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필사의 기초 (조경국, 유유, 2016.) 본문
1. '필사筆寫'라는 것을, 대학 들어오고 나서 한참 있다가 알았다. 그나마도 경건한 신앙인들이 조금씩 성경을 베껴쓰는 것이 있다는 것만 건너들은 정도였다. 아, 그래 신앙인이라면 성경 정도 베껴 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니 1분에 수백 타 정도는 누구나 거뜬히 치는 요즘 세상에 손으로 꾹꾹 눌러서 책을 베껴 쓰는 일이라니, 무슨 중세 필경사들이 좀비처럼 관뚜껑 열고 돌아오는 시추에이션이 작금에 재현되리라는 상상을 어떻게 했겠냐고.
2. 역시 나는 촌놈이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필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종이 위를 지나가는 펜의 사각거리는 느낌을 즐긴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필사를 통해 좋은 문장을 자기 글로 옮긴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악필이고 앞으로 한동안 (책 읽다가 여백에 간단하게 메모를 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필사를 할 일도 없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필사의 느낌이 뭔지 아주 약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3. 필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의 오래된 취미와 비슷하다. 온전히 나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고, 어떤 실을 꺼내어 쓸지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즐거우며, 하루에 조금씩 시간을 내어 칸을 채워가는 보람이 있고, 빳빳한 아이다에 실을 하나씩 놓을 때도 비슷한 사각거림이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오는 '필사'라는 단어는 '십자수'로 바꿔 써도 의미가 꽤 통한다는 말씀. ㅋㅋㅋ
4.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 편집도 엄청 마음에 든다. 줄바꿈이 글자 단위가 아니라 어절 단위로 되어 있어서 줄바꿈에 따라 단어가 잘리는 일이 없다. 한글 워드에서 좌측 정렬을 한 걸로 생각하면 되는데, 이런 줄바꿈은 처음 봤다. (그래서 아래에 옮겨 적은 본문도 원래의 줄바꿈을 그대로 따랐다.) 나처럼 집중력 바닥인 놈이 책 읽다가 '탕/수육' 요런 식으로 줄이 바뀌는 부분을 만나면 가끔 '탕'과 '수육'으로 읽혀서 난감할 때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탕수육'으로 써주니 올매나 좋노. 유유출판사, 이름만 좋은 줄 알았더니 줄바꿈마저 마음에 드는 출판사다.
원고를 마감하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필사의 재미를 제대로 알려 줄 수 있는 책이 분명
있을 텐데, 내가 쓰고 있는 펜과 문구가 많이 부족한 것
아닌가, 글씨 내놓기 부끄럽다…… 수많은 고민에
휩싸였거든요. 필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고민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떤 펜과 공책을 쓰든 필사하는 시간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지식이
늘고 제대로 하겠다 마음먹는 순간 재미는 반감되기
시작합니다. 욕심이 생기면 자연스레 무리하게 되고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기 힘듭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하길
바란다면 처음부터 욕심내면 안 됩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낙서하듯 필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도록
꾸준히 필사의 재미를 누리길 바랍니다. (pp. 10~11.)
필사의 매력 중 첫 번째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필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것에서 독립할 수 있습니다. 따져 보면
혼자 무엇인가 하는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서 극히
일부입니다. 회사, 가족, 친구……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엮인 관계에 신경 쓰다 보면 정작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더라도 안절부절 불안해하거나 무얼 할지 모르고 시간만
보내기 십상입니다. 그럴 때 필사는 좋은 동무가 됩니다.
격식이나 예법을 달갑게 여기지 않지만, 필사를 할 때는
준비하는 시간조차 즐겁습니다. 정돈한 책상 앞에 가만히
홀로 앉아 책과 필통과 공책을 꺼내고 어떤 펜을 쓸까 고르는
순간의 즐거움은 소소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후략) (pp. 23~24.)
다산 정약용은 독서의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두루 읽는 박학博學, 자세히 묻는 심문審問,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愼思, 명백하게 분별하는 명변明辯,
읽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독행篤行입니다. 선비들이
박학에만 빠져 다른 것은 가벼이 여긴다고 탄식했죠. 두루
읽는 것도 좋지만 심문, 신사, 명변, 독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독서를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막막합니다. (p. 37.)
필사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는 따로 없습니다. 이건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고요한 밤, 자세를
곧추세우고 정돈된 책상 앞에 앉아 필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경험에 비춰 보면 누군가를 기다릴 때나
여행의 자투리 시간에 책을 펴고 필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여유가 있는 휴일이거나 마음먹고
필사하겠다고 책상에 앉으면 딴 곳에 정신이 팔렸죠. 워낙
성정이 가볍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필사할 시간이 넉넉하게 생긴다면 길 위에 있는 편이
낫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필사에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를 굳이 꼽는다면 더운
나라로 여행을 떠나 한낮 더위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는 틈이 가장 완벽한 시간인
듯하군요. 두 번째로는 역시 손님 한 명 없는 적막한
책방에서 책을 펴 놓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평일 오후를
꼽겠습니다. 세 번째는 저의 바람인데, 따뜻한 봄, 가까이 있는
다솔사 소나무 숲 나무 그늘에 앉아 작은 수첩을 펴고
필사하면 좋겠습니다. (다솔사는 김동리가 「등신불」을
집필했던 곳으로 경남 사천시 곤양면에 있습니다.) (pp. 47~48.)
사형을 언도받고 차가운 육군 교도소 감방 바닥에 엎드려
유서처럼 써 내려간 신영복 선생의 「청구회 추억」을 읽는 동안
마음이 계속 아릿했습니다.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로
된 휴지에, 항소 이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빌린 볼펜”으로 쓴
「청구회 추억」은 신영복 선생이 1966년 봄 서오릉에 한나절
답청 갔다 만난 아이들과의 인연을 담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글이 이리 담담할 수 있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기에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기록이라기보다는 회상이었다. 글을
적고 있는 동안만은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오게 되는 구원의 시간이었다”라고
선생은 말합니다. ‘글 쓰는 행위의 가치’를 간증하는 데 이보다
절절한 문장을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청구회
추억」은 같은 이름의 책이 나와 있지만, 꼭 『신영복의 엽서』를
구해 읽길 권합니다. 당시 재생종이 위에 썼던 글을 그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감옥에서 몰래 썼던 「청구회 추억」이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선생의 회상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나는 ‘청구회 추억’ 외에도 여러 가지 메모를 휴지에 남겼다.
이것은 교도소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어서 공책처럼 묶어
몰래 감추어 두고 있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결국
무기징역으로 형이 확정되고 민간교도소로의 이송을
기다리고 있던 1971년 9월 어느 날, 갑자기 이송 통보를
받았다. 경황없는 이송 준비 중에도 그 휴지묶음이
걱정이었다. 소지품 검사 과정에서 압수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황급하게 가까이 있는 근무 헌병에게
그 휴지묶음을 부탁했다. 재판정에서 우리들의 법정진술을
지켜보았던 근무 헌병들이 대체로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전달해 주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당신이 가져도
좋다는 말을 덧붙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둡고 긴
무기징역의 터널로 걸어 들어갔다. 휴지 묶음과 청구회는
망각되었다. 옥중서간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은
내가 출소하기 전에 만들어졌고 ‘청구회 추억’이 그 책에
실리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출소 이듬해 이사할 때였다.
아버님의 방에서 놀랍게도 그 휴지묶음이 발견되었다. 어느
청년이 전해 주었다는 말씀이었다. (pp. 100~101.)
임종국 선생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일제 강점기
친일파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했던
이승만, '멸사봉공' 혈서를 쓰고 만주국 육군 군관학교에
들아가 일본군 장교가 되었던, 그리고 대통령이 되자
한일협정에 목을 맸던 박정희 정권을 거치는 동안
친일부역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과오를 지우려 했습니다.
1966년 발간된 『친일문학론』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임종국 선생은 자신의 아버지 임문호의 친일 행적을
발견합니다. 깊은 고민에 빠진 그는 아버지를 찾아가
묻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이름을 뺄까요. 그럼 공정하지 않은데.”
아버지는 이렇게 답합니다.
“내 이름도 넣어라.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만든 이 책은 학계에서도
대중에게도 철저하게 외면당합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임종국 선생은 천안으로 이사 가 농사를 짓습니다.
하지만 친일파 연구를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여동생에게
돈을 빌려 서울에 자취방을 얻어 놓고 6개월 동안
총독부 관보와 『매일신보』 등 자료를 필사합니다.
그때 나이 쉰여섯, 결국 병을 얻고 맙니다. 한번 얻은
병은 쉽게 물러날 줄 몰랐죠. 그때까지 필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1만 2천 장의 친일인명카드를 작성합니다.
이 친일인명카드는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20년이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의
바탕이 됩니다.
임종국 선생이 펜으로 정서한 ‘친일인명카드’와 노트들은
‘필사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투철한 역사의식과 강건한
의지가 바탕이 된 필사는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합니다. 임종국 선생이 이룬 일이 그 증거입니다.
선생이 남긴 글입니다.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 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15년 걸려서 모은
내 침략.배족사의 자료들이 그런 일에 작은 보탬을
해 줄 것이다. 그것들은 59세인 나로서 두 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할 뿐이다. (pp. 1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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