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보수적 기원 (임송자, 선인, 2007.) 본문
0. 제목은 명백하게 배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의 패러디이지만, 실제 내용은 그것과 별 상관이 없다. (이렇게 패러디하기 좋은 제목 짓는 것도 재주여, 재주.)
1. 박사학위논문을 저본으로 삼아서 만든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다루는 범위도 좁게 마련이고, 글의 밀도도 치밀하다. 학계의 언어로 쓰여지다보니 말랑말랑하게 잘 읽히는 문장도 아니다. 나도 나름 현대사 전공이고, 책을 적게 읽은 편이 아니라고 자부하지만, 읽어내기가 만만찮다. 사실 올초에 한 번 도전했다가 100쪽을 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했었다.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다시 도전할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올 여름에 어디 토론문 쓰느라 다시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련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 말아야지 했는데,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다 읽고 보니 지금 내 연구에도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2. 해방 이후 남한의 역사를, "멸균실 수준의 반공주의"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때,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무너지고 그 빈 자리를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이 채우며 노동운동이 보수화되어 가는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해방전후의 노동운동사에 대한 연구는 해방전후사 연구 초창기부터 중요한 주제였다. 전평의 몰락/탄압 과정은 워낙에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방대하게 쌓여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연구가 나올 여지가 안 보이고, 대한노총 발달 과정 역시 이 책 한 방으로 거의 정리되었다. 이 책의 연구사적 의의가 그마만큼 크다 이거지.
3. 나온지 10년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 딱히 노동운동사 전공자도 아닌 내가, 치밀하게 논지를 쌓아올린 이 책에 대해 따로 덧붙일 말이 있을리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글을 끝내버리면 좀 서운하지. 재미있었던 부분이라면 대한노총 내부에서도 다양한 모색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한 점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이 시기의 노동운동을 그냥 보수 일변화라고만 하면 도식적이고 재미도 없는 글로 머물렀겠지만, 자유당의 하부단체 수준으로 전락한 대한노총 내부에서도 끓어오르는 노동자들의 투쟁열기라는 것이 있었고, 그에 부응한 일련의 움직임들(예컨대 김말룡 같은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곧 변혁적 노동운동과 연결시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보수 이데올로기 일색의 노동운동의 저류에 그러한 노동투쟁의 열기와 경험들이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좀 더 욕심을 내서 해석한다면, 이 내용은 남화숙의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나 6~80년대 노동운동사와도 일정 정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4. 하나 더 (순전히 내 입장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경성전기노동조합의 정대천과 이상진이라는 인물. 위에서 이 책을 의무로 읽다가 재미로 읽게 되었다고 썼는데, 그 변곡점이 정대천과 이상진이었다. 올 가을 발표를 위해서 전력 3사 통합 과정을 조금씩 살펴 보는 중인데, 여기서 하나 해결되지 않은 의문 중 하나가 (3사 통합을 추진하는 힘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강해졌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3사 통합을 막는 힘이 무엇이고 그것이 약해진 시점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더라는 것. 그런 점에서 경성전기노동조합의 주도자로 대한노총의 주도자이기도 했던 정대천과 이상진이 눈에 들어온다. 자유당은 정대천과 이상진을 통해 노동조합을 장악했고, 정대천과 이상진은 그 반대급부로 3사 통합 저지를 얻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실제로 정대천이 대한노총에서 힘을 상실하는 1958년을 즈음해서 3사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과 1년여만에 정대천은 다시 자유당에 완전 투항하기 때문에, 그건 정말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이건 뭐 그냥 한 번 추측해보는 정도니까 구체적인 추적은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하고, 이 책에 대한 인상도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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