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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탄생 (찰스 암스트롱, 서해문집, 2006.) 한번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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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탄생 (찰스 암스트롱, 서해문집, 2006.) 한번더

Dog君 2016. 3. 4. 10:30



1-1. 라디오나 책이나 신문이나 테레비에서 심리학자 내지는 심리상담 전문의가 하는 상담을 들어보면 어릴 때의 체험이라거나 가정환경 같은 것 이야기를 꼭 넣는다. 그 분들한테는 학문적 단군할아버지쯤 된다고 하는 (아니면 어떡하지;;;) 프로이드가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우리는 거세공포니 구강기니 항문기니 하는 것들을 겪었노라고 말했던 것도 아마 그런 거랑 비슷한 것이지 싶다. 그런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지금의 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은 일단 설득력이 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던 석가모니가 아닌 다음에야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1-2. 어디 사람 크는 것만 그렇겠나, 역사도 비슷하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교과서에는 늘상 뭐 전쟁이니 혁명이니 하는 큼지막한 사건들만 나온 탓에 역사가 갑툭튀의 총집합 비스무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은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이 끓는 건 한 순간의 사건이지만 그 물이 끓기 위해서는 0도에서 100도까지 계속 불을 때는, 눈에 안 보이는 중간과정이 있잖아.


2. 1945년 한반도 북부에 등장한 사회주의 정권은, 그 자체만으로는 확실히 갑툭튀 맞는 것 같다. 자본주의가 영글다 못해 석류 껍데기 찢어지듯이 제 힘을 못 견디고 터져나오는 게 공산주의/사회주의라고 했는데 식민지 조선에서 잘 익은 자본주의는 아나콩콩이고, 거기에 한 숟갈 더 해서 한반도 북부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의 기독교 천국이었다. 이런 데서 사회주의가 나오다니, 이건 마치 뭐랄까 롯데리아에서 여름 메뉴로 평양냉면이 출시된 것 같은 상황이랄까.



3. (이름만 들어서는 뉴올리언스 뒷골목 재즈바에서 색소폰을 불 것 같지만 실제 고향은 대구라고 하는) 찰스 암스트롱은 '북조선 탄생'이라는 책에서 북한의 사회주의가 갑툭튀가 아니라 조선시대-일제식민지라는 구강기/항문기를 거친 결과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북한의 토지개혁에는 ‘항일유격대의 소비에트 운영경험’과 ‘적색농조운동’과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토지개혁 열망’과 ‘실학자들의 토지개혁 논의’ 등등의 복잡한 결과물이라는 식이다. 이것말고도 북한의 유일지도체제라든지 가부장적 질서 등등도 다 이렇게 설명한다. (그 내용들을 내 나름대로 구구절절 정리해봤지만… 다 필요 없고, 그에 관해서는 지상현님의 페북글이 훨씬 더 잘 정리하였으니 차라리 그 글을 읽도록 하시라.) 옛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지만 콩이라고 다 같은 콩이고 팥이라고 다 같은 팥일리가 없다. 물을 얼마나 대고 땅이 얼마나 기름지냐에 따라서 소출이 달라지는 것이고 콩알 팥알 모양도 제각기 달라지는 법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밖에서 가져온 ‘사회주의’라는 종자보다 ‘(지리적 의미의) 북조선’이라는 밭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날도 있잖아?


4. 이런 이야기가 내 귀에는, “니 임마, 느그 밭이 임마, 을매나 독특한 밭인지 잘 모르네 임마”하는 식으로 들려서, 일단 재미있다. (무식함을 무릅쓰고 좀 과감히 말해보자면) 한동안 한국역사학의 과제는 한국의 역사도 다른 나라 역사에 비겨서 딱히 빠지는 것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면서 지평을 확장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비슷한 고민이 담긴 책으로, 로버트 영의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도 세계 각지의 ‘밭’에 주목하고 있다.) 아니 지금 나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생각만 자꾸 하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학위논문 준비를 좀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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