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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근대의 혁명 (이은희, 지식산업사, 2018.)

Dog君 2021. 5. 20. 07:47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다듬은 것이다.

 

  전근대 한국에서 '단맛'이란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설탕은 양이 매우 적었고, 꿀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근대적인 설탕산업이 도입되어 설탕이 대량생산되면서 비로소 단맛은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게 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근대는 설탕과 단맛을 통해 우리의 미각까지 바꿔놓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설탕과 단맛은 근대적인 식생활의 상징이자 맛과 영양의 보고로 여겨졌다. (물론 시대에 따라 정반대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 책은 설탕으로 대표되는 '좀 더 건강하고 과학적인 식생활'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주목하는데, 책을 읽고나니 근대는 미각으로도 우리 몸에 각인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근대에 등장해 여태까지 우리를 길들이고 있는 '새로운 맛'은 설탕 말고도 많다. 예컨대 아지노모도와 미원이 우리에게 선사한 '감칠맛'이 있다.

 

  물론 이런 정도에서 멈췄다면 이 책 역시도 범범한 소재주의적 책에 머무르고 말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이 책이 (서점가에 흔한) 'XX의 역사' 류보다 월등히 낫다고 생각한다.

 

  먼저 분석의 넓이와 깊이가 이전의 유사한 책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다. 이 책은 근대와 설탕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것이 조선에 어떤 식으로 도입되어 어떤 식으로 소비되었는지 정도의 표피적 분석에 머무르지 않는다. 설탕이라는 제품이 동아시아의 무역권 내에서 어떻게 이식되고 생산되어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설탕으로 다시 쓴 근대 동아시아 경제사이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나시면 'XX의 역사' 류의 책들, 어지간해서는 눈에 안 찰 거다.

 

  설탕이라는 소재에 천착하되, 그것을 함부로 낭만화하지 않는 것도 미덕이다. 저자는 설탕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문물이 (식민지) 조선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섣불리 낭만화하지 않는다. 도리어 설탕으로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가 실은 계급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도 했다는 점을 틈날 때마다 언급한다. 이러한 태도는 식민지에서의 근대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대 한 때 한국사학계에서 붐을 일으켰던 '식민지 근대성'론을 논할 때 이 책의 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식민지 근대성'론은 '(서구적) 근대'를 상대화하자는 문제의식과 달리 (너무 안타깝게도) 결과적으로는 '근대'를 낭만화하는데에만 그친 감이 있다. 어쩌면 그 '식민지 근대성'론이 간과했던 것이 바로 이 책과 같은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설탕이라는 소재에만 초점을 맞춰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그리고 근대 제당업과 관련하여 저자가 제시한 많은 표와 그래프 때문에라도 (이걸 다 어떻게 정리하셨을까 ㅠㅠ) 두고두고 참고할 가치가 있다.

 

  서구인 시각에서 한국은 문명에서 소외된 미개한 나라였다. 자신들이 설탕을 많이 먹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면서, 설탕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말하는 설탕이란 하얗게 정제된 백설탕이었다.
  한국 왕실에서는 이러한 서구인의 인식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을 궁궐로 부르면 "저녁식사를 서구 스타일로 마련"했다. (...)
  한국 왕실에서는 대외적으로 개명군주開明君主로 알리는 선전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초대받은 서구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잣대로 어설프다고 느꼈다. (...) (104쪽.)

 

  생활개선론 안에는 전통 생활양식에 내재된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욕구가 들어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며 같은 반찬을 먹고자 하는 '평등에 대한 갈망'이었다. 주부라는 지위로 가족 내 평등한 구성원이 되고자 했다. 주부가 되면 '차별받는 며느리'라는 수동적 지위에서 벗어나 개인의 창위성을 발휘하는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여성이 주부라는 지위에 서야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생겼고, 국민으로서 정체성이 생겨났다. (206~207쪽.)

 

  이러한 요리강습회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추진했던 농촌진흥운동의 '생활개선'과 거리가 멀었다. 조선총독부의 생활개선은 내핍과 소비 절약이 목표였다. 식료품, 포목류, 일용품 같은 일상품을 가능한 한 구매하지 말고 자급하고, 관혼상제비용·교제비·술값 같은 부정기적인 지출도 최대한 줄여 소비를 억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와 달리 1930년대 조선인이 주최하는 요리강습회의 목적은 소비 절약이 아니었다. 간단, 능률, 영양, 위생, 경제 등의 근대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설탕 같은 근대적 상품 소비를 조장했다. 둘 다 생활개선을 앞세웠지만 운동 주체와 내용, 대상, 목적은 아주 달랐다.
  (...)
  신식 요리법은 여성에게 봉건적 격식에서 벗어날 명분을 주었다. 위생, 영양, 경제, 과학, 다양성을 내세워 주부는 독자적으로 개성과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었다. 고정된 규율이나 기존 요리법을 따르지 않고 설탕이나 아지노모도 같은 조미료로 조선 음식 맛을 부드럽게 할 수 있었다. 요리 재료와 요리법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그릇이나 음식 담는 법에 이르기까지 전통 규율에서 자유로워지며 창의적인 조선 요리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요리강습회 수강생은 함께 요리강습을 받은 것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졌다. 강습기간이 고작 3일~5일밖에 되지 않는데도 자신들끼리 친목 모임을 가지며 결속했다. 요리 강습이 끝난 뒤에는 (...)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렇게 찍은 단체 사진은 으레 신문에 크게 실렸다. 신식 요리 강습을 받은 것은 대외적으로 자랑거리였다. 신문 사진을 통해 수강생은 가족, 일가친척, 지역 사회로부터 근대적 주부, 현모양처임을 공공연하게 인정받았다. 신문사는 이들을 '구식 여성'과 구분 짓고 북돋아 주었다. 이렇듯 신식 요리법 습득은 그들에게 남다른 사회적 의미가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들 대부분 혼자 가사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멈'이라고 부르는 '식모'를 고용하는 상류층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지향하는 주부란 '식모'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몸소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영양, 위생, 경제를 고려한 새로운 요리를 하는 근대적 주체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식모'라는 가사 노동자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
  요리강습회로 조선민족 내 계급차이가 문화차이로 나타났다. 신식 요리법을 매개로 상류층 여성들은 스스로 근대적 '주부'라는 정체성을 획득하고, 근대화를 지향하는 생활개선론을 받아들였다. 설탕 같은 근대적 상품을 소비하는지 아닌지로 '구식 여성'과 자신을 구별짓고 차별했다. 바야흐로 설탕을 넣는 신식 요리법이 상류층 문화와 근대 주부의 상징이 되었다. (312~318쪽.)

 

  1937년 7월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바로 엔 블록 전체에 무역통제령을 내렸다. 전시물자를 구할 외화를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해 9월 대장성령大藏省令으로 〈외환관리법〉을 개정하고 10월 〈수출입품등에 관한 임시조치에 관한 법률〉(이하 〈임시수출입허가규칙〉), 12월 〈무역통제법〉을 발표·시행했다. 이 법으로 외화 부족을 초래하는 설탕, 쌀, 소맥분, 연초 따위에 수입허가 제한 조치를 내렸다. (322쪽.)

 

  설탕만이 아니라 모든 물가가 천정부지로 급등했다. 중일전쟁 직전인 1937년 6월 물가지수 120(1933년=100)이 2년 만인 1939년 9월 170으로 올랐다. 7가지 곡물 평균지수가 1939년 9월 199가 되었고, 고기, 계란, 술, 간장, 생선, 채소, 과일, 두부, 땔감(薪炭)과 같은 생활물자 모두 전쟁 직전보다 40~5퍼센트에서 100퍼센트 이상 올랐다. 조선만이 아니라 엔 블록 전역에서 물가가 앙등했다.
  물가 인상으로 생기는 사회불안을 제거하려고 총독부는 무역규제조치와 함께 일련의 물가통제 조치를 공포했다. 〈폭리취체령〉(1937.5.), 〈총동원법〉(1938.3.), 〈폭리취체령 개정〉(1938.7.), 〈물품판매가격취체규칙〉(1938.10.), 〈물가통제대강〉(1939.4.), 〈물가통제실시요강〉(1939.8.), 〈9.18 가격통제령〉(1939.9.)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1939년 〈9.19 가격통제령〉은 공권력이 강제로 가격을 동결하는 초강력 대책이었다. 가격통제가 한계점에 이른 것이다. (334쪽.)

 

  커피를 먹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넣는 방식이 보편화되며 커피 문화 확산이 설탕 소비량과 비례하게 되었다. (...) (431~ 쪽.)

 

  눈여겨볼 점은 생활개선론자에게 고추와 마늘은 될 수 있는 한 적게 넣어야 하는 양념이었다는 점이다. 일찍이 일본인은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신들을 문명의 기준으로 삼아 매운 한국 음식을 야만적인 식문화로 업신여겼다. 그 영향을 받아 일제하 생활개선론자도 고추나 마늘을 기피해야 하는 양념이라고 생각했다. (...)
  해방이 되었어도 생활개선론자는 여전히 매운 음식 개발을 피했다. (...) 도시 생활개선론자에게 고추나 마늘 같은 전통적 양념은 고쳐야 할 대상이었다. 세계 보편적 기준에 맞추려면 한국 음식에 자극적인 양념을 적게 넣어야 하고, 사교적인 면에서도 입에서 마늘, 파 냄새가 나는 것은 서구인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고 믿었다. 이들은 서구인과 일본인의 입장에 서서 한국 전통 식생활을 부끄러워했다. (466쪽.)

 

교정.

316쪽 1줄 : 이들이 지향하는 -> 행갈음이 이상함. 이 문장 앞의 한 칸을 띄어쓰기 되어 있는데, 문단을 바꾼 것이 아니라면 띄어 쓸 필요가 없고, 문단을 바꾼 것이라면 두 칸을 띄어야 함.

470쪽 20줄 : 궁중 떡복이 -> 궁중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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