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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 (김석봉, 씽크스마트, 20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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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 (김석봉, 씽크스마트, 2020.)

Dog君 2021. 5. 20. 07:52

 

  “나 당첨되었다. 상품이 금일봉이래.”
  어젯밤 서울을 다니러 간 아내가 카톡을 보내왔다. 아내는 음식 모임이 있어 매달 한 번은 일박이일 서울나들이를 한다.
  “무슨 당첨? 상금은 얼마래?”
  “모임에 개근한 사람을 대상으로 행운권 추첨을 했는데 내가 당첨되었어. 상금이 삼십만 원이나 돼.”
  “어머니,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많이 사드시고, 옷도 사셔요.”
  며느리가 카톡에 끼어들었다.
  아직도 철이 덜 든 나는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며 카톡에 이런 문자를 넣고 있었다.
  “홍어 먹고 싶다.” (「전복 양식장의 유혹」, 46쪽.)

 

  직접 지은 햅쌀로 처음 밥을 지었을 때의 그 감격스런 순간은 영영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쌀농사를 시작한 첫 해 그 가을, 방앗간 트럭에 쌀 포대를 싣고 집으로 들어설 때의 나는 이 세상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해 가을 그 햅쌀로 지은 고봉밥을 먹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몇 년째 볏가마를 들이지 않는 강르을 맞이하면서 쌀농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농사를 시작하는 봄을 맞이하면 경제성을 따지게 되고, 내 몸 상태를 돌아보면 쌀 농사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쌀 한 포를 오륙만 원에 사먹어도 그것이 더 편하다 싶었다.
  (…)
  라면 하나는 예사로 끓여먹으면서 한 공기 삼백 원 하는 쌀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나는 정녕 농부인가. 쌀농사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이 정도 쌀값이면 사먹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한 나는 옳은 농부인가. 조금 오른 그 쌀값을 비싸다 여기면서 포기했던 쌀농사를 다시 시작해보려 마음먹는 나는 진정한 농부인가.
  양파농사를 잘 지어야겠다. 올해처럼 감자농사도 잘 지어야겠다. 고구마도 조금 더 심어야겠다. 쌀농사 열심히 하는 농부님들 쌀을 고맙게 여기면서 사먹어야겠다. 한 공기 사백 원으로 오른 쌀값을 다시 삼백 원으로 내리려는 정부에 대들어 데모하는 농부님들께 응원의 박수도 보내면서 살아야겠다. (「쌀농사를 버리며」, 77~78쪽.)

 

  맞다, 나도 폼 나게 살고 싶었다. 두툼한 방석을 깔고, 넓고 기다란 원목다탁 앞에 앉아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연분홍 코스모스 꽃무늬 블라우스를 차려 입은 아내와 함께 홍차를 마시고 싶었다. 삼천포 어시장에서 커다란 도미를 사고, 아내가 만드는 왕의 음식 도미면에 수정방 한잔 기울이고 싶었다.
  (…)
  그러나 나는 그처럼 폼 나게 살고 있지 못하다.
  집은 보잘 것 없이 낡은 농가, 나의 하루 시간은 한가롭지 못하다. 살림살이는 남루하고, 아내의 옷도 많이 낡았다. 생각이 무뎌 시를 쓴지 참 오래되었다. 인공지능이 삼삼을 선호한다는 바둑은 함께 둘 동무가 없다. 셋아은 여전히 어지러워 향기도 곰팡내도 분간할 수 없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먼 꿈으로만 남아버렸다.
  (…)
  그러나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이웃과 술을 마실 것이다.
  정신이 무뎌지고 몸이 쳐지더라도, 마을이 야속하고 이웃이 가끔 핍박을 주더라도 이 집은 우리 집이니까. 이 마을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니까. 폼 나게 살지는 못할망정 여기 사는 모두들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어제는 이웃이 우리 화목 자르는 것을 도와주었고, 나는 그 집 사립문 만드는 걸 도와주었다. 대나무 문살을 해달면서 예뻐라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일을 마치고 술을 나누었다. 아내는 홍합을 다져넣은 부추전을 구웠다. 폼 나는 술상이었다. (「폼 나게 살고 싶었던 내 꿈은」, 123~126쪽.)

 

  가족이 뒷전인 시절이 있었다. 민주주의와 민족과 자주와 통일을 외치던 싲러이었다. 먹고 사는 일이 뒷전인 시절이었다. 아내는 어렵게 어렵게 아들놈과 살았고, 나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면 반동이라는 생각에 젖었던 시절이었다. 민족과 사회와 이웃이 먼저라는 생각을 가져야했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첫째인 시절이었다. 주공아파트 앞 조그만 반찬가게에 딸린 네 평 단칸방에서 사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주말이면 나들이는커녕 예닐곱살 아들놈 데리고 집회장에 나가 ‘타는 목마름으로’를 애타게 불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나는 썰물의 해변에 흩어져 있는 한 조각 나무토막처럼 이 셋아에 남아 있었다. 구호와 함성과 돌팔매는 결코 세상을 바꿔놓지 못했다. 아들은 장성해 있었고, 아내는 어금니를 잃은 중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너덜너덜해진 인생을 끌고 가장이 되어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었다. (「봄바람 맞으며 봄 소풍 갈거나」, 191~192쪽.)

 

  왜 우리는 저 닭의 울음소리를 시끄러울 것이라고만 생각했을까. 동이 훤히 터올 무렵 골목을 지나가는 경운기의 굉음도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마을을 드나드는 고물장수 생산장수들의 쩌렁쩌렁한 확성기 소리에는 무감각하면서, 텔레비전을 켜두고 잠들기 일쑤면서, 집 안을 울리며 웅웅거리는 낡은 냉장고 소리도 일상으로 듣고 살면서 어찌 저 닭의 울음소리에는 예민했을까. (「수탉이 우는 새벽이 있다는 것은」, 246쪽.)

 

  뒷마당에서 수탉이 홰를 치며 운다. 들창이 밝아온다. 문득 달력을 쳐다보았다. 손 꼽음을 해본다. 오월 말에 수박꼬투리 꽃이 떨어졌으니 이제 따 먹을 때가 되었다.
  수박에 얼굴을 파묻고, 볼에 수박씨를 붙인 손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빙그레 웃음이 난다.
  (…)
  나는 안다.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내 삶에 찾아온 아름다운 사람들과 내 삶에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수박의 맛과 향에 감격하는 동안 내 삶의 꾸투리에도 새로운 꽃송이가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안다. 모든 것을 남겨두고 문득 이 산골로 스며들려 했을 때의 헐벗은 듯한 느낌이 이제부터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부터 걸어가는 내 삶의 발걸음이 더 이상 낯선 미로를 좇지 않는다는 것을.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에」,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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