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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3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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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3부

Dog君 2018. 12. 31. 17:06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


  지난 2015년 1월 31일, 독일의 제6대 대통령을 지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에 적극적으로 과거사 반성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 때문에 바이츠제커는 독일의 역사인식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1985년 2차대전 종전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그의 그러한 역사인식이 잘 드러났다고 알려져 있죠. 제가 찾은 것 중에서 그의 연설내용을 담은 국내의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새삼 독일패전 40주년이 되던 날,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남겼던 웅변을 잊어버릴 수 없다. 그는 “과거에 눈을 감는 것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되는 것이다. 비인간성을 기억에서 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그 비인간성의 잘못을 되풀이할 위험을 지닌 사람이다”고 갈파하지 않았던가. 

「김중배 칼럼: 전두환 망명설」, 『동아일보』 1988년 5월 25일자.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를 보지 못한다. 비인간적 행위를 마음에 새겨두려고 하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런 위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독일의 어두운 과거와 속죄」, 『한겨레신문』 1989년 8월 26일자. 


  전혀 다른 언론에서 각자 인용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표현이 조금 다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번역의 차이 정도겠죠. 아주 구체적인 표현의 차이를 제외하면 2개의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1988년의 『동아일보』와 1989년의 『한겨레신문』에 인용된 바이츠제커의 연설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1990년이 되면 이 연설이 약간 달라집니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된다. 

「독소 사과와의 비교」, 『동아일보』 1990년 5월 15일자. 


과거에 대해서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 대해서 눈 먼 장님이 된다 

「통일독일 다시 본다, 최정호 교수의 현지 진단: 통독 초대대통령 바이츠제커」, 『동아일보』 1991년 2월 21일자. 


  원래는 문장 2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두 번째 문장이 탈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1992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깁니다. 


독일(구 서독)의 경우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의회연설을 통해 “과거를 잊은 민족은 또다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한다”고 밝힌데서도 알수 있듯이 

「日, 한국인 희생자 보상 외면 전후처리 기피」, 『연합뉴스』 1992년 1월 18일자. 


  바이츠제커의 연설 내용이, 우리가 처음 이야기했던 바로 그 문장,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와 상당히 가까운 형태의 문장으로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의 출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우리의 애초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는 듯합니다. 특별한 주인 없이 떠돌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1990년을 전후하여 손과 손, 입과 입을 거치는 과정에서 차이가 누적되면서 바이츠제커가 되어가는 것을 방금 확인했으니까요. 


  하지만 위의 『연합뉴스』 1992년 1월 18일자 기사 이후로 바이츠제커의 이름이 사라집니다. 90년대를 전후하여 바이츠제커의 이름이 잠깐 거명된다 싶더니 그만 어느 순간부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다시 주인 없이 떠도는 문장이 된 겁니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는 있는 것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은 특정한 누군가가 창작한 문장이라기보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속담’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 역시 인용하는 사람의 의도나 맥락에 따라 유동적이구요. 


  그런데. 


  유동적으로 떠돌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는 사건(혹은 계기)이 일어납니다. 2010년 10월 12일 한국과 일본의 친선축구경기에서 응원단 ‘붉은악마’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건 것이죠. 그리고 그 순간부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순식간에 민족주의적 맥락에 강력하게 달라붙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경기는 언제나 민족감정이 대폭발하는 현장이 되곤 합니다. 종목을 가리지도 않죠. 스포츠정신이라는 면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식민통치를 원체험처럼 공유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죠. 더욱이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의 우경화가 심해진 것도 여기에 한 몫 거들었을 거구요. 



  따지고 보면 ‘붉은악마’라는 명칭 자체가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붉은악마’가 고대 설화의 ‘치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국고대설화에 등장하는 ‘치우’는 언젠가부터 동이족 내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존재로 이해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유사역사학이 큰 몫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치우와 유사역사학에 대해서는 별도의 자리에서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다만 여기에서는 ‘붉은악마’라는 존재 자체가 애초부터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선에서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맥락 위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인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민족주의 정서와 강력하게 결합하게 된 것이죠.  문장의 주어부터가 ‘민족’이니까 이런 결합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이 시점까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의 옆에는 이순신과 안중근이 그려져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와 신채호는 연결되지 않았죠. 


  그러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의 출처가 신채호가 되는 건 과연 언제일까요? (사실 이 질문은 1편의 끝에서 던진 것인데 아직까지도 답을 안 내고 있군요;;;) 이거, 제가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밝혀내는데 성공했습니다...만, 글이 길어졌으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편에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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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1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2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까?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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