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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발견 (안도현, 한겨레출판, 2014.)

Dog君 2016. 3. 3. 11:07



1. 안도현은 시인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름 석자는 몰라도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는 싯구를 아니 본 사람은 없을게다.


2-1. 책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에는 눈이 잘 안 간다. 돈 주고 산 시집은 지금까지 딱 한 권인데, 아주 가끔 생각날 때마다 한 두 페이지씩 들추다보니 산지 10년이 넘었는데 여태 반이나 읽었나. 그러니까 나에게 시詩라는 것은 기껏해야 학교 다닐 적 교과서에서 보고 다른 글쪼가리에서도 좀 보는 정도.


2-2. 시는 잘 안 보지만 시인이 쓰는 글은, 읽기 전에 일단 (100점 만점에) 20점 정도 얹어주고 시작한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쓰기 전에 일단 대상을 다섯 시간씩 뜯어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진득함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3-1. 글 쓰는 사람이란 무릇 애정을 가지고 대상에 보고 읽고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물고 뜯어서 갈갈이 찢고 파헤쳐친 다음에야 그것을 속속들이 다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것이 마치 냉철하고 쿨한 지성인양 이야기된다.


3-2. 물론 안도현의 태도는 이런 비장함이나 냉소와는 거리가 있다. 아래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시를 읽고 나서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간장게장을 먹을 수 없었다는 독자들을 가끔 만난다. 미안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내 시에 걸려든 것! 나는 여전히 잘 먹는다. (pp. 34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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