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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사람 별난 인생 (김주완, 피플파워, 20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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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사람 별난 인생 (김주완, 피플파워, 2016.)

Dog君 2016. 9. 2. 19:37


1. 내 인생의 책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도 김규항의 'B급 좌파'를 꼽을 것 같은데, 그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다." 'B급 좌파'가 나오고 얼추 20년 조금 못 되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우리는 거기서 더 나아가기는커녕 끝도 없이 뒤로 밀려가는 것 같다. 채용면접시험장에서 정치적 입장을 물어보는 면접관과, 최소한의 직업윤리도 지키지 않고도 뻔뻔하게 고위직에서 버티며 부끄러운 낯빛조차 내비치지 않는 사람들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니까. 좌파고 우파고 나발이고 이제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일'조차 버거워진 것 같다.


2. 전에 읽었던 '대한민국 악인열전'의 반대편에 놓일 것 같은 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썩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니다. 자기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것을 '별난' 것이라고 해버리면, 자기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일이 마치 뭔가 대단한 결심이나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을 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들을 한참 늘어놓고 '이런 어르신들을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 삼아서 말이야...'로 시작하는 훈장질 텍스트로 읽으면 안 될 것 같다. 뭔가 거창한 지혜와 식견을 내세우고 싶었다면 채현국 선생이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라'는 식의 말을 할리도 없고 김장하 선생이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지도 않았겠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결심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존중하고 본받아야 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살고 싶은대로 자기 원칙 지키면서도 이 세상을 너끈히 살아낼 수 있다는 증거물로 읽어야지 않을까.


4. 재판을 낼 때는 '별난'이라는 관형사를 다른 표현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잘하려는 마음이 자꾸 들지 않습니까? 공부 잘할란다. 아버지한테 잘할란다. 엄마한테 잘할란다. 친구한테 잘할란다.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지.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잘하려고 그러면 꼭 거꾸로 됩니다. 낙담하게 되고, 부끄러워지고 창피해집니다. 그리고 열심히도 그렇습니다. 신나게 하면 되는 거지 열심히는 뭐 어떻게 하는 게 열심입니까? 아무리해도 끝도 없는 게 열심인데. 신나면 됩니다. 정말 우리 여태전 교장 좀 열심히 합니다.(청중 웃음) 자꾸 열심히만 하는 거야.(청중 크게 웃음) 신나게 안 하고... 좋습니다, 물론. 그러나 신나게, 재미있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노인이라고 봐주지 마라" 팔순 채현국의 일침> 中, p. 28.)


  이처럼 할머니는 신문을 보다가 좋은 글이나 좋은 사람, 좋은 책을 발견하면 주소를 수소문하여 편지를 보낸다. 언제부터 이 작업을 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적어도 10년은 더 됐다고 한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10여 통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하니 연간 수백 통, 지금까지 할머니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적게 잡아도 1000명은 넘을 것이다.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요? 편지라도 써서 좋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면 보람이지요. 진짜 보석 같은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는 것 같아. 특히 시골에 그런 보석이 많이 살아요." (<89세 할머니가 매년 수백 통의 편지를 쓰는 까닭> 中, p. 63.)


  문형배 판사도 그에게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마친 많은 인재 중 한 명이다. 그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김장하 선생을 찾아뵙고 다음과 같이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랬더니 선생의 말은 이랬다고 한다.

  "내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오늘의 자네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자네를 도운 게 있다면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 문형배 판사 블로그

  이처럼 김장하 선생은 누구를 '도왔다'고 하지 않는다. '돌려줬다'고 말한다. 다음은 재물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 뉴스사천 보도 (<"돈은 모아두면 똥이 된다" 김장하 선생의 지론> 中, pp. 113~114.)


  "(대의원대회) 회의가 끝나자 일제히 송도횟집으로 모셔져 진탕 먹고 간부라는 사람들은 어디서 데려왔는지 색시들과 쌍쌍이 춤판이 벌어지고...... 물론 현장에선 조합원들이 죽음을 넘나들며 작업할 시간이었죠. 돌아오는 길에 차비나 하라며 봉투를 건네주더군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집에 와서 보니 10만 원이 들어 있었ㅅㅂ니다. 기본급 13만 6100원이던 86년도에."

  그때 김진숙이 이 돈을 그냥 받아 챙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5년 후 85호 크레인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 테고, '희망버스'라는 한국 사회운동의 새로운 역사도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10만 원의 봉투를 쥔 김진숙은 고민했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자기들 하는 대로 박수 치면 따라서 치고, 손 들라면 손이나 들어주고 그러면 최소한 이런 건 보장되겠구나하는 갈등이 없진 않았습니다. 아니 좀더 솔직해져야겠군요. 밤새 천장에 새파란 종이돈이 왔다 갔다 하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김진숙은 다음날 그 돈을 돌려주고 말았다. 이 일로 '어용노조'와 회사에서 찍혔고, 곧이어 해고된다. 김진숙이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저를 대의원으로 뽑아 준 아저씨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후략) (<평범한 행복조차 사치라는 우리 시대 별난 누나 김진숙> 中, pp. 138~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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