없는 민주주의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소속된 모든 노동자의 공평하고 평등한 대우를 위해 싸우는 노조라는 방향으로의 발전은 노조 자체의 민주적 운영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궤를 같이했다. 조공 문서철의 자료는 노조 간부들이 노조 활동에서 일반 조합원의 의견을 무척 중요시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회의에서 항상 "현장 분위기"를 걱정했고, 각 현장에서 선추로디어 온 집행위원들에게 현장에 가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와서 보고하라는 요청을 자주 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전에 현장마다 의견 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략)
노조는 공식·비공식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표현했다. (후략) (pp. 160~161.)
3. 문제는 60년대 말부터 불거진다. 국가 주도의 급격한 경제성장이 개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상승시킬 수 있었던 시기로 접어들면서, 대한조선공사 민주노도의 전통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60년대 후반 민영화를 둘러싼 일련의 투쟁에서 겪은 심각한 패배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급격히 위축시켰다. 또한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누릴 수 있었던 남성숙련노동의 위치 역시 그들로 하여금 침묵을 지키도록 만든 요인이었으리라.
(전략) 다시 말해,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낮은 임금에 묶어 둠으로써 한국은 수출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함과 동시에, 중공업의 숙련 집약적인 직종으로 동원된 남성 노동자들이 상대적인 고임금, 빠르게 상승하는 실질임금의 혜택을 누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 극단적 젠더 위계질서가 1970년대 남성 노동자의 침묵을 유도한 핵심 요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올라가는 임금과 높아지는 직위를 향유하던 남성 노동자들은 1970년대 동안 상대적으로 불만이 적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p. 387.)
4.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미봉해 놓은 노동자들의 전투성은, 거꾸로 말하면 경제 성장이 주춤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분출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숙련된 남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서 잠시 물러나있었던 것은 1970년대의 일시적 현상이었던 것 같다. 60년대 민주노조의 기억은 집단기억의 형태로 보존되었고, 결국 1980년대 후반 노동자 대투쟁으로 다시 피어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시.
김진숙은 1977~1981년 사이에 조공 조선소에 용접공이나 절단공으로 고용된 약 1백여 명의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재벌 회사들의 조선산업 진출에 따라 생긴 심각한 숙련 노동자 부족 현상 때문에 이 기간 동안 회사는 숙련 생산직 자리를 여성에게 처음으로 개방한다. 김진숙은 힘든 남성적 환경을 이겨내고 작업장에서 존중받는 숙련공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김진숙이 노조 활동가로 변신하는 과정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는데, 두 가지 사건이 그의 세계관 변화에 특별히 큰 영향을 끼쳤다. 하나는 떨어지는 철판에 맞아 다리가 부러진 사건으로, 그 일을 통해 김진숙은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고도 이를 보고하지 못하고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조선소의 엄혹한 노동 현실에 눈뜨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1984년 3월 대학에 가고 싶은 강렬한 소망으로 등록한 야학에서 지역 노동운동을 접하게 된 일이다. 1985년 김진숙은 노동운동에 발을 디디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업장 동료 두 사람과 함께 김진숙은 노동법을 공부하고 노조의 활동을 조사하는 소그룹을 조직힌다. 근로기준법에 쓰여 있는 보호 조항에 고무되어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료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했다. 노동권에 대한 열정이 그를 노조 대의원대회로 보내자는 선배 노동자들의 결정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pp. 414~415.)
5. 1970년대 숙련 남성노동자들의 경험과 일상. 앞으로 중요한 연구주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6. 마지막으로 하나 더 흥미로운 부분. 본문에서도 아주 잠깐 훑고 지나가는 부분이지만, 한 때 이쪽으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서, 메모 삼아 적어두기로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싸웠던 한국전쟁의 경험도 한국 사회에서 이런 개념들이 유통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 조공 노조원들 중 상당수가 한국전쟁 중 혹은 그 직후에 군대에 복무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의 군대 경험이 민주주의 이상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고 자신들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중략) 그러나 한국전쟁 중 군에 복무한 남성들이 북한 공산 정권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면 군 경험으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상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사회로 나온 사람들도 일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지 않을까? 군 복무자들에게 군 경험의 결과로 나라의 장래에 대해 발언할 권리 의식과 사회로부터 좋은 대우를 기대하는 심리가 자랐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pp. 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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