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낙인찍힌 몸 (염운옥, 돌베개, 2019.) 본문
“이미 해결된 문제 아닌가요?” 십여 년 전 인종주의(racism)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종종 들었던 질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인종주의는 한국사회에서 관심을 받거나 공감을 얻는 연구 주제가 아니었다. (…)
“시의적절한 주제네요!” 2016년 가을, 인종주의에 대한 책을 쓸 계획이라고 했을 때 주변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 (4~5쪽.)
(…)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무슬림과 유대인은 추방당할 위기에 내몰렸는데 추방을 면하려면 기독교도로 개종해야 했다. 생존을 위한 개종자가 속출했지만, 개종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 문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동화는 쉽지 않았고 거짓 개종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끊이지 않았다. (…)
콘베르소(converso), 즉 개종한 유대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그들은 우리와 ‘핏줄’이 다르다는 생각을 낳았으며, 문화나 종교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몸속 깊숙이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 ‘피의 순수성’과 ‘상상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집착은 인간에게 동물의 혈통이나 품종을 가리키는 스페인어 ‘라사’(raza)를 적용하도록 이끌었다. (…) (25쪽.)
그렇다면 린네는 왜 피부색을 변종의 기준으로 삼았을까? 18세기까지 유럽인들이 인간의 차이를 인식하는 방법은 주로 종교와 복식을 통해서였다. 당시는 이교도를 이방인으로 여기던 때였다. 또한 신분제 사회에서 복장은 인격의 표현이자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상업사회가 도래하고 사회적 이동성이 증가하기 시작하자 드레스 코드는 더 이상 믿을만한 지표가 되지 못했다. 이런 사회변화에 따라 오래된 의학이론인 체질론이 새로 발견된 인간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 인종 개념의 전사(前史)로서 체질론은 '피부색'으로 인간을 구분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39쪽.)
체질론과 함께 피부색에 따른 린네의 인간 분류에 힘을 실어준 또 하나의 과학 이론은 기후론이었다. 성경의 권위는 여전했지만 자연학자들은 세속적 기준에 따라 관찰하고 측정한 결과를 자연을 설명하는 데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 어디가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기후인가를 놓고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에서는 지중해 지역이 온대기후로서 인간생존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다. 당시 서유럽과 북유럽은 거친 기후에다 야만인이 사는 지역으로 여겼다. 그러다 17~18세기가 되면서 기후론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온대기후의 중심 지역으로, 기중해는 온대기후의 끝자락에 위치한 변방으로 설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의 기후론과 체질론에서 흰 피부는 희멀건하고 흐리멍덩한 색으로 경멸적인 뉘앙스마처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흰 피부는 더 이상 경멸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신 검은 피부에 부정적 의미가 덧씌워졌다. (…) 검은 피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된 배경에는 잘 알려진 대로 노예무역과 노예제 경제가 관련되어 있었다. (41~42쪽.)
골상학에서는 골상으로 표출되는 성격이 형성될 때 환경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한 자기개선과 사회적 상향이동, 사회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콤은 “인도 정복은 범죄”이며 “유럽인에 의한 니그로의 노예화는 자연의 계획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라며,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반대했다. (71쪽.)
(…) 노예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제대로 된 역사적 재현과 성찰로 곧바로 이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너무 쉽게 전유하는 행위는 ‘공감’이 아닌 ‘연민’만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노예를 수동적 주체로 재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남기지 않을까? (…) 무릎을 꿇고 “나는 인간도 형제도 아닙니까?”, “나는 여성도 자매도 아닙니까?”라고 애원하는 남녀 노예의 이미지는 19세기 백인 폐지 운동가들이 만들어내길 원했던 ‘침묵하는 희생자’에 딱 들어맞는다. 이런 노예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시혜를 베풀어주어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비(非)인간에 불과하다. (…) (136~137쪽.)
또 하나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노예제폐지와 인종주의 전개의 선후관계다. 1794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1834년 영국 식민지에서 노예제가 폐지됐다. 본격적인 인종주의는 노예무역과 노예제폐지 이후에 전개되었다. 즉, 합법적 제도로서 뒷받침되던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백인과 흑인 사이의 우열관계를 입증해야 할 필요는 더욱 절실해졌던 것이다. 피부색과 두개골의 차이를 고정 불변하는 인종의 특징으로 고착화하고 위계를 확정하는 정교한 인종론과 인종주의는 노예제폐지 이후의 역사적 산물이었다. (137쪽.)
인종과 젠더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교차성 개념을 처음 논한 인물은 미국의 흑인 여성 법학자 크렌쇼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교차성 개념의 기원은 트루스의 앞서 인용한 연설로부터 시작한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크렌쇼는 1989년과 199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교차’ 개념을 제시했다. 크렌쇼는 인종과 젠더 중 하나만을 고려하는 단일축 분석틀에 토대를 두는 흑인운동과 여성운동 모두를 비판하며 흑인 여성은 단일축 분석틀 사이의 교차로에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교차성'이란 말 그대로 흑인 여성은 교차로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구조적 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험하게 서 있는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처럼 여성으로 대표되지도 못하고, 흑인 남성처럼 흑인이라는 인종으로 대표되지도 못한다. 흑인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종 정치학과 백인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정치학은 흑인 여성의 경험을 배제하거나 왜곡하면서 흑인 여성을 대표성의 공백 상태로 남겨둔다는 것이 크렌쇼의 분석이다. (187~189쪽.)
‘민스트럴쇼’는 남북전쟁 전후에 유행했던 미국 엔터테인먼트 쇼 중 하나로 얼굴을 검게 칠한 백인이 흑인 역할을 맡아 춤과 음악, 촌극 등을 공연했다. 이때 백인이 연기하는 흑인은 우둔하고, 게으르고, 미신이나 믿는 태평스런 어릿광대로 묘사되면서 흑인에 대한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을 생산했다. (191쪽.)
(…) 트루스는 (…) 노예제폐지 운동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부터는 안경을 쓴 채 단정하고 단호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했다. 트루스의 정면 사진은 18세기 말 영국 노예제폐지 운동에서 백인 운동가들이 생산한 애원하는 여성 노예의 수동적 이미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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