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문학동네, 2008.) 본문
1. 이번 소설 선정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라디오와 팟캐스트와 그 외 각종 기타 등등에서 좋은 소설가라고 말들이 자자하기 때문에 선정한 작품 되겠음. 그러고보면 나의 소설책 선정 기준은 거의 전적으로 저자의 이름을 따르는 것 같다.
2. 최근작에서는 그렇게나 욕을 찰지게 잘 쓴다고 하는데, 이건 첫 소설집이라서 그런지 거친 단어들은 거의 안 나온다.
3-1. 실존하지 않는 상황/사건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얼핏 김중혁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김중혁의 상상력이 여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반면, 황정은의 상상력은 무슨 초현실주의 그림 같다. 사람이 갑자기 모자가 된다니, 그게 뭐야 대체.
3-2. 그리고 훨씬 더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이대로 이야기가 계속 흘러간다면 소설 속 이야기들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 뻔한데, 황정은은 이야기를 그냥 거기서 끝내버린다. 서너 페이지만 더 쓰면 등장인물들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될 것 같아서, 아니 뭐라도 정리를 좀 해줬으면 싶긴 한데... 아, 혹시... 서너 페이지 더 쓰면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냥 그쯤 어디서 끝내버리면 이야기도 거기서 끝나는 거니까 그건 더 이상 비극이 아닌게 되는 건가.
4. 황정은 얘기하면서는, 목소리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라디오 책다방'의 진행자이기도 하고, 그 전부터도 '문장의 소리' 등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목소리라서, 혹자는 귀신 목소리 같아서 별로라고 하고, 또 혹자는 목소리가 섹시하다고 한다. 나는... 후자 쪽이다.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가지들이 탁탁 차창에 부딪혔다. 따뜻하고 포근한 날이었다. 햇빛을 받는 쪽의 무릎이 따끈해져서 졸음이 쏟아졌다. 삼촌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햇빛과 버스의 진동 때문에 찰떡 안에 든 앙꼬처럼 머릿속이 바슬바슬해져서, m은 곧 그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문> 中 (p. 24.)
더 재미있는 것을 해. 내가 말했다.
재미있는 것?
그래, 재미있는 것.
재미있는 계획이라면 하나 가지고 있어. 기린이 김밥을 입에 넣고 말했다.
우는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싶어. 밥을 먹으면서 우는 레스토랑. 북미 쪽에는 그런 레스토랑이 벌써 생겼다고 하던데. 나도 그런 가게를 가지고 싶어. 손님들은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놓고 울기 위해서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거야. 밥을 먹으면서 울다니, 어색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상당히 서럽고 간단해. 밥을 먹으려면 입을 벌리잖아. 입을 벌리면 울 수 있어. 실은, 입을 벌리니까 울 수 있는 거야. 거기다 음식물 때문에 목이 꽉 막혀서 통곡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상태가 되는 거야. 손님은 먹으면서 울고, 더러운 것을 모두 테이블에 쏟아버린 뒤에, 깨끗해진 상태로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집으로 돌아가 열쇠구멍에 열쇠를 밀어넣으면서, 생각하는 거야. 괜찮아. 그것들은 모두 테이블에 버리고 왔으니까. 나는 지금 한결 나아졌으니까, 라고.
근사하다. 파씨가 말했다. 내가 첫번째 손님이 될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中 (pp. 86~87.)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였을 거야. 나는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는데, 해가 진 뒤였고, 오렌지를 손에 쥐고 있었어. 먹겠다는 생각도 없이 나는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어. 껍질이 두꺼운 오렌지라서 굉장히 손톱이 아팠지만, 끝까지 칼을 사용하지 않고 손톱으로 찢었어, 껍질을 벗기는 동안 엄청나게 땀이났어. 그렇게 땀을 흘려본 적은 없었어. 오렌지를 쪼개면서 나는 생각했어. 외삼촌과 같은 인간이 되어서 어두운 얼굴로 어두운 짓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정말 끔찍하게 싫다, 라고. 이모는 완전히 외삼촌의 탓만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오렌지를 씹으면서 나는 생각했어. 외삼촌은, 자기를 괴롭힌 사람의 다트를 응시하느라 자기 속의 다트를 보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외삼촌이 우리에게 한 일에 대한 몫은 완전히 외삼촌 한 사람만의, 자발적인 몫인 거야.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다트를 계속 지켜보자, 나는 생각했어.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내가 하려고만 하면 뭘 할 수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했어. 다트가 있고, 그걸 지켜보는 내가 있어. 잔혹한 방법으로 어딘가에 보복하고 싶어하는 내가 있고, 그것을 하지 않는 내가 있어. 외삼촌과 나는 바로 여기서 구별되는 거야. 나는 다트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게 바로 그것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이것은 상당히 안전하고 유리한 일이야. 자기 속에 그런 게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그런 걸 충분히 보려고 하지 않는 인간들은, 자기가 받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남에게 되풀이하는 거야.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괴롭혔고 아버지가 자기를 괴롭혔고 이제 자기가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식의, 어쩔 수가 없다는 식의 지저분한 연쇄를 되풀이하는 거야. 오렌지 한 알을 먹으면서 나는 그걸 생각했어. 덕분에 다트는 별탈 없이 여기 있어. 내가 다트를 보고 있으니까. 다트의 에너지는 전혀 사라지지 않아. 다트는 굉장해. 그것을 계속 들여자보는 나도 굉장해. 그런데 이것은 좀 쓸쓸한 일이야.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中 (pp. 89~90.)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잘못 생각했어 풉풉풉풉 뭘 풉풉풉 펌프 말야 풉풉풉풉 풉, 풉, 풉 팔이 풉풉풉 풉, 풉 떨어질 것 같아 풉풉풉풉 벌써 풉풉풉 조금만 더 기운내봐 풉, 풉, 풉풉 풉풉풉 풉풉풉풉풉풉 풉풉풉 자동차 엔진에 연결해서 쓰는 거 풉풉풉풉풉풉풉 그런 거 풉풉 살걸 풉풉풉풉 풉풉풉 바람 다 넣은 풀을 삼층까지 어떻게 옮기려고 풉풉풉풉 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 풉풉 그런가 풉풉풉풉 당연하지 풉풉풉풉풉풉 풉풉풉 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 풉풉, 풉, 풉, 풉, 풉, 풉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 하하 풉풉풉풉풉풉 왜 웃어 풉풉풉풉, 풉, 풉 힘없어서 풉풉풉풉 풉풉 교대할까? 풉풉풉풉풉풉풉 아직 괜찮아 풉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 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근데 이것은 뭐랄까 풉풉 풉풉 단순한 에어펌핑이 아니라 풉풉 풉풉 풉, 풉,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우리들한테 무언가 중요한 풉풉풉풉 에너지를 넣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풉풉풉풉 풉풉풉 배터리 충전 같은? 풉풉풉 풉, 풉, 풉풉풉풉풉풉풉풉 음 딱 맞는다고 할 순 없지만 풉풉풉 풉풉 풉풉풉풉 풉풉풉풉 그런 느낌 풉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 근데 이 소리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옆집에 들리지 않을까 풉풉풉 풉풉풉 풉풉풉풉 풉풉풉풉 들키면 곤란한데 풉풉풉풉 풉풉 뭐 풉풉 곤란하기까지 하냐 소심하기는 풉풉풉 풉풉 풉풉풉풉 이제 풉풉풉 기운이 풉풉 없어 풉풉 니가 좀 풉풉 해봐 풉풉 음 풉, 풉, 풉, 풉, 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 틀렸어 풉풉풉풉 뭐가 풉풉풉풉 이렇게 소리를 내다간 옆집에서 알아챌걸 풉풉풉풉 괜찮아 풉풉풉 틀림없이 풉풉풉 누가 들어도 비닐풀에 바람 넣는 소리잖아 풉풉풉풉풉풉 그런가 풉풉풉풉 경악할 거야 풉풉풉 그럴까 풉풉풉풉 자기들은 다음달에 수도요금을 분담하지 않겠다고 할지도 몰라 풉풉풉풉풉풉 으음 풉풉풉풉 상상도 풉풉 못 할걸 풉풉풉풉풉풉풉풉 계속 의심할지도 몰라 풉풉 풉풉 풉풉풉풉풉풉풉풉 저 집 거실엔 오늘 뭐가 있지 풉풉풉 하면서 풉풉 그럴까 풉풉풉풉 틀림없이 풉풉 풉풉 기다려 풉풉풉 거의 다 풉풉 됐어 풉풉, 풉, 풉, 풉, 풉, 풉. <무지개풀> 中 (pp. 101~102.)
전화를 끊고 K는 팬티를 주워들었다. 젖어서 돌돌 말린 것을 다시 입기가 쉽지 않았다. 누구야. 풀 곁으로 돌아가자 P가 물었다. K는 이모의 용건을 들려주었다. 그래. P가 곰곰 생각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수를 하고 자기도 모르게 화장했을 거야. 매일 반복하니까.
샤워할 때 자기도 모르게 꼭 같은 순서로 몸을 씻는 것처럼. 예를 들어 나는 겨드랑이를 세 번 문질러 닦은 다음에 가슴을 네 번 문지르고 옆구리를 한 번 훑어내린 뒤에 얼굴을 씻어. 별로 의식하며 씻는 게 아닌데도 매번 순서와 팔의 각도까지 똑같아. 그래놓고도 점심때쯤에는 내고 오늘 아침에 씻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니까. 아무튼 매일 똑같은 걸 하니까. <무지개풀> 中 (pp. 113~114.)
G는 이제까지 도시 외곽에서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었어. 워렛를 꼬박꼬박 지불했고 공과금도 밀린 적이 없었고 밤중에 설거지를 한다거나 세탁기를 돌린다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거나 하면서 이웃을 성가시게 하는 일도 없었고 담배꽁초나 음료수 깡통을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일도 없었고 출근시간에 늦어본 적도 없었고 일을 덜 해보겠다며 요령을 피운 적도 없었고 쉬는 시간엔 그저 숫자맞추기 퍼즐 같은 것을 하면서 보냈고 휴일엔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집 근처의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빅버거 세트나 두꺼운 핫도그를 두 개 사먹고 온다거나 하면서, 어디까지나 조용히, 혼자서 이것저것 해결하거나 놓아둔 채로 지내고 있었어. 약간 다르게 말해서 G는, "가슴 세 번, 목을 좌우로 두 번, 팔을 각각 네 번, 엉덩이를 다섯 번" 하는 식으로 씻는 순서를 몸으로 기억해두고 언제나 그 순선대로 씻어왔고, 한두 번은 조금 전에 씻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욕실에 들어가는 일은 있어도, 여전히 편하고 익숙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도 씻을 수 있도록 "가슴 세 번, 목을 좌우로 두 번, 팔을 각각 네 번, 엉덩이를 다섯 번" 하고 반복해왔던 거였어. 그런데 이제부터 상황은 좀 달라질 수밖에 없었어. 그야 뭐, 가이드북까지 딸린 생물이 붙어버렸으니까, 진짜로. <곡도와 살고 있다> 中 (pp. 167~168.)
보통, 보통, 보통. 저기, 무도씨, 보통이라면 무엇을 기준으로 보통이라는 거야. 나무늘보나 달팽이가 있잖아, 느리잖아, 하지만 걔네들의 입장에선 이 세계가 얼마나 빠른가, 생각하면 아득해지지 않아? 그러니까 걔네들의 입장에서도 보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일까, 그러니까 어느 정도라는 거야, 무도씨, 예를 들어 한 달에 공식적인 평균으로 98.1명이 테러로 죽는다는 어느 도시에서 지난 5월엔 98.0명이 죽었다면 그것은 보통, 이라는 걸까, 뭐가 보통이라는 걸까, 저기, 무도씨, 우리 아버지는 말이지, 안 되는 일은 얼른 포기해야 괴롭게 살지 않는다, 라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어느 날 내가 '이제 막 이십대가 됐을 뿐인데 벌써부터 그렇게 패배에 전 듯한 생각을 가져서 뭘 하겠느냐'고 쏘아붙였더니 아버지는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리고 머리를 이렇게 한 번 두 번 저었으니까, 분명히 때리고 싶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때리지는 않았거든, 무도씨, 그 사람처럼 살면서 어런저런 일을 겪은 뒤엔 젊은 자식에게 자기가 뼈저리게 아는 무언가에 대해 몇 마디 충고하려다 울분을 느끼고, 거기다 무도씨, 나이를 먹으면 발바닥 속의 쿠션이 닳아서 뒤꿈치가 아픈 겨웅가 보통이라는데, 결국은 사는 것이 그런 것, 그렇게 사는 것이라며 납득하는 것이 보통일까, 그러다 알고 보니 암이었다는 식으로 문득 세상에서 사라지고, 그런 경우가 보통이라는 걸까, 무도씨도 나도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진로를 택해서 열심히 일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으로 갈 때나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돈이 어디 있어, 라고 늘 반문하는 정도가 보통이라는 걸까, 무도씨 조카의 집에서 본 논술교재라는 것에 있잖아, 개미와 베짱이가 있잖아, 여우 선생님이 개미를 인터뷰 했다는데, 자 그럼 개미의 입장을 들어봅시다.
(중략)
이 대목에서 썰렁한 점은 하필 '인쇄가 잘못되'어서 같은 구문이 네 번이나 오토리버스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는 사이 베짱이는 열심히 노래와 춤을 연마해서 종장엔 월드스타가 되었다는 애기야, 그러면 객관적으로 토론해봅시다, 베짱이의 경우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라고 여우 선생님은 말했지만 선생님 도대체 보통의 경우는 무엇이고 보통이 아닌 경우는 또 무엇일까요, 거기다 선생님 객관이라니, 예전에 무도씨,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와서 함께 만두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데 안문숙씨가 예쁘게 나오길래 예쁘다고 말했더니 A라는 친구가 나를 돌아보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것이 예쁜 얼굴은 아니지"라고 말했을 때의 그 객관을 말하는 걸까, 선생님이 말하는 객관이란 '어느 정도'의 객관이라는 걸까, 사람들이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객관은 누구의 입장에서 객관이라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객관이 보통 정도의 개고나이라는 걸까, 무도씨, 무도씨는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있어? <오뚝이와 지빠귀> 中 (pp. 205~208.)
그날 밤 티파니의 방이 열린다. 오늘 피아노를 구입했다고 티파니가 말한다. 피아노는 뭐에 쓰려고 어차피 죽을 거면서. 티파니가 빈정댄다. 어차피 죽을 거니깐. 티파니가 대답한다. 투표가 시작된다. 당신은 살고 싶은가...... 두번째 답변이 올라오는 순간 접속은 끊어진다. 오는 피식 웃는다. 누군가는 반드시 예스라고 대답한다. 내심 나머지 회원들도 바라는 것은 아닌가. 자신 말고 누군가, 아직은 살고 싶다, 라고 말해주길. 그리하여 얼마간의 시간을 또다시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여유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마더> 中 (p. 223.)
모두
건강하시고
건강하시길. <작가의 말> 中 (p.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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