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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1883)가 탄 엘리베이터는 정말로 흔들렸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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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1883)가 탄 엘리베이터는 정말로 흔들렸을까

Dog君 2021. 5. 22. 23:34

 

  조선 말에 서양을 방문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외국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도 해외여행 가면 누구나 실수담 하나씩 만들고 돌아오는데, 그런 정보가 전혀 없었던 백수십년 전에는 오죽했겠나. 수탈과 침략으로 점철된 한국근현대사에서 그나마 미소 머금으며 들을 수 있는 역사 이야기가 아마도 조선인의 서구 여행기일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그런가, 조선인의 서구 여행기는 많은 사람의 손과 입을 거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디테일한 부분에서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얼마 전에 우연히 그런 것 하나를 알아챘는데, 그게 뭐냐면...

 

  1883년 미국을 방문한 보빙사 일행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팰리스 호텔Palace Hotel에서 엘리베이터를 처음 탔을 때 지진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랐다...라고 하는 일화다. 검색을 해보면 각종 블로그 등등에서 이 이야기를 정말 많이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거 틀린 이야기다.

 

  엘리베이터를 처음 탄 조선인들이 지진이 난 줄 알고 당황했다...는 이야기는 미국인 선교사인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이 쓴 Things Korean에 나온다. (한국어 번역본은 『조선견문기』와 『조선체류기』라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 1888년 초대 주미공사로 부임한 박정양 일행이 겪은 일을, 당시 그들을 수행했던 알렌이 자신의 책에 남긴 것이다.

 

  즉, ‘엘리베이터 지진’ 일화는 1883년 보빙사 일행이 아니라 1888년 박정양 일행이 겪은 일이라는 거다.

 

  그러면 이런 오류는 왜 생겼을까. 추측해보자면 이렇다.

 

  보빙사 일행의 미국 여행기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것은 홍사중이 쓴 『상투 틀고 미국에 가다』라는 책이다. 1983년에 발간된 이 책은 몇몇 부분에서 1883년 보빙사 일행과 1888년 박정양 일행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서술한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이 책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두 일행이 각각 겪은 일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 섞어서 퍼나르면서 이런 오류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게 된 것 같다. 더욱이 두 일행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 팰리스 호텔Palace Hotel에 묵었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더 강해진 것 같고.

 

  물론 보빙사 일행 역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놀라고 당황했던 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어쨌거나 틀린 건 틀린 거니까...

다행인 것은 경향신문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나 KBS에서 방영한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 진지하게 감수를 거치면 이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는게 이런데서도 드러나는 거 아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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