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언던 사이언스 (현재환, 뜨인 돌, 2015.) 본문
1. 재환(무력)이가 책을 냈다. ‘언던 사이언스’. 나 같은 사이언스 문외한이 들으면 자칫 ‘엉덩 사이 빤쓰’로 기억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수행되지 않은 과학(undone science)’이라는 꽤 멋진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년 가을께에 나왔는데 원체 게으른 탓에 얼마 전에야 다 읽었다. 특별히 어려운 용어나 개념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고등학교 입학하고부터 매년 과학탐구를 한 과목씩, 물리-화학-생물 순서로 포기했던 나 같은 놈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네이버에서 ’패러다임(paradigm)’을 검색해보면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라고 나온다. 토마스 쿤이라는 사람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처음 쓴 개념이라고 하는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 개념이란다. 그 전까지는 ‘과학science’을 고정불변의 진리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토마스 쿤에 따르면 그게 객관적 진리나 진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합의된 것이라는 거지. 지동설보다는 천동설이 훨씬 오랫동안 과학적 진리였고, 열이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라는 점이 밝혀진 것도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 등을 예로 들면 좋을 것 같다.
3. 이런 식으로 자연과학을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담론(discourse)’으로 볼 수 있다면, 무력이 말마따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리의 방식은 많이 달라져야 한다. 소수의 음험한 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가려진 진실…이 아니라 해당하는 과학 체계/지식이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더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식.
4. 사학과에서 10년 넘게 얼쩡대다보니 어디서 뭔 소리를 들어도 다 역사학에 갖다 붙이게 되는데, 이 이야기가 꼭 그렇다. 역사학을 둘러싼 논전이 대부분 내가 맞니 니가 틀리니 뭐가 진실이니 아니니 소수의 음험한 세력들이 역사의 진실을 가리고 있니 어쩌니 하는 식으로 흘러가게 마련인데, 거기에 대면 딱 좋을 이야기라는 거지. 키스 젠킨스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서 했던 이야기도 이거랑 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을 이야기할 때도, 상대 진영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가를 논의의 중심에 놓으면 뭔가 놓쳐도 한참 놓치는 결과가 될 것 같다(물론 왜곡하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때부터 역사를 둘러싼 권력관계라든지 그것에 녹아있는 권력의 의도 같은 것들은 핫바지 방구 새듯이 부스스 사라지고 이야기는 다시 끝없는 자료 제시와 실증의 개미지옥으로...;;; 아, 앙대...
5. 그러니까 예컨대 우리가 냉전적 역사관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적 역사관이 거짓말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만큼 냉전적 사고를 극복했다는 반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역사학이라는게 사회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고고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역관계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담론투쟁의 현장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되겠다 이 말이다.
6. 굳이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지난 10여년간 추진된 무슨무슨 프로젝트들 덕분에 이미 학계는 전반적으로 현실권력에 종속되어 버린 측면이 있다. 물론 그게 연구자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많이 덜어준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국가권력이 학문 아젠다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연구자들의 활동반경을 제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잖냐. 이런 상황에서 ‘순수한 학문으로서의 역사학’ vs ‘음험한 욕망에 불타는 정치권력’이라는 식으로만 순진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
7. 그러니까 결론은 투표 잘 하는게 제일 중요하다는… 삼천포로 빠지는 결론이다;;; 아, 근데 내가 이런 결론을 내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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