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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2부

Dog君 2018. 12. 26. 11:17

  지난 편에서 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신채호의 창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하나의 의문이 남아있다고 덧붙였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의 창작자로 신채호가 지목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지난 편에 따르면 신채호는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그간 한국의 언론과 저술에서 어떤 식으로 쓰여 왔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해보시면 알겠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의 용례는 굉장히 많고, 또한 굉장히 오래 전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출처를 신채호로 명시하지 않았을 뿐이죠. (이 문장의 출처를 신채호로 명시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는 차후에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이 많은 용례를 찾아낸 저의 미친 검색능력을 일단 칭찬해주시구요... 용례가 워낙 많아서 90년대 이후에 사용된 것으로 한정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좀 더 정확히는 제 논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ㅋㅋㅋ) 이들 용례를 저 나름대로 분류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용례들 


뿌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동아일보사, 411쪽. 


역사를 잊은 사람들에게 역사는 언제나 복수한다 

『공간』 421, 공간사, 2002, 31쪽 


과거에 대한 분노도 수치심도 잃어버린 민족에게 과연 미래는 있는 것일까 

『신문과 방송』, 한국신문연구소, 2005, 182쪽.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한명숙 국무총리의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연설, 2006년 11월 17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합니다. (...) 이번에 발간되는 ‘독립기념관 20년사’는 우리 민족의 비전과 미래상을 정립하고... 

『한덕수 국무총리 연설문집 2007.4.3.-2008.2.28』, 국무총리비서실, 2008, 186쪽.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김광진 의원의 발언, 『국회보』 549, 대한민국국회사무처, 2012, 78쪽.


  첫 번째 용례에서는 사실 특별한 정치적 지향 같은 것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을 더 살펴봐야겠습니다만, 일단 역사의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도의 평이한 의미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 용례부터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정치적 지향이 뚜렷이 묻어납니다.






두 번째 용례들 


학살을 잊은 민족은 다시 독재를 맞게 될 것입니다 

『사회평론 길』, 사회평론, 1994, 36쪽.

(53~56호 중 하나인데 권호가 확실치 않네요.) 


역사에서의 과거를 잊은 민족은 또다시 쓰라린 역사의 체험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자료총서』 1, 광주광역시5.18사료편찬위원회, 1997, 404쪽. 

김삼웅 편, 『서울의 봄 민주선언』, 한국학술정보, 2001, 73쪽. 

(원래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표된 성명서에 포함된 것입니다. 따라서 수록된 지면이 다를 뿐 원래 출처는 같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자는 그릇된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최덕성,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본문과현장사이, 2000, 5쪽. 


역사를 잊은 이에게 역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고종석, 『히스토리아』, 2003. 


역사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반드시 보복해 왔다 

손석춘, 『과격하고 서툰 사랑고백』, 후마니타스, 2006, 87쪽.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영권, 『제주4.3을 묻습니다』, 신서원, 2007, 147쪽. 


  두 번째 용례는, 저자의 이름과 내용 등으로 볼 때,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그로부터 교훈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사회를 진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한국 근현대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감안하면,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여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는 동력을 끌어내자는 주장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표현은 맞닿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의 의미로 이 문장을 인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번째 용례들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는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긍정과 발전의 역사관이야말로 우리를 희망찬 미래로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2008년 7월 11일. 


역사를 잊은 민족은 발전할 수 없다 

한승수 국무총리의 국사편찬위원회 건국기념역사관 개관식 축사, 2008년 12월 11일. 


  세 번째 용례는 발전주의적인 지향을 명백히 드러냅니다. 한국현대사를 개발과 성장의 역사로 정의하고, 이러한 역사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죠.






  첫 번째 용례를 논외로 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용례의 정치적 지향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즉, 정치적으로 완전히 상반된 두 입장이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같은 문장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쪽이 더 정확한 인용인지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지난 편에서 결론내린 것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은 그저 흔하디 흔한 ‘속담’이기 때문입니다. ‘속담’이란 원래부터 맥락과 필요에 따라서 여러 의미를 가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표현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과거에 대한 이해’와 ‘더 나은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흔하고 보편적인 표현이라는 거죠. 






  사실 ‘과거에 대한 이해 -> 더 나은 미래’의 구조를 가진 표현은 정말 너무너무 많습니다. 1990년대 이전의 기록에서 찾은 것을 몇 가지만 거론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민족이 이충무공을 잊어버리는 날에는 조선민족은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충무공의 향기높은 민족혼을 잊는 날 우리민족은 영원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여수 순천에 일어난 반란군의 사건은 군인이면서 이순신장군을 모르기 때문에 일으켜놓은 불작난이다 

박종화, 「남행록 4」, 『동아일보』 1948년 11월 19일자. 


역사에서의 과거를 잊은 민족은 또다시 쓰라린 역사의 체험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연두기자회견문, 1980년 1월 25일. 


역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비극이 있을 뿐이다. 역사의 교훈을 잊은 사람에게는 장래가 보장될 수 없는 법이다. 

「10.26 1주년의 교훈」, 『경향신문』 1980년 10월 25일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약간 표현만 다를 뿐 이미 1940년대부터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두예杜預(223~284)가 쓴 서序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若夫制作之文 所以彰往考來

(聖人께서 지으신 文辭로 말하면 이미 지난 일을 드러내 밝히고 앞으로의 일을 考察하여 후인들로 하여금 지난 일을 거울삼도록 한 것이다) 


  두예는 진晉나라(265~316) 때의 사람이니, 이 문장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800년 정도 전에 쓰여진 셈입니다. (번역은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에서 운영하는 동양고전종합DB의 것을 인용했습니다.) 구체적인 표현이 꽤 다르고 어감도 좀 차이가 있지만, 지난 과거를 통해서 앞으로의 교훈을 삼자는 점에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와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허허 참... 처음에는 신채호가 한 말일까 아닐까 정도의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새 『춘추좌씨전』까지 왔습니다. 기껏해야 1900년대 언저리에서 놀다가 갑자기 1,800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갈 줄이야... 당황 당황 또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자는 관점,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연장선 위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관점은 사실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을 조금 어려운 표현으로 ‘감계주의感係主義’라고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접근하는 흔한 자세 중 하나입니다. (역사학이 애초 통치술의 일환으로 이해되었다고 한 설혜심 선생님의 글도 함께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잡설이 한참 길어졌는데요, 이번 편에서 도달한 결론도 지난 편과 비슷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쓰여지던 말이고, 그 의미도 특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출처가 신채호로 특별히 지목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구요. 그러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출처도, 의미도,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부유하는 문장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의 용례를 찾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의 출처로 신채호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거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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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1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3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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