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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이승원, 휴머니스트, 20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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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이승원, 휴머니스트, 2009.)

Dog君 2016. 10. 1. 16:17


1. 처음으로 바깥 세계를 여행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겪은 일화들은, 이런저런 책이나 다큐멘터리, TV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 일화들 말고 좀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당대의 지식인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당대 조선의 위치를 가늠하고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다는 사실 역시 아주 딱히 새롭다고는 말 못한다. ‘서구중심주의’니 ‘사회진화론’이니 하는 키워드로 정리한 그런 이야기들, 아이고 뭘 또 여기서 더 쓰겠나.


2. 나에게 더 재미있는 것은 그것 말고 다른 이야기들이다. 처음으로 바깥 세상을 경험한 김기수의 반응, 그리고 당대의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서구의 물질문명에 압도되어 정신 못차리고 어버버-하는 와중에도 그것의 이면을 비교적 정확히 꿰뚫어본 나혜석의 이야기. 요 두 가지는 다른 책에서도 못 본 것들 아이냐. (물론 나혜석 역시 간과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뭐… 이 책에서도 그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하는건 아니라서 나도 여기서 어떻게 더 나가야 할지는 모르겠으니, 여기서는 그냥 메모만 해두기로.


  증기기관은 기차와 증기선의 심장이었다. 기차와 증기선은 근대의 상징이자 더욱 쉽게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게 만들었던 교통수단이다. 만약 이 두 기계가 추현하지 않았다면 ‘세계화’란 말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기차와 증기선의 발명 이전에도 세계여행은 존재했다. 또한 그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되었다.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지속되어온 여행의 목적은 왕명을 집행하기 위한 공적인 목적의 이행, 상인들의 대상행렬, 성지순례, 치료를 위한 여행, 그리고 여행 그 자체를 위한 여행 등이다. 그렇지만 유럽중심주의적인 개념인 ‘지리상의 발견’ 이후의 여행은 단순한 대상행렬이나 성지순례 등과는 그 목적이 확연하게 달랐다. 이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증기선과 기차가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면서 근대적 여행, 즉 ‘관광’도 마찬가지다. (p. 31.)


  일찍이 공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괴이한 물건인 증기기관. 그래서 김기수는 증기기관을 보고 싶지 않았다. 증기기관을 바라보는 김기수의 시선은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증기기관을 보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시선이 갔다. 그는 ‘기기음교’와 ‘이용후생’ 사이에서 갈등하기에 이른다. 김기수가 판단하기에 증기기관은 분명 눈을 현혹하는 음란한 기술임에 틀림없었다. 근대 전환기의 위정척사파들이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척했던 것도 서양의 과학기술이 ‘기기음교’에 불과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략)

  증기기관만이 아니었다. “천둥 번개처럼 달리고 비바람처럼 날뛰”면서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사라지는 기차, “천 리 만 리를 헤아릴 것도 없이” “번쩍번쩍하고 빛이 나면서 바로 선을 타고 올라” 가는 전신 역시 김기수에게는 기기음교의 극치였다. 기기음교는 곧 서구 문명의 산물이었다. 머릿속에서는 기기음교를 몰아내야 한다고 하지만, 몸과 마음은 자꾸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김기수는 “저들이 기기음교를 사용하면 우리는 근신수졸하여, 다만 저들과 함께 육경의 일월과 삼황의 의상에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서구 문명에 대한 인식을 주자학적 인식틀로 봉합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이질감을 극복하는 김기수식의 타협안이기도 했던 것이다. (pp. 58~60.)


  구경거리가 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린 김득련이 이 난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을 모방’하는 방법이다. 서구식 테이블 매너를 알지 못해 벌어진 난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김득련은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모방’한다.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타인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이런 김득련의 행동은 어떤 면에서 조선의 근대화 과정과 닮았다. ‘타인의 모방’을 통해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려다 더욱 큰 시련에 봉착한 김득련의 모습은 서구를 모방하려다 더욱더 큰 수렁에 빠졌던 조선의 시대 상황과 유사하다. (p. 145.)


  영국을 여행한 조선인들은 영국의 대학교육이 신사를 육성하는 교양과 인격 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 대학교육의 중추인 ‘신사학’에 대한 조선인의 관심은 어느 면에서는 영국이 ‘젠틀맨’의 나라라는 이미지 속에서 길들여진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영국의 신사도, 일본의 무사도, 조선의 화랑도는 국민의 정신을 통합하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이용되었다.

  영국의 신사도를 비롯하여 유럽의 종교가 국민의 도덕관념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하나의 체계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니토베 이나조는 일본정신의 중핵으로 ‘무사도’를 선택하였다. 그가 ≪무사도≫(1900)라는 책을 영어로 출판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에는 기사도에서 발전된 신사도가 있고, 일본에는 무사도가 있었으며, 조선에는 화랑도가 있었다. 국민정신을 통합하는 기제와 그 국가를 대표하는 ‘정신체계’를 발견해내는 것은 근대 국가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p. 205.)


  최남선이 근대식 공원을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갈망했다면, 나혜석은 “공원은 전부 돈덩어리”라고 비판했다. 박승철이 영국의 부강함에 넋을 놓고 있을 때, 나혜석은 영국의 넉넉한 살림이 식민지에서 착취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들이 영국을, 제국주의 문명국가를 보고 느낀 생각의 낙차는 ‘지금-여기’에서도 지속되는 일이 아닐지. (p. 218.)


  ‘하일, 히틀러’를 부르며 손을 쭉 뻗는 독일 국민을 보고 손기정은 “실로 장관이었다.”고 말한다. 히틀러에 대한 충량한 ‘신민’으로 자라나고 있는 독일은 손기정에게는 이상적인 사회였다. 나혜석이 독일 사람들이 신호등과 교통순경의 신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약간 조롱하는 말투로 “모든 것이 과학 냄새가 난다.”고 했던 것과 손기정의 표현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p.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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